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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쿠데타는 민주주의의 적일 뿐"

태국 쿠데타에 반대하는 태국인들

2006년 10월 19일은 태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지 한 달이 되는 날이다. 태국 내에서는 이번 쿠데타로 인해 운동 진영이 서로 다른 입장으로 분열되면서, 쿠데타를 시민사회와 민중운동이 빠진 하나의 딜레마로 간주하고 있다.

이 딜레마의 원인 중에 하나가 탁신 치나왓 전 총리 정권이 지금까지 태국의 문제 있는 역대 총리들 중에서 최악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탁신 총리 임기 동안 그는 대학과 국영 기업들을 독점 소유했고, 기본적으로는 배후에서 마약과의 전쟁을 벌여 태국 남부 지대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을 학살해왔다. 또한 수많은 독립적 기관들에 개입해 온 것은 별개로, 미디어와 언론인들은 고소를 당해야 했고 심지어 상원의원실이나 선거위원회(EC), 돈세탁감시실(AMLO) 등의 영역까지 탁신의 측근들과 그의 심복들이 들이닥쳐 궁지로 몰아넣어왔다.

태국의 군사쿠데타<br />
<출처; www.pbs.org>

▲ 태국의 군사쿠데타
<출처; www.pbs.org>

그렇다 하더라도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이 최선의 출구라 볼 수는 없다. 이는 탁신이 민중의 손으로 선출된 사람이기 때문에라도 더욱 그러하다. 물론 이를 두고 쿠데타에 반대하는 세력을 친탁신으로 분류해선 안된다. ‘쿠데타 반대 9.19 네트워크’는 이미 탁신이 권력을 잡고 있을 때부터 정권반대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왔다. 민주주의란 지름길이 없고 이중 기준을 적용시킬 성질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군사 쿠데타는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사실상 민주주의로부터 가장 퇴행하는 행동으로 봐야한다. 만약 이번 쿠데타를 인정하게 된다면 이는 앞으로의 군부 개입을 정당화하는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며, 군부 종속적 기준들을 확립해 나가는 길이 될 것이다.

태국은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끊임없이 군부에 의한 지배를 받아왔다. 그러는 동안 군부야말로 가장 파괴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특히 군부 쿠데타는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켜왔음을 충분히 증명해주었다. 1973년 10월 14일, 1976년 10월 6일, 1992년 5월 사태들을 포함해서 여러 사건들 중에서는 때론 전원이, 때론 수백 명의 학생들과 무장하지 않은 시민들이 군부의 총에 맞아죽기도 했다.

이번 쿠데타가 일어난 후 한 달 뒤, 군부는 또 한 번의 진정한 테러를 보여주었다. 민주개혁평의회(Council for Democratic Reforms)로 알려진 군사위원회는 손티 부냐라트글린(Sonthi Boonyarataklin) 장군의 지도 아래, 2주 통치가 끝난 뒤에는 국민들에게 모든 권력을 반환할 것이며 민간에게 이양할 것이라 약속했다. 그렇지만 이와 정반대로 민주개혁평의회(CDR)는 수라윳 출라논(Surayud Chulanont) 장군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그는 1992년 5월 저항 때 시위자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던 군인들 중 한 명이다. 뿐만 아니라 이후 손티 부냐라트글린(Sonthi Boonyarataklin) 장군은 “퇴역 장군들을 대우해야 한다”는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약속과 변화”를 내세운 그들의 이같은 책략들은 2006년 2월 초에 “쿠데타 발발과 같은 반민주적 행동은 절대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던 기만적 행태와 유사하다. 현재 민주개혁평의회(CDR)은 국가안보평의회(CNC)의 형태로 변형되었고 여전히 모든 절차에 있어서 최종 승인권을 행사하고 있다. 심지어 총리와 장관들을 비롯한 여러 관리들의 임면권까지 소유하고 있다.

