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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뒤로 가는 교육부 학교생활규정

기존 학칙과 다를 바 없어


지난 26일, 교육인적자원부는 '학교생활규정 예시안'을 발표했다. 이 예시안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 교육부 학교정책팀 관계자는 "공교육 내실화의 일환"이며 "순수한 예시일 뿐 채택은 자율"이라고 밝혔다. 현 교육법에 따르면 학칙을 만들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학내에 학칙을 두는 것은 학교 자율이며,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학칙이 없는 상황이다.

교육부의 말대로 채택은 자율이라 할지라도, 이번 예시안은 '공교육 내실화'를 내건 교육부의 입장이 담긴 것이고 학생의 학교생활에 관한 세부사항을 규정하고 있기에 그것이 던지는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 '공교육 내실화'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학교 민주주의의 강화와 학생인권의 신장이 동반돼야 한다. 이런 면에서 긍정적인 기여를 기대하기에는 이번 예시안은 많은 우려점을 안고 있다.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다

학칙은 학생이 준수해야 하는 내용도 담아야 하겠지만, 학교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권리의 내용과 그 권리를 학교 구성원들로부터 침해받았을 경우의 구제방법도 담아야 한다. 그러나 예시안에서는 그런 면을 찾아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예시안 제12조에서는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할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면서 '시설물 애호와 낙서금지' 등의 의무를 담고 있다. 정작 학생들이 보장받아야 할 '쾌적한 환경'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는 빠져있다. 특히 실업고 예시안의 제30조 '현장실습 준수사항'에서는 '현장실습 중 기업체에 입힌 물적 손실에 대해서는 보호자가 배상 책임져야 하고, 본인의 부주의로 발생한 사고는 본인이 책임을 진다'는 식으로 못박고 있다. 실습 중에 학생이 처할 수 있는 안전문제 등에 대한 책임을 일방적으로 학생에게 전가하고 있는 조항이 아닐 수 없다.


권한 없는 학생회

학생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에 대한 고려가 없음은 물론이고, 예시안에 따르면 학생회의 권한이란 사실상 없다. 애초부터 학생회는 "학교 운영에 관한 사항을 의결할 수 없"고(제36조), 학생회에서 의결된 사항은 학교장의 '승인'을 받아야만 효력이 발생한다(제39조). '회'의 운영에 관련된 주요사항은 교직원으로 구성된 '생활지도협의회'가 심의하고 승인하게 되어있다.

예시안은 또한 어떤 근거도 없이 학생회 구성원의 '정당활동'을 포함한 '정치활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현행법에서 참정권은 만20세 이상인 성인에게 있는 권리이고, 정당법은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자'로 당원의 자격을 정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은 일단 정당원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예시안에 '정당활동 제한 규정'을 두는 것 자체가 불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현행법의 참정권 제한 연령이 낮춰질 수도 있는 것이고, 정식당원이 아니라 하여 청소년들이 정당활동에 아예 참여할 수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녹색당이 출현한다고 할 때 정당원이 될 수 없다하여 녹색당의 환경 정책을 지지하는 청소년 활동이 제한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정치활동'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말 큰사전은 정치활동을 '정치에 관계하는 모든 행동'으로 말하고 있다. 정치란 효과적으로 사회생활에 참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학생은 그런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효과적인 사회 참여 훈련을 제공해야 한다고 할 때 학생의 정치활동을 포괄적으로 제한한 예시안은 기본권의 부당한 제한임과 동시에 학교가 해야할 중요한 교육을 방기하는 것이다.


체벌은 당연 허용

예시안은 지난 3월 교육부가 발표한 체벌 허용 방침을 뒷받침하듯 체벌에 대한 세세한 규정을 하고 있다. 즉, '이런 방식으로 때리는 것은 괜찮다'는 것이다. 체벌이 올바른 교육행위인지에 대한 치열한 찬반양론이 존재하는 가운데 교육부가 체벌을 당연 허용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특수하고 예외적인 상황으로 제한 해석하라 했으나, 체벌은 교사의 주관적 감정이나 주변 정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과연 교육부가 예시한 절차를 다 밟아서 체벌을 할 교사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성명을 통해 예시안의 세세한 규정이 "구차하기까지 하다"며 "체벌없이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교육적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고 정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덧붙여 "교사의 권위는 체벌 허용이 아니라 교사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올바른 교원정책 수립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시시콜콜 간섭하는 '자율'

예시안은 "자주적" 또는 "스스로"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학생 생활의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간섭하고 있다. 예를 들어 "권장도서를 우선하여 독서"하라거나 '학급 내 봉사활동은 학생회장, 부회장, 지도부를 제외한 학생이 2명씩 일주일간 하라', '이성간의 건전한 교제는 권장한다'는 둥 그 시시콜콜한 지시와 자율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지난해 10월 인권단체가 발표한 '244개 중․고교 교칙 분석' 보고서가 전근대적인 교칙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여러 학부모․교사․학생단체들이 전근대적인 교칙을 바꾸기 위한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교육부는 그런 흐름들과 같이 갈 수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