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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2] 빈곤 정책, 빈곤한 정책?

빈곤에 대한 인식 부족한 보수정당의 대선 반(反)빈곤 정책

‘주거비와 전달 밀린 식비를 충당하느라 한 달을 천원으로 생활해야 할 때도 있는 기초생활수급권자’
‘주 44시간 노동, 토요 격주 휴무를 보장하라며 분신한 전기공 노동자’
‘1킬로를 모아봤자 40원인 폐휴지를 주우려고 추위를 견디며 온종일 일하는 사람들’
‘붕어빵 장사마저 단속에 강제철거당하고 일용직 막노동이라도 하려고 갔다가 일이 없어 돌아온 노점상의 죽음 선택’


60, 70년대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빈곤 현실의 단면이자 빈곤이 낳은 비극이다. 그래서인지 대선 후보들 모두가 빈곤 해결과 복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심지어 이명박 후보는 당내 경선 때부터 “빈곤의 대물림, 이제 끊겠습니다”라고까지 표명했다. 그런데 수많은 정책을 내놓은 후보들이 빈곤의 실태와 원인을 모른다면 반(反)빈곤 정책은 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2007년 빈곤의 실태

2007년 한국사회 빈곤의 현실은 1960년대의 그것과 다르다. 과거의 빈곤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빈곤상태였기에 경제 성장으로 ‘빈곤을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어느 정도 보여주었다면, 현재의 빈곤은 물질적 궁핍 외에 그로 인한 교육 및 주거, 의료 등의 소외와 같은 사회·문화적 배제를 통한 빈곤의 원인과 결과의 악순환, 상대적인 빈곤층의 증가, 절대적 빈곤층의 궁핍 심화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고 실패한 사람들이라는 낙인이 ‘합리화’ 되었지만 현재는 열심히 일해도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working poor)이 대다수이며 그들 중 대부분은 취업과 실업의 경계에서 빈곤하게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 빈곤은 ‘패자의 낙인’으로 합리화될 수 없다. 이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04년 통계에도 근로빈곤층이 전체 인구의 5%인 270여 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성장지상주의가 빈곤을 해결한다!?

보수진영의 대선후보들은 입을 모아 경제성장을 이루겠다고 한다. 이명박 후보는 경제성장률 7%, 정동영6%, 문국현 8%을 외치면서 지지를 모으고 있다. 물론 이는 “전체 경제가 성장하면 개인도 경제적 궁핍에 벗어날 수 있지 않겠냐”는 서민들의 허무한 기대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동영 후보측의 정책안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경제성장이 고용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2003년 경제는 3.1% 성장했음에도 취업자는 오히려 3만 명이 줄어들었고 현재도 경제성장은 있지만 경제성장에 따른 고용수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97·98년 외환위기 이래 한국에서 경제성장이 멈추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으며 평균 4%이상의 경제성장률을 보였지만 양극화는 오히려 심해졌다. 2007년 5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가구 소득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8.40%로 근로소득 격차는 커졌다. 또한 사회양극화의 주요 기반인 자산을 포함시킬 경우 2006년 삼성금융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격차는 19.5%에 달한다. 이러한 현실은 빈곤의 해결 방안이 경제성장일 수 없음을 말해주며 성장지상주의가 오히려 빈곤의 심화, 양극화를 가져올 뿐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친(親)기업정책으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경제성장 신화에 갇혀있는 한 친(親)기업정책은 피할 수 없는 논리적 귀결이다. 친(親)기업정책을 너도나도 주장하고 있는 후보들은 기업들의 규제완화를 대책으로 내놓고 있다. 이명박 후보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강연에서 “중소기업이 어렵고 대기업의 국내투자도 과감하게 안 되는 이유는 고임금과 노사문화, 비싼 집값 등도 있지만 사회 전반적 환경이 친기업적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경쟁력 있는 대기업은 규제만 없애도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언론사에서 진행한 정책질의 답변에서는 불법파업의 중단을 통한 기업손실분 감소,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 등을 동시에 얘기하지만 ‘경직된 노사관계’라는 표현과 ‘불법파업이 증가할 것’이라는 진단에는 파업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노동의 현실, 파업권이 노동권의 주요 내용이라는 사실을 전제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기업이 업무방해죄 고소와 가처분 신청 등으로 노동자의 쟁의행위를 일상적으로 가로막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친(親)기업적 정책을 펴왔다. 이처럼 기업을 살리는 현 정권의 정책이 노동빈곤층을 양산했다. 이런 결과는 노동빈곤을 줄일 수 있는 바른 처방은 친(親)노동자 정책으로의 선회임을 말해준다.

지난 6월 19일 열린 한나라당 정책비전대회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지난 6월 19일 열린 한나라당 정책비전대회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기업의 정규직 고용 강제를 통해

정동영 후보 정책에서는 여성일자리 대책을 통한 빈곤탈출 계획을 내놓았다. 초등학교 방과 후 학습 보조교사로 여성을 적극 채용하고, 보육 부담을 덜어 여성 경제활동 참여를 지원하겠다고 한다. 또한 보건의료, 사회복지, 보육 및 교육 지원 등의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여성들의 고용은 증가하고 있지만 대부분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면서 ‘일해도 가난하고, 그마저도 불안한’ 노동빈곤의 현실을 외면한 정책이다. 지금도 투쟁하고 있는 뉴코아-이랜드 투쟁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성들은 80여만 원의 임금을 받다가 해고당한 비정규직이었다.