태국 내에서 이번 쿠데타를 지지하는 옹호론자들은 대개가 보수주의자, 군주 지지론자, 신자유주의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쿠데타가 새로운 시스템을 한꺼번에 가져왔으며 이 안에서 점검과 균형들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가져갈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1976년 10월 6일 학살을 경험한 전 운동가들 중 일부는 “군사 위원회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없애 줄 것”이라는 광기어린 발언까지 해왔다. 지금까지 군부는 20세기 초에나 통하던 군법을 강요해오고 있는데, 여기에는 원한다면 어떤 시민들이라도 마음대로 체포할 수 있는 재판권 부여를 포함하고 있다. 군부는 5명 이상이 모여서 정치적 집회를 열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하는 성명을 제출했다. 이를 위반한 자들은 10,000바트(미화 250달러)까지 벌금을 내야 하거나 혹은 6개월의 형을 살아야 하기도 한다. 그 외 600개 이상의 라디오들이 폐쇄되었으며 탁신 치하 정치인들은 어떤 절차나 형도 주어지지 않은 채로 몇 주 동안 임시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최근 국가안보평의회(CNS)는 임시 헌법과 헌법 초안 작성 가이드라인을 통과시켰다. 군부는 헌법초안위원회를 허위로 구성해서 헌법 초안에 관련한 절차들에 직접 간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얼마 전에는 차기 헌법 검토를 위한 국민입법총회(National Legislative Assembly) 소속 242명이 선출되었다. 태국 군부는 모든 세력을 대표할 수 있는 구성원들을 뽑을 것이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3분의 1이상이 해군, 공군, 육군 부대 전 장교 출신이었으며 농민, 풀뿌리 활동가들이나 원주민들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태국 군부의 각료들은 하나같이 오래된 학교 출신들이며 과격 보수주의자들이다. 나이는 60대 이상이 대부분이며 전직 관리였거나 장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특히 각료들 중에서 니트라(Nitra Pibulsongram)란 인물은 태국 내 대표적인 신자유주의자이며 자유시장 지지자로서 지난 시절 탁신과 함께 일해 왔으며, 태국과 미국 양국간 자유무역협정(FTA)를 앞장서서 추진해 왔다. 이번 FTA 무역 거래는 미국이 제약 특허권을 억지로 강요함으로써 빈곤층과 HIV환자들의 삶을 말살하는 짓이다. 새로 임명된 노동부장관 역시 무역조합원들의 권리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여왔던 이들 중 한 명이다. 결국 시민사회와 민중운동 진영은 군사 위원회가 생성시키고 있는 이 같은 위선들을 제대로 파헤치는 것이 필요하다. 군부 정권은 그들이 주장해왔던 것과는 정반대로 자신들의 국정 간여를 일 년 이상 더 지속시키려 하고 있다.

태국 군사쿠데타에 반대하는 태국인들

▲ 태국 군사쿠데타에 반대하는 태국인들

지난 2006년 10월 20일부터 23일간에 걸쳐 진행되었던 태국사회포럼(TSF)은 세계사회포럼(WSF)을 모델로 해서 태국에서 열린 첫 번째 사회포럼 과정의 일부였다. 이 포럼에는 ‘민중은 평등한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라는 공동의 슬로건 아래 3천 명 이상의 시민사회 단체, 무역 노조, 학생 운동의 대표자들이 모였다. 이는 아마 지금까지 태국의 대중 집회 중 가장 큰 규모에 가까웠다. 포럼 선언은 태국 복지 국가의 주도적 창설에 다가가는 결정이었는데 이는 현 군부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들과는 배치되는 것들이다. 태국사회포럼(TSF)은 이 자리에서 현행 헌법초안자들은 사회적 정치 과정에서 배제되어온 이들, 예를 들면 장애인,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 젠더(LGBT), 원주민들과 성노동자들과 같은 사람들을 대표할 수 있는 확대되고 다양한 대표자들이 포함됨으로써 “순수한(genuine)” 병렬적 구성원들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국 민중들의 목소리와 진실을 향한 표현들이 방치되지 않으려면, “악의적 선포인(ill-proclaimed)” 군부 정권의 정치 개혁들과 싸워나가야 함이 필요하다. 그들은 결코 순수하고 진실한 정치 개혁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폭퐁 라완시리(Pokpong Lawansiri) 님은 태국 방콕의 젊은 사회운동가로서 '쿠데타 반대 9.19 네트워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쿠데타 반대 9.19 네트워크'는 쿠데타 발발 이틀 후 시민단체, 활동가, 학생들의 광범위한 연합으로 결성되었으며, 쿠데타를 반대하는 세미나와 시위 등을 개최해 왔습니다.
기사를 번역한 지은 님은 '경계를넘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
덧붙임

이 기사는 '경계를넘어'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같은 기사를 '경계를넘어' 인터넷 홈페이지(www.ifis.or.kr)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