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안희정이 말하는 '성폭력 피해자다움'은 무엇인가

[인권으로 읽는 세상] 미투 운동과 안희정 재판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로 법정에 선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재판을 둘러싼 관심과 논란이 뜨겁다. 7월 2일 첫 공판이 시작된 이후 언론들은 앞 다퉈 피고인 측 주장과 증언을 일방적으로 여과 없이 보도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사건의 본질은 희석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여론이 확대되면서 2차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조만간 1심 선고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제대로 사건의 본질이 짚어질 수 있을지 우려된다. 


왜 말할 수 없었나-미투 운동이 던지는 질문 

올 초부터 이어져온 미투 운동의 흐름에서 안희정 재판은 주요 사건의 첫 선고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미투 운동은 그동안 여성들이 제기해온 성폭력 문제가 제대로 '사건화'조차 되지 못했던 현실을 드러냈다. 시간과 장소를 교차하면서 여성들은 일상에서 겪는 성폭력 문제를 말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법조계 미투로 촉발됐지만, 미투 운동의 시작은 2016년 5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과 맞닿아있다. 추모하고 애도하기 위해 모인 여성들이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자신의 경험들을 끄집어냈다. 일상에서 겪어온 차별과 폭력이 죽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함께 마주하며 이것이 개별적인 게 아닌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는 보편적 문제임을 확인했다. 서로의 경험을 말하고 듣는 시간은 피해자 개인을 넘어 여성인 우리가 함께 겪는 문제이며 함께 바꿔내야 한다는 연대의 감각을 구축했다. 

누군가 용기를 내어 자신의 경험을 드러낸 #Me_Too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용기로 전해져 #With_You라는 화답으로 이어졌다. 미투 운동은 그동안 말할 수 없거나 말해도 들리지 않았던 여성들의 경험을 여성들이 스스로 해석하여 말하고 함께 듣는 과정이다. 미투 운동이 제기한 우리 사회의 과제에 대한 토론도 이어지고 있다. 미투 운동이 요구하는 변화를 열기 위해서는 질문이 이어져야 한다. 그동안 여성들은 왜 말할 수 없었나. 말하더라도 왜 들리지 않았나.  


성폭력이 범죄가 되지 않는 '법'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고 20여년이 지났다. 과거 남성들의 '자연스런' 문화처럼 용인됐던 말과 행동들이 성희롱, 성추행 등으로 명명되고, 성폭력에 대한 인식은 확장되어 왔다. 이 과정에는 억압에 맞서며 성폭력을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로서 끊임없이 제기해온 이들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리하여 이제 성폭력은 범죄라고 누구나 말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에서 성폭력이 범죄로 인정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형법상 강간죄가 성립되려면 폭행 또는 협박 등 강제적이고 물리적인 행위의 동반 여부가 주요 요건이 된다.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할 정도에 이르게 한'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는가로 강간죄를 판단하는 '최협의설'은 성폭력이 범죄로 인정되는 것을 제한한다. 피해자가 얼마나 힘껏 저항했는가가 성폭력 판단의 주요 잣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범죄의 원인으로 가해자의 행위보다 피해자의 저항 정도에 주목하게 된다. 피해자가 저항하기 어려운 맥락들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죽을 만큼 저항하지 않으면 동의로 간주된다. 이러한 조건에서 성폭력은 성관계로 뒤바뀐다. 이렇다보니 안희정 재판에서 피고인 측이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억지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피해자가 일관되고 반복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관계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검찰청의 범죄 분석 통계, 여성단체의 상담 통계를 보면 성폭력 범죄는 매년 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실제 기소되어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성폭력을 범죄로서 접근해야 할 사법당국이 오히려 피해자를 탓한다. 이런 상황에서 성폭력이 범죄로 인정되는 것도 어려울 뿐더러 인정되더라도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양형기준도 낮은데다 그조차도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합의'와 '반성'이 감형요인으로 작용한다. 성범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가해자에게 관대한 법이 성폭력을 뒷받침한다. 이런 조건은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의 경험을 말하기 어렵게 만든다. 


