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텔레그램 성착취방 신상공개 요구가 향하는 곳

디지털 성범죄, 불처벌의 역사를 끝내자

텔레그램 성착취방 운영자 중 하나였던 ‘박사’의 체포 이후 세상이 들끓고 있다. 주요 운영자들의 닉네임과 함께 60여 개에 이른 대화방 참여자 26만 명이 공범자로 지목되었다. 이들에 대한 신상공개와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은 순식간에 수백만의 동의가 모여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성범죄 피의자로서는 최초로 ‘박사’의 신상공개가 결정되었고, 26만 명에 대한 신상공개와 처벌이 가능할지 다양한 의견이 분분하다. 신상공개는 이번 사건을 둘러싼 핵심적인 키워드가 되었다.

잔혹한 범죄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언제나 신상공개 요구가 뒤따랐고 인권운동은 신상공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신상공개가 범죄를 예방하고 안전을 뒷받침해야 할 국가의 책임을 가리거나 면피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범죄의 발생은 사회구조적 문제와 맞닿아있는데, 신상공개는 이러한 본질을 가린 채 일탈적인 개인에게만 주목하게 만든다. 신상공개제도의 도입 이유인 ‘알 권리’는 현실에서 “범죄자의 신상을 알려줄 테니 알아서 조심하라”는 식으로 작동해왔다. 그런데 이번 신상공개 요구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들었다. 디지털 성범죄를 심각한 폭력과 범죄의 문제로 제대로 다룬 적 없는 국가를 더는 용납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들렸다. 왜 신상공개 요구가 중요하게 등장할 수밖에 없었는지, 가담자 전원 신상공개 요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잘 살펴야 할 때다.

 

불처벌의 역사를 써온 수사기관과 사법부

한국사회에서 디지털 성범죄는 불처벌의 기록을 써왔다. 1999년 개설되어 2016년 폐쇄되기까지 17년 동안 100만 명의 회원이 있던 ‘소라넷’에서는 실시간으로 성범죄가 모의․실행되고 성착취물이 공유되었다. 하지만 운영진 중 1명만이 징역 4년을 받았을 뿐이고 불법수익금이 수백억 원에 이르는데 한 푼도 추징되지 않았다. 이어 제2의 소라넷을 자칭하는 웹사이트가 경쟁적으로 등장했으나, 2017년 회원 121만 명의 ‘AVSNOOP’과 42만 명의 ‘꿀밤’ 운영자에 대한 처벌은 징역 1년 6개월과 2년에 불과했다. 2018년 웹하드 카르텔은 성착취물의 업로더, 유통하는 플랫폼 업체, 삭제하는 디지털 장의사까지 촘촘히 연계하여 산업이 된 디지털 성범죄의 현실을 보여줬다. 2019년 버닝썬 사태로 연예인의 단톡방 성착취물 공유가 드러났고 10월에는 다크웹 아동성착취물 싸이트 ‘웰컴투비디오’에 대한 국제 공조수사 결과 검거된 이용자 310명 중 2/3에 이르는 200명과 운영자까지 한국인 남성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해당 운영자는 징역 1년 6개월을 살고 4월 출소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디지털 성범죄 판결이 솜방망이 처벌에 머무는 이유로 양형기준의 부재를 꼽기도 하지만, 문제는 피해자의 고통보다 가해자의 형편과 변명에 귀 기울여온 사법부에 있다. 2019년 서울여성가족재단이 진행한 <서울 여성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실태 및 인식조사>에서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로 ‘불확실하고 미약한 처벌’이 꼽혔고, 이는 응답자의 43%가 디지털 성범죄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지만 대부분 대응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최근 재판과정에서 2차 가해를 자행하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내려 여성단체가 ‘성적폐 판사’로 꼽았던 이가 텔레그램 성착취방 관련 사건을 맡았다가 논란이 일자 물러나는 일도 있었다. “전과가 없어서” “젊은이라서” “부양가족이 생겨서” “잘못을 뉘우쳐서” “피해자와 합의해서” 감형해주는 판례는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 사이에서 처벌을 피하거나 줄일 수 있는 노하우로 공유되었다.

야동에서 몰카, 불법촬영물, 지금의 성착취물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성범죄의 문제를 담아내기 위한 말에 대한 고민이 이어져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심각한 폭력으로 인식되지 않아온 데에는 이러한 범죄를 다루는 공권력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온 책임 역시 크다. 일차적으로 피해자가 먼저 접할 수 있는 공적 지원체계는 경찰이지만,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대다수가 경찰에 대한 불신을 이유로 차라리 신고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 수사관인 경찰이 피해자의 호소를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하거나, 수사과정에서 2차 가해를 가하는 일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의 부실한 대응과 사법부의 미비한 처벌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디지털 성범죄를 ‘경범죄’로 만들어왔다. 신고와 조사를 거쳐 재판에 이르는 과정에서 수사기관과 사법부를 통해 확인하는 국가의 모습은 디지털 성범죄를 심각한 폭력과 범죄로 다루지 않았다. 이러한 불신과 대응과정에서 겪는 2차 피해 등으로 많은 피해자들은 공적인 절차를 통한 문제 해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수사기관은 디지털 성범죄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음으로써, 사법부는 디지털 성범죄를 처벌하지 않거나 가볍게 처벌함으로써 불처벌의 역사를 공고히 했다.

