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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동성애자 처벌하면 軍 성폭력이 없어진다고?

[인권으로 읽는 세상] 군형법 92조 6 폐지, 군 인권 문제 해결의 시작

지난달 24일 육군보통군사법원은 동성애자 군인 A 대위에게 군형법 92조 6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군인이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면 징역에 처한다는 군형법 92조 6항은 △법 조항 자체가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근거로 만들어진 점, △합의된 성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는 점, △동성애가 군 전투력을 하락시킨다는 편견으로 만들어진 법이라는 점에서, 오랜 폐지 요구가 있었다. 2006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도 폐지를 권고했고, 2012년 UN국가별보편적정례인권검토(UPR)의 폐지 권고, 2015년 유엔 자유권위원회의 폐지 권고가 잇따랐지만 2013년 '계간'이 '항문 성교'로 개정되었을 뿐 폐지되지 않았다.

이번 A 대위 사례는 2013년 '계간'이라는 용어가 '항문 성교'로 개정되었다고 해서 이 법의 본질적인 내용인 '동성애자'를 처벌하는 법이라는 점이 바뀌지 않았음을 확인해 주었다. 또한 군에 의한 기획 수사로 조사를 받고 기소될 것으로 알려진 약 20명이 이후 법정에 세워져 유죄 판결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성 소수자들과 인권 운동 활동가들의 폐지 요구, 국내외 인권기구의 지속적인 폐지 권고에도 남아있는 군형법 92조 6은, 국가가 동성애자를 처벌할 수 있음을 확인시키는 대표적인 반(反) 인권 악법이다.

동성애자를 처벌하면 군대 내 성폭력 없어진다?

폐지되어 마땅한 조항이 유지되는 배경은 편견에 기댄 혐오다. 군형법 92조 6이 폐지될 경우 군대 내 성폭력이 처벌되지 못하고 조장될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마치 동성애자가 군대 내 성폭력의 원인인 것처럼 왜곡하는 주장은 군대를 가야 하거나 자식을 군대로 보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불안을 부추긴다. 서열과 위계질서가 강하고 인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의 군대 상황을 감안하면 불안이 커질 만하다.

그러나 이 조항은 군대 내 동성 간 성폭력에 대한 처벌과는 무관한 법이다. 군형법 92조 6(추행)은 현역에 복무하는 장교, 준사관, 부사관, 병사 및 준 군인의 신분을 지닌 자에 대하여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2년 이하의 징역으로 형사 처분하는 조항이다. 군형법은 '제15장 강간과 추행의 죄' 아래 92조의 1부터 8까지 성폭력 관련 범죄를 다루고 있다. 이 중 92조의 6은 강제성과 무관한 성행위 자체에 대한 처벌이다. 실질적으로 적용해온 판례에서 드러나듯 부대 안인지, 부대 밖인지, 상호 동의인지 여부와는 무관한 동성애자 군인 간의 항문 성교, 유사 성교 행위가 이 법의 판단 대상이다. 피해자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성행위와 체위를 처벌하는 조항일 뿐이다.

군대 내 성폭력은 일상적이다. 부대를 배정받고 이등병의 신분으로 들어가면 언어적 성폭력이 '친밀감과 장난'이라는 말로 둔갑한다. "여자랑 잔 이야기 좀 해봐", "훈련소에서 몽정은 몇 번 했어?"와 같은 질문을 하며 조롱하고 비웃는 과정은 신병을 남성 동맹에 가입시키는 과정이다. 샤워할 때 "바닥에 비누 떨어졌네. 좀 주워줘"와 같은 '장난'도 흔하다. 부끄러워하거나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남성 군인은 성적 약자로 여겨지며 괴롭힘당하기도 한다.

남성 동맹에 진입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군대 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피해를 말하기 어렵게 한다. 계급과 남성성이 권력이 되는 군대 내 남성 동맹에서 한 번 탈락하면 2년간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군인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어렵게 만든다. 군대 내 성폭력의 원인이 동성애인 것처럼 왜곡하는 진단은 군대 내 폭력과 인권 침해의 원인을 은폐하며 인권침해의 구조를 존속시킨다.