'진짜' 피해자인가-피해자의 자격 

성폭력이 범죄가 되지 못하는 걸림돌로 기능하는 법적 한계는 '진짜' 피해자인가 피해자의 자격을 따지면서 여성에 대한 이중 잣대를 더 견고히 한다. 강압적인 상황에서 죽을 만큼 저항할 수 없었던 '무력한' 피해자가 아니라면? 피해자가 죽도록 저항하면 아무리 강압적으로 제압해도 성폭력이 발생되기 어렵다는 '이상한' 믿음은 피해자에 대한 의심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섹슈얼리티를 이용해 남성을 꾄 '꽃뱀'이 되어 남성이 피해자로 여성이 가해자로 뒤바뀐다. 


안희정 재판 1차 공판에서 피고인 측은 피해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동이나 장애인이 아니고 혼인 경험이 있는 학벌 좋은 여성으로서 안정적인 공무원 자리를 버리고 무보수 자원봉사로 일할 정도로 주체적이고 결단력 있는 여성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제한되는 상황에 있었다고 보는 건 맞지 않는다." '진짜' 피해자이려면 주체적이어서도 안 되고 결단력도 없어야 한다는 것인가. 이런 피고인 측의 입장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왜곡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성폭력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을 '성적 수치심'으로 드러내야 하고 듣는 이들로 하여금 동정심을 유발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의심이 거두어지고 '진짜' 피해자로서 인정받게 된다. 강요되는 '피해자다움' 속에서 피해자는 스스로 자신을 결핍된 존재,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서 위치 지어야 한다. 폭력의 경험을 말할 수 있는 위치와 자격이 이렇게 부여되는 조건에서 여성은 자신의 피해 경험을 온전히, 제대로 해석하고 말할 수 없게 된다. 

피해자의 말은 듣지 않고 가해자의 말만 듣는  

말해도 제대로 듣지 않는 사회에서 성폭력 경험에 대해 입을 열었을 때 피해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각종 불이익과 모욕이다. 조직 안에서 '예민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평가되거나, 미래를 꿈꿀 기회를 포기당하고,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기도 한다. 피해자의 말문을 막는 말들이 넘쳐나는 자리에 성폭력 범죄를 부정하는 가해자의 말만 남는다. '교육적 목적이었다', '정당한 평가 조치였다', '의도적인 게 아니었다', '반성한다' 등등.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죄 등의 보복성 역고소는 가해자가 자신의 말에 더 힘을 싣기 위해 취하는 방법이 된다. 성폭력 범죄를 억울한 일이자 부당한 처벌로 제기하며 가해자의 편에 서서 성폭력 범죄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성폭력이 누군가에게 수단화되는 상황은 피해자의 말하기를 더욱 어렵게 한다.  

자극적인 소재로서만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이번 안희정 재판을 전하며 언론은 피해자에 대한 피고인 측의 일방적인 평가와 모욕을 그대로 옮기며 공식화하고 있다. 성폭력 사건보도 가이드라인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어떻게 더 선정적으로 내보낼지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언론으로 피해자의 고통은 더 커진다. 이런 언론의 태도는 성폭력 성범죄에 맞서는 또 다른 누군가의 말하기를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말하는 대로 들을 줄 아는 사회로  

미투 운동은 성폭력으로 누군가의 존엄을 무너뜨린 현실에 대한 고발이고, 이를 정의롭게 바로 세우자는 요구다. 오랜 시간 여성들의 말하기가 부정되어 왔음을 드러내며 함께 말하고 듣는 시간이 이어져왔지만, 지금도 여성의 말하기, 피해자의 말하기는 억압되고 부정되고 있다. 가해자의 말만 들어온 이 사회가 달라지기 위해 우선 사법부가 피해자의 말에 제대로 귀 기울이길 바란다. 안희정 재판은 그 변화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미투 운동의 의미를 퇴색시키며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는 안 된다. 피해자를 향하는 의심과 비난의 화살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들을 수 있는 귀를 우리가 함께 갖게 되길 기대한다. #Me_Too가 가능했던 것은 #With_You라며 함께 듣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고 들리지 않던 사회에서 말하는 대로 들을 줄 아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미투 운동에 대한 응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