물론 정동영 후보 측에서는 기업에 고용 인센티브를 줘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업에 대해 인건비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 자금 우선 배정과 4대 보험료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래 지속되어온 고용유연화정책을 정부가 폐기하지 않는 한 기업은 이윤증대에 유리한 비정규직 고용을 유지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대책은 비정규악법에서 볼 수 있듯이 무늬만 비정규직 대책일 수밖에 없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노동자의 35.9%(570만 3000명)로 4년새 110만 명이나 증가했으며, 임시일용직까지 포함할 경우 그 규모는 876만 명으로 55.7%에 이른다. 또한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50.5%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친(親)기업정책을 통한 경제성장의 이면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통한 이윤창출이며, 달리 말해 기업의 성장이란 노동자· 서민들의 빈곤화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근로형태별 근속기간을 보여주는 통계청 자료. 표에 나타났듯이 비정규직 가운데 1년 미만의 기간제 및 시간제 근로자의 비율이 매우 높다. 1년 미만의 비정규직 비율은 ‘노동하면서도 빈곤하고 취업과 실업의 경계에서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노동빈곤층을 보여준다.

▲ 근로형태별 근속기간을 보여주는 통계청 자료. 표에 나타났듯이 비정규직 가운데 1년 미만의 기간제 및 시간제 근로자의 비율이 매우 높다. 1년 미만의 비정규직 비율은 ‘노동하면서도 빈곤하고 취업과 실업의 경계에서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노동빈곤층을 보여준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복지 정책의 허구성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적자가구 비율은 전국가구의 30.9%이다. 빈곤사회연대가 10월 17일 발표한 빈곤인구는 1121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1/4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현재 빈곤은 물질적 궁핍만이 아닌 사회문화적 배제를 통해 고착화되고 심화되고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배울 수 없었던 빈곤층은 학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고, 저학력을 이유로 고용 진입과정에서 차별받게 되고 임금에서도 차별받는 과정이 순환, 반복된다. 거기다 사고나 질병이 생기면 높은 의료비용으로 가지고 있는 돈마저 다 탕진하고 일자리마저 잃게 되어 기초생활수급에만 의존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라고 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부양의무자 기준 등 수급자 요건의 강화로 단지 150만 명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빈곤사회연대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계비 수준은 평균소득의 57.1% 수준이며,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하기 위한 적정생계비는 평균소득의 70.6%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했을 때, 최소생계비는 250여만 원, 적정생계비는 300여만 원으로 전물량방식으로 제시한 정부의 최저생계비 120만원과는 엄청난 격차가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측이 제시한 맞춤형, 예방적 복지는 △출산과 육아 지원(10대 미만) △균등한 교육 기회 제공(10대) △청년 실업 절반으로 줄이기(20, 30대) △중장년 재취업 지원(40, 50대) △노인 복지(60대 이상) 등 연령대별 지원과 함께 저소득층의 자활 지원과 장애인 지원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은 여전히 얘기하고 있지 않다. 현실적인 생계비 책정, 상대적 빈곤선의 도입으로 빈곤층의 실태 파악과 확대를 통한 비수급 빈곤층의 빈곤 해결 방향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그의 복지 공약은 허구적 정책이다.

선심위주의 공약 때문에 차기 정부가 빈곤층을 압박할까 두려워

빈곤은 한 사람의 인권을 총체적으로 박탈한다. 빈곤 속에서 자란 사람은 적정한 주거권의 박탈, 의료이용 기회의 박탈 및 불건강한 환경으로 인한 건강권 침해, 경제적 궁핍으로 인한 교육권과 식량권의 박탈을 경험한다. 이러한 인권 박탈은 사회의 빈곤층에 대한 차별로 더욱 심화된다. 그래서 빈곤은 한 사회구성원의 인권 실현을 위해서 없애야 한다. 더구나 주거와 교육, 취업, 적절한 소득 및 생활수준 등의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 등 빈곤층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사회현실에서 빈곤의 책임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에 있다. 따라서 빈곤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안인 복지가 시혜적 시각에서 진행된다면 반(反)빈곤 정책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나라의 행정수반이 될 대통령을 뽑는 대선 후보들의 반(反)빈곤정책과 복지정책은 그래서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선 후보들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당선될 수 있기에 이른바 민심을 얻을 수 있는 복지정책을 남발한다. 문제는 그 정책들이 빈곤에 대한 인식이 없는 선심성 공약이라는데 있다. 대선이라는 열린 정치적 공간에서 주요 정책을 만들어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선 빈곤의 원인과 실태를 제대로 파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너도나도 파편적이고 모순적인 정책을 내놓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당선된 후 자신이 제시한 공약을 실현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많은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그동안 유지되어온 다른 정책마저 후퇴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는 올해 복지예산을 감소하기 위해 의료급여제도를 뒤로 후퇴시키는 시행령을 발표하고 시행한 예에서 잘 드러난다. 노무현 정부는 의료급여 대상자를 늘리는 의료복지 대상자확대정책을 실시하고 그 결과로 당연히 의료급여재정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복지부는 의료급여 재정이 늘어났다며 예산을 절감하기 위한 과거의 의료급여정책을 더욱 뒤로 돌리는 정책인 의료급여 수급자의 본인부담금 납부 등을 실시했다. 자기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복지 정책을 뒤로 돌리는 ‘과감하고 반인권적인’ 정책을 실시했다. 이러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복지 후퇴’ 경험은 그들의 공약(空約)이 내년 정부에서 또 한번 빈곤층을 압박하는 근거로 작용되지 않을까 더욱 우려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