 

제대로 듣지 않아온 국회와 언론

디지털 성범죄를 폭력의 문제로 명확히 규정해 수사하지도, 엄정하고 확실하게 처벌하지도 못하는 한계는 현행법 규정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성착취물에 대해 현행법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성적 촬영물이나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로 규정한다. 이는 남성의 시선을 대변하며 그 책임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효과를 낳는다.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 입법청원에는 이러한 범죄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요구, 성착취물 제작·유포·소비·확산하는 과정의 연쇄로 구성되는 디지털 성범죄의 조건을 고려하여 이 과정에 가담한 수많은 가해자가 처벌대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요구가 모여 있었다. 하지만 국회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어떠한 인지와 이해도 없이 야동을 보는 개인의 영역으로 치부하며 개정안을 졸속 통과시켰다. 논란이 일자 경쟁적으로 개정안을 발의하고 있지만, 총선 이후를 기약하며 이번 사건을 표심으로 활용하는 모양새다.

작년 텔레그램 성착취방이 알려지고 이제껏 침묵해왔던 언론들도 ‘박사’ 검거와 역대 최다 청와대 청원 이후 경쟁적으로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박사’에 대한 경찰의 신상공개 결정 하루 전 SBS는 ‘단독’이라며 먼저 그의 신상을 공개했다. ‘알 권리’와 ‘공공의 이익’을 내세웠지만, 정작 보도 내용에서는 ‘악마적 개인’에만 집중하며 호기심만을 쫓았을 뿐이다. 여성들은 디지털 성범죄의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며 해결을 요구해왔지만, 국회와 언론은 이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도 응답하지도 않아왔다.

 

신상공개 요구가 향하는 곳

또다른 대화방을 개설하면서 끊임없이 복제되어 ‘n번방’으로 불리게 된 것처럼 성착취물은 새롭게 등장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따라 이동해왔다. 성착취물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유통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것을 소비하고자 모여든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성착취물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통해 ‘지배하는 남성’으로서의 욕망을 재현하고 금전적인 이익을 공유해왔다. 바로 이 성착취 네트워크가 디지털 성범죄의 토대를 이룬다. 이러한 토대를 건드리지 않은 채 디지털 성범죄의 뿌리를 뽑겠다는 것은 아무리 의지를 밝힌다 하더라도 어불성설이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대한 신상공개 요구는 더 이상 디지털 성범죄에 불처벌의 기록이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외침이다. 한국사회에서 디지털 성범죄 문제가 드러난 이래 끊임없는 불처벌로 학습된 경험은 이번 사건 또한 제대로 처벌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가담자 전원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말하고 있지만, 26만 명은 중소도시 인구수 규모다. 어마어마한 숫자를 놓고 어떻게 수사와 처벌이 가능할지 가늠이 되지 않고, 현재의 법체계로는 이들을 모두 처벌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렇다보니 신상공개가 이들에 대한 현실적이고 ‘유일한’ 처벌 방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가해자들의 신상을 털어 공개하는 온라인 채널이 운영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피해자들에 대해 신상공개가 협박의 수단으로 동원되면서 ‘n번방’이라는 폭력과 착취가 이루어져왔기에, 신상공개로 가해자를 응징하는 것이 정당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신상공개 요구는 단지 가해자들의 얼굴과 이름 등의 정보를 취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적 복수가 아닌 공적 처벌을 통해서, 심각한 범죄로서 여겨지지 않아온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기록을 다시 써나가야 한다는 요구다.

 

가담자 전원을 철저히 수사하고 처벌하라

국가는 중대한 범죄에서 치안의 실패에 대한 책임과 분노를 범죄자의 신상공개로 돌리곤 했다. 그러나 신상공개가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면피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신상공개 요구 앞에는 숨겨진 말이 있다. 디지털 성범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을 거라면, 가해자가 또 다른 디지털 성범죄에 가담할 수 있는 조건을 방치할 거라면,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거라면, 신상공개‘라도’ 하라는 요구이다. 공적 체계로부터 보호받기를 기대할 수 없으니 사적으로라도 알아야 하겠다는 말이자, 이 사건이 그냥 덮어져서는 안 된다는 외침이다.

“알아서 피할 수라도 있게” 신상을 공개해달라는 절망적인 요구에 대한 국가의 응답이 “알려줄 테니 알아서 피하라”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지금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신상공개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디지털 성범죄가 써왔던 불처벌의 기록을 다시 쓰는 것이어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할 수 있는 법체계를 정비하고, 가해자에 대해 응당한 법적 책임을 물으며, 피해자의 대응과 회복을 지원하는 공적인 시스템이 마련되고 제대로 운영되어야 한다. 텔레그램 성착취방에 대한 대응 과정은 디지털 성범죄가 폭력이고 범죄라는 것을 분명히 하며 더는 이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선언이어야 한다. 텔레그램 성착취방 가담자 전원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은 그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