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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군대는 바뀔 수 있을까

지난 5월 31일 성추행을 폭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군 중사의 소식이 전해지며 군대 내 성폭력 문제가 연일 뉴스를 오르내리고 있다. 이미 공군 내부에서는 3월에 발생한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수사하기는커녕 피해자에 협박과 회유 등 2차 가해를 해왔다는 사실도 전해졌다. 뒤늦게 수사본부가 꾸려져 가해자들이 구속되었고 공군참모총장은 사실상 경질되었다.

군은 정치권과 언론 앞에 고개를 숙이고, 군대 내 성폭력을 근절하겠다는 후속 대책이 연달아 나오고 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군대건 정치권이건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같은 모양새다. 군대는 바뀔 수 있을까.

 

여군의 규모만 키워온 군대

 

본격적으로 여성이 직업으로서 군인이 될 수 있게 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다. 그전까지 여군은 간호병과나 법․의료․종교와 관련된 특수병과인 여군병과에 속하고 그 규모도 매우 작았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만들어지면서다. 민주화와 평등을 바라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여성의 고용을 차별하는 제도와 관행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사회 전체적으로 여성‘인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여성의 직업 진출을 지원하는 정책도 함께 시행되었다. 군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1997년 사관학교가 여성의 입학을 허용했고, 2001년 공군과 해군이 학사 출신 여성장교를 선발하면서 여성에게 군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전 1500명 규모의 여군은 해마다 1천여 명씩 증가해 2016년도에 1만 명을 넘겼다. 2019년 기준으로 여군은 12,600여 명으로 전체 군 간부의 6.8%에 이르렀고, 2022년까지 2%를 더 늘려 8.8%까지 규모를 키우겠다고 한다.

 

문제는 여군의 규모를 키워온 만큼 군대라는 공간을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일터로 변모시켜 왔는지다. 여성 군인의 인터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바로 “여군이라서”이다. 어떤 평가를 받건 간에 여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는 것이다. 체력이 좋은지, 부대를 사고 없이 잘 지휘하는지, 군대 안에서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지 등 군인의 자질을 평가하는 질문의 대상은 오직 남성 군인이다. 같은 질문이더라도 여군을 향할 때는 다르다.

“여성인데”, “여성치고는” 같은 말이 따라붙으며 애초부터 남성 군인과 같은 선상에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케 한다. 여성 군인의 규모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지만, 여군에 대한 평가가 오직 여성이라는 사실에만 주목하는 현실에서 여군은 2등 군인으로만 위치 지어진다. 이러한 조건에서 여성 군인이 군대라는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동등한 동료로서 인정되고 관계맺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난 20여 년의 시간 동안 국가는 여성에게 군대라는 일터의 문을 열어왔다고 말하지만, 그저 문만 열어두었을 뿐이다. 군대라는 남성 중심적인 일터에서 여군이 놓여있는 차별적인 조건은 방치해왔다.

 

차별적인 일터, 폭력의 구조

 

“여군이라는 호칭을 좋아하지 않는다” “성별에 상관없이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게 군인으로서 가진 소명이다” 여군 최초 초계함 함장이 된 홍유진 중령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 말이다. 2등 군인의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여군은 업무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내야 한다. 남성 군인에게 뒤지지 않는 체력은 물론,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을 보이고, 동시에 상관의 명령에는 더욱 헌신적으로 따른다. 그렇게 여성이 아닌 군인으로 일의 세계에서 인정받기 위한 분투를 이어간다. 하지만 여성이자 동시에 군인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지위와 역할이 부재한 군대에서 이러한 노력과 헌신은 착취와 폭력의 대상이 된다.

 

소위 힘들고 어려운 보직에는 남성 군인이 배치되고 승진과 포상을 획득하며 군인으로서의 인정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여성 군인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취급하며 당사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주요한 업무와 역할에서 배제된다. 도리어 여성 군인의 헌신은 상급자에 대한 의전 업무나 사적인 술자리 같은 곳에 동원한다. 군대는 여군에게 “여성이 아니라 군인이 되라”고 말하지만, 정작 여군에게 성적으로 대상화시키는 역할만을 강요한다. 바로 이 여성에 대한 착취가 군대 내 성폭력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성희롱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여군 42명 중 절반 이상이 하사였다. 장기 복무 심사라는 직업 군인이 되기 위한 1차 관문 앞에 놓여있던 여군에게 가장 많이 피해가 발생한 것도 절대 무관하지 않다. 이번 공군 성폭력 사건도 상급자인 가해자가 사적인 술자리에 피해자를 불러낸 것이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 분명하다.

 

바꿔야 하는 것은 군대 그 자체

 

공군 성폭력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정부와 국회 모두 나서 이번에야말로 군대를 바꾸겠다고 말한다. 군인에게 발생한 범죄 사건을 군사법원에 맡겨서 제 식구 감싸는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일반법원에서 재판이 이루어지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과 민․관․군이 함께 참여하는 병영문화개선기구를 꾸리겠다는 대책이 주요한 골자다. 민간의 참여를 확대해 성/폭력을 은폐하는 군대의 폐쇄성을 해체하면서 제대로 처벌받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모두 필요한 일이지만 이러한 대책들만으로 군대를 바꿀 수 있을까. 그동안 군인의 성/폭력에 대한 처벌은 계속 강화되어 왔다. 병영문화개선 역시 군대 내 성/폭력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했지만, “사무실에 남녀 장교가 단둘이 있으면 문을 열어놔라”와 같은 황당한 대책이 나오는 수준이다. 군대의 폐쇄성을 해체하고 제대로 처벌하자는 대책은 반복적으로 등장했지만 결국 그 대책들은 군대라는 조직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왔다. 군대를 바꾸려면 폐쇄성 자체가 아니라 폐쇄적인 조직이 수십 년 간 굳건하게 지켜온 남성 중심의 카르텔부터 깨뜨려야 한다.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의 ‘억울함’에 공감하며 피해자를 문제의 원인으로 돌려온 남성 중심성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군대의 폐쇄성을 해체하고 처벌을 강화하자는 논의가 또 다시 성/폭력을 숨기는 기제로 작동하지 않고 군조직의 변화로 이어지는 길이 열릴 수 있다.

 

여성이자 군인인 사람은 어떻게 동료가 될 수 있을까. 남성 중심적인 군대를 바꾸기 위한 질문의 시작이다. 당연하게 여겨온 남성으로 표상되는 군인의 모습은 지난 20년 여성 군인의 역사를 삭제한다. 남성이 중심이 아닌, 여군을 삭제하지 않는 군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군대의 역할, 군인의 모델부터 다시 검토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지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성을 군대라는 직업세계로 끌어들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차별과 폭력에 방치시킨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