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성폭행을 결혼으로 책임진다?

7얼마 전 여고생을 성폭행하여 강간치상죄로 기소된 20대 남자가 피해자 부모로부터 “딸이 자란 뒤 결혼하라”는 합의를 받아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17세 여학생을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차에 태워 외진 곳으로 끌고 가 강간한 가해자는 1심에서 2년 6개월을 선고받은 후 항소심에서 위의 합의를 조건으로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성폭행을 결혼으로 책임(?)지겠다’는 논리를 재판부가 인정한 것이다.

위의 판결은 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관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제주 4.3 항쟁 당시 이승만 정권을 대변하며 온갖 만행을 저질렀던 서북청년단원이 지역 여성을 성폭행하고 결혼한 사례가 떠오른다. 권력을 이용하여 강간을 서슴치 않았던 남성과 강제 결혼하여 평생 불행한 삶을 이어온 여성들...


결혼은 면죄부일 수 없다

성폭력은 ‘폭력’이다. 그것은 성관계가 아니다. 따라서 가해자가 피해자와 결혼한다는 논리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폭력일 뿐이다. 강간범이 피해자를 결혼이라는 제도를 빌어 책임진다는 것에 찬성한 판결은, 성폭력 피해를 순결의 상실로, 순결의 상실을 곧 여성의 가치 상실로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강간을 저질렀다해도 결혼으로 ‘책임’지면 언제든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어 성폭력 범죄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장 치명적인 폭력을 휘두른 가해자가 피해자를 ‘책임’진다는 것의 참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자신의 범죄 행위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처벌을 달게 받고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것이다.

그 외에 다른 어떤 방법도 ‘책임’지는 것이 될 수 없다. 성폭력 범죄의 처리 과정은 철저히 피해자 중심이 되어야 하며 피해자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주변의 인식 변화와 사회 지원도 병행되어야 한다. 여고 2년 생이 겪었던 정신적, 육체적 피해와 충격을 뒤로 한 채 강간범이 ‘그녀가 자란 뒤 결혼해주는 것으로’ 모든 것을 무마해 버리는 것은 가해자 중심의 사고이다.

앞으로 그녀의 삶은 어찌 될 것인가? 남성중심적 성윤리에 익숙한 어른들의 일방적 합의가 그녀의 삶을 짓밟아 놓은 것은 아닌지 생각할수록 가슴이 저려온다.


죽음을 강요하는 가부장제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사회적 출신과 지위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한 세계인권선언 1,2조는 ‘차별금지’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헌법 제11조 1항에도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차별금지를 명문화하고 있지만 ‘여성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라는 말이 따로 생길 정도로 여성에 대한 차별은 우리 사회 깊숙이 내재되어있다. 너무나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스러울 때도 있다. 특히 남성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성윤리가 여성에게는 일생을 좌우하는 족쇄로 작용하곤 한다. 성윤리가 남녀에게 이중적으로 적용되는 가장 중요한 기제는 정숙한 집단과 이에 결격사유(?)를 갖는 ‘천한’ 집단으로 여성을 이분화 시키는데 있다.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의 일차적 존재의미를 남편 집안의 정당한 계승자를 낳는 역할에서 찾는다. 따라서 여성의 정절은 존재 의미의 핵심이 되기 때문에 여성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서 그 여자의 능력이나, 인격, 품위 등에 우선한다. 아니 생명보다 우선하여 평가될 때도 많다.

성폭행 당한 여학생이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사건을 두고 순결을 위해 목숨을 버린 고귀한 희생 운운하던 방송의 보도는 이를 대변한다.(만약 같은 경우 남학생이 자살했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어떠했을까?) 성에 대한 이중성은 여학생에게만 순결교육과 성교육이 같은 의미로 적용되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성은 성차별의 지렛대이다.

여성과 남성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이중규범이 성(Sexuality)의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가부장제는 전통과 관행이라는 껍데기를 번갈아 쓰면서 끊임없이 여성에 대한 차별을 합법화, 구조화시킨다. 1년에 3만 명이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여아라는 이유로 살해되고 있다. 남성임금의 60%도 안 되는 여성임금, 정리해고 1순위가 여성인 것이 당연한 현실. ‘170cm이상, 몸무게 50kg 이하’라는 노예시장에나 있을 법한 채용기준을 둔 기업을 공개할 수 있는 법안이 1999년에서야 의결되었다는 것은 차별이 얼마나 뿌리깊은 것인지를 보여준다.

남녀에 대한 차별은 성별 구분 그 자체에 이미 녹아있고, 성별 구분을 조직 원리로 삼은 가족제도, 노동시장, 정치, 경제, 지식생산의 모든 분야에서 지지 받고 있다.

이 모든 것과 부딪혀서 여성이 세상의 주체로 선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새해에는 여성의 출산과 육아가 군대 경력처럼 ‘가산점’주며 인정되는 나날이기를 감히 소망해본다. 물론 군대와는 비교하기도 어려운 가치 있는 경력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