군대에서 성폭력은 개인의 성적지향과는 무관하게 발생한다. 위계질서를 확인시키기 위해 상관이나 선임이 성폭력을 가하며, 굳건한 남성동맹을 확인시키려는 군대의 관행이야말로 성폭력의 원인이다. 남성성의 위계가 견고한 군대에서는 오히려 동성애자가 군대 내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군대가 가지고 있는 '남성적 지배 동맹', 그리고 위계질서에 의한 폭력을 군 기강과 전투력으로 감추는 것이야말로 군 인권 문제의 본질이다.

남성적 지배 동맹을 강고히 하는 군대

군을 전역하고 대학교에 복학했을 때 학교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대화보다 위계, 설득보다 윽박지름에 익숙해져 있던 군을 전역하고 대학에 돌아가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물론 학교나 대학이란 공간도 위계와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지만 군대처럼 획일적으로 강요되지도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군 경험은 나에게 뭘까?'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자대 배치를 받고서 군대에서 느낀 문화는 남중·남고의 문화와 유사했다. 손쉽게 위계를 형성하고 내 남성성을 표출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하는 곳, 음담패설과 성적 농담을 하며 친밀감을 형성했다. 특정한 남성성 모델에 근접할수록 약자에 포함되지 않고, 괴롭힘과 폭력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향할 수 있는 곳이었다.

군대는 특정한 남성성을 하나의 모델로 삼는다. 그 남성성은 주로 선임이나 상관의 인정을 통해 확인된다. 그 인정에 폭넓게 활용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여성과의 성관계, 그리고 '여성스러움'의 부정이다. "휴가 가서 여자 친구랑 얼마나 했어?"라는 이야기가 선임자들에게서 마구 튀어나오는 건, 군을 경험한 한국 남성에게 너무나 익숙한 경험이다. 심지어 함께 휴가를 가 성매매 업소를 가고 복귀해 과시한다. '여성스러움'은 조롱과 폭력의 명분이 되니 '여성스럽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같이 성매매 업소를 가고 자신의 성 경험을 과시한다. 남성 동맹 안에서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이는 반복된다. 만약 이야기하기 부끄러워하면 무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고 기분 나빠하면 선임을 무시한다며 폭력이 가해진다.

한국 군대는 남성에게 폭력적 섹슈얼리티를 강요한다. '성욕에 가득 찬, 여성을 대상으로 삼아 지배하는' 남성을 키워내는 것이 한국의 군대다. 남성과 남성이라는 성적 주체의 관계는 용납되지 않는다. 군대를 오직 '지배하는' 자로서의 남성만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군대 내 여군이 겪게 되는 성폭력 피해가 반복되는 데에도 근본적 해결이 안 되는 이유도 그것이다. 누구도 성관계에서 대상이어서는 안 된다. 성폭력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키고 누리지 못하게 하는 폭력이다. 군대 내 성폭력의 해결을 위해서도 동성애자를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 6은 당장 폐지되어야 한다.

군형법 92조 6 폐지는 군 인권 해결의 시작

한국의 군대는 70년의 기간 동안 끊임없는 인권 침해와 국가 폭력의 상징이었다. 아직도 미해결된 군 의문사 사건, 가혹 행위로 인한 피해자 그리고 동성애자나 '여성스러움'을 이유로 발생하는 괴롭힘과 폭력 사건은 지금도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군대 안에 그치지 않는다. 대부분의 남성이 길들여지는 군대의 문화와 질서는 직장·학교 등의 상명하복, 기강 잡기 등의 관행으로 이어진다. 사회 곳곳에서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훼손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A 대위는 재판정에서 눈물을 쏟았다. 그가 군에서 자신의 존재를 형성해온 시간과 노력, 누구도 훼손해서는 안 될 그의 존엄성이 군사법원에 의해 부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의 어떤 조직도 인간의 존엄을 부정할 수 없다. 만약 그것을 속성으로 삼는 조직이 있다면 그 조직이야말로 부정되어야 할 것이다. 군대가 군인의 존엄을 해치지 않음을 군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군형법 92조 6은 '나중'이 아닌 '지금 당장' 폐지해야 할 악법이다. 군형법 92조 6을 폐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