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상임활동가의 편지하나]아무일도 없었다?

4?15 총선 투표일 기표소 안, 약간의 긴장을 느끼며 호주머니 안에서 ‘국민발의권?국민소환권을 요구한다’고 적은 ‘쪽지’를 투표용지에 접어 넣었다. 그 은밀한 투표용지가 내 떨리는 손을 떠나 투표함 속으로 ‘톡’ 떨어졌고, 난 빠른 걸음으로 투표소를 빠져나왔다. 선관위와 법무부의 으름장 속에서 준비한 ‘거사’가 그렇게 싱겁게 끝나는 순간, 허탈함에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곧 입가엔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비록 나의 정치적 요구를 적은 쪽지는 한낱 쓰레기로 취급될 테지만, 내 주권의 행사를 대표자를 뽑는 것에만 가두지 않고, 내 주권을 대표자들에게 모두 위임하지도 않겠다는 의사를 그 작은 ‘일탈’로 밝혔다는 사실에 나는 작은 기쁨을 맛보았다. 물론 내가 투표함에 넣은 그 은밀한 종이는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하지만 이번 행동은 대표자를 뽑는 투표함 외에 주권자가 직접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다른 투표함이 필요함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다. 내 경우, 다른 투표함에 대한 갈증은 국회의사당을 차지한 사람은 개혁적이건 그렇지 않건 모두 ‘그놈이 그놈’이라는 정치권에 대한 환멸과 맞닿아 있다. 환멸은 개혁성향이라는 집권정당의 지난 1년간 행보를 보면서 완전히 굳어졌다.

이라크 파병에, 한-칠레 FTA에, 집시법 개악에, 호주제 폐지 무산에, 비정규직 확대 법안에, ‘개혁(?)’ 집권당이 주도한 정책 결정들은 하나같이 깊은 한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것이었다. 침략국으로 민간인 학살에 가담하는 것도, 식량주권을 내주는 것도, 사회적 약자들의 정치적 표현을 원천봉쇄하는 것도, 여성에 대한 차별을 온존시키는 것도, 더 많은 사람을 실업과 가난에 빠뜨리는 것도 모두 299명의 소위 대표자란 사람들의 손가락에 의해 결정됐다.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이 4년 전, 선거운동기간동안 그렇게 떠받들던 국회의사당밖에 엄연히 살아있는 주권자들의 반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도. 많은 주권자들이 분노에 떨고 절망했지만, 주권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다음 선거 때 안 뽑아준다’는 무력한 다짐이 전부였다.

지금의 대의제 속에서는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대리자’들을 주권자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합법적인 통로는 하나도 없다. 더 ‘좋은’ 사람으로 국회가 구성된다고 한들 그들이 국민들의 정치적 요구를 모두 대변할 수 있을까? 국민이 모두 한 덩어리가 아니고 계급과 계층, 성, 인종 등에 따라 서로 다른 삶을 조건과 그에 따른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만큼이나 국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모두의 입장을 대표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그들의 대표자를 의회로 내보내기가 하늘에 별따기 만큼 어려운 현 정치구조에서 의회는 차라리 가진 사람들의 대리자 집단에 가깝다. 현 대의제가 ‘더 많은 민주주의’로 탈바꿈되지 않는 한 의회 밖 주권자들의 다양한 권력관계는 감춰지고, 그만큼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는 땅 속으로 꺼질 도리 밖에 없다. 주권자들이 자신의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정책결정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현 대의제를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사회가 민주주의라면, 주권자가 그들의 뜻을 거스르는 대표자에게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하고, 법의 제?개정, 폐지를 직접 발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국민소환권과 국민발의권에 대한 발상은 여기에서부터 나온다. 국민발의제와 국민소환제에 대한 요구는 뜬구름 잡는 소리도 결코 아니다. 스위스, 미국 같은 나라에서 실재하는 제도란다.ⅰ)

두 제도 도입을 통해 직접 민주주의로 한발 다가서자는 운동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본격화됐다. 탄핵결정에 아연실색한 국민들이 거리로 들고 나온 촛불의 의미는 ‘탄핵무효’가 그 전부는 아니었다. 그 속에는 고삐 풀린 의회를 통제할 수 있는 어떤 힘도 가지지 못한 주권자의 현 정치구조에 대한 분노와 개조의 열망이 있었다. 그런 열망을 가진 이들이 국민발의제와 국민소환제 도입을 주장하며 모였고, ‘국민발의권?국민소환권 쟁취를 위한 네트워크’가 꾸려졌다. 인권운동사랑방도 네트워크에 동참했다. 탄핵정국에서 총선 전까지 네트워크는 숨가쁘게 활동했다. 서명운동, 토론회, 만민공동회, 4?15 투표함에 발의종이 넣기, 국민발의 포스트-잇 붙이기 등등 단체와 개인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다양한 활동이 전개됐다. 특히 시민들이 자유롭게 다양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발산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어진 만민공동회는 미약하게나마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그러나 언론이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것은 4?15 투표함 쪽지 넣기였다. 토론회도 만민공동회도 코빼기 안 비치던 주류언론들은 갑자기, 투표함 쪽지 넣기가 선거법 위반인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투표함 쪽지 넣기의 상징적 의미가 뭔지, 국민발의제가 뭔지는 애초부터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언론들은 그 행위가 선거법 위반이 되어, 그것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선관위와의 팽팽한 대치 속에서도 강행하는 그림을 만들어 신문을 많이 팔려고 안달했다. 그리고 그 신문을 읽는 독자들에게 투표함이 무효가 될 지도 모른다는 식의 불안감을 유포시켜 이 행동의 철회여부에 관심을 가지도록 함으로써 또 한 부 더 팔아먹으려고 했다. 언론의 호들갑에 선관위의 입장도 보다 강경하게 변해갔고, 법무부도 거들었다.

투표함 쪽지 넣기로 투표함이 무효화될 리는 분명 없었다. 쪽지 넣기는 특정 정당의 당선을 위해 투표용지를 여러 장 넣는 부정선거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투표용지를 훼손시켜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도 결코 아니었다. 선관위도, 법무부도 이를 알고 있었다. 특히 선관위는 인권운동사랑방과의 전화질의를 통해 “무효화 사유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래서 선관위와 법무부(그리고 언론)는 ‘고심 끝에(?)’ 이 행동이 ‘투표소 내 소란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이 행동에 동참한 사람들은 애초부터 투표소 내에서 소란을 피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만일 투표현장에서 선관위가 제지한다면 순순히 응할 생각이었다. 다른 이들의 소중한 투표권 행사를 방해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4?15는 평화롭게 끝났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어떤 사람들은 선거권만이 주권의 전부라는 금기를 깨뜨렸다. 현실정치에서 대의제 이상의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술을 벗어 던졌다. 국민발의권과 국민소환권이 진정 우리 것이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주권자인 내가 나의 삶의 조건을 ‘직접 결정할 수 있다’고 하는 자신감과 용기. 동원당한 대중이나 손벽치는 관객에서 의사봉을 탕탕 내리치는 주권자로의 화려한 변신은 이제시작이다.

<참조>
ⅰ) 인권운동사랑방 홈페이지 자료실 ‘이것이 민주주의다!’ 토론회 자료집 참조 g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