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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임금을 안 줘도 되는 세상, 어떻게 가능했나?

경기침체 때문에 임금이 체불되는 게 아니다

<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 고용노동부, 추석 명절에는 임금체불 스톱! 체불임금 청산 집중 지도 (2016.8.30)
- 고용노동부, 설 대비 체불청산 집중 지도 실시(2016.1.21.)
- 올해도 임금체불 여전... 노동자 29만 명 1조2000억 원 못 받았다(2015.12.29.)
- 2014년 체불임금 1조3195억… 5년 만에 최대 (2015.2.3.)


명절 때만 되면 정부는 체불임금 규모를 발표하고 단속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고용노동부는 집중지도를 하겠다고 하고 검찰은 체불 업체를 적발해서 엄중 처벌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해마다 체불임금 규모와 피해노동자의 수는 늘어간다. 체불임금 규모는 2011년 1조 874억 1600만 원, 2012년 1조 1771억 6600만 원, 2013년 1조 1929억 7900만 원, 2014년 1조 3194억 7900만 원이며, 임금이 체불됐다고 신고한 노동자는 2010년 27만 6천417명, 2011년 27만 8천494명, 2012년 28만 4천755명, 2013년 26만 6천508명, 2014년 29만 2천558명*이다. 2016년 8월 기준 전국 사업장의 체불임금 총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32억 원 늘어난 9,471억 원이다.

임금체불이 경기침체 때문?

정부는 작년과 올해 체불임금액이 1조원 규모로 크게 증가한 원인으로 경기침체를 짚었다. 얼핏 들으면 경기가 나빠져서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임금을 못 주는구나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다르다. 경제위기가 있었던 2007년 이전에도 임금 체불로 신고한 노동자 수가 2004년과 2005년 각각 30만 명, 29만 명이라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 경기가 좋아도 기업은 그 돈을 공장을 확대하거나 회사자산을 구입하는데 쓸지언정 임금으로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재투자 명목이다. 경기침체로 이윤이 줄어들더라도 임금지급을 우선순위에 뒀다면 임금체불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기업주에게 ‘임금으로 줄 돈’ 자체가 아예 없는 것이 아니라 ‘임금으로 줄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언제나 임금 지불은 후순위로 밀려나고 임금체불은 자연스럽다. 체불사업장이 모두 망해서 돈을 못 주는 게 아니다. 임금체불로 신고한 노동자들에게 업체 운영 여부를 질문한 결과 운영 중인 사업장이 86.6%라는 사실이 이를 짐작하게 한다. *** 경기침체로 기업주가 어려워서 그랬을 것이라는 가정은 임금체불의 사회구조와 기업주의 책임을 은폐할 뿐이다.

조선업 구조조정 탓?

정부는 또 임금체불 규모가 커진 이유로 조선업 구조조정을 꼽았다. 그러나 이는 현상만을 말할 뿐 원인은 아니다. 조선업 구조조정이 임금체불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조선업이 다단계 하도급 구조이기 때문이다. 임금체불이 중소영세업체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2011년 전체 임금체불액의 68.1%가 5인 미만과 5~29인의 소규모 사업체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500인 이상의 대규모 사업장의 임금체불액은 전체의 3.5%로 매우 미미하다.** 2014년에는 100인 미만 사업장의 체불 건수가 11만 6795건으로 전체의 97.5%였다.* 한국의 산업구조는 대기업 재벌중심의 다단계 하도급/하청구조이기에, 경기에 상관없이 이윤을 챙겨가는 대기업과 그렇지 않은 영세업체의 양극화가 심하다.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납품단가 인하 등 ‘갑질’을 하면 영세업체는 노동자의 임금을 떼먹거나 임금을 낮추며 이윤을 챙기려 한다. 또는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유지하려 한다. 이주노동자는 최저임금도 주지 않거나 체불하기 쉬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체불임금 규모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2년 9,378명 240억여 원, 2013년 9,625명 281억여 원, 2014년 12,021명 339억여 원, 2015년에는 상반기 6,789명 204억여 원이었다.)

그리고 회사가 어려워서 조선업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노동자들이 잘려나가고 임금을 못 받는 것만은 아니다. 올해 현대중공업은 2분기에도 3천억 원의 흑자를 냈다. 흑자임에도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하고 하청업체들을 압박한다. 대우조선해양의 전임사장은 적자임에도 21억 원의 보너스를 챙겨가기도 했다. 그러니 하청업체는 도산하고 비정규직들을 임금도 받지 못한 채 거리로 쫓겨난다. 2015년 1월부터 2016년 4월까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85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현대중공업은 희망퇴직으로 정규직 3천명 이상을 쫓아낼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업체의 경우 2015년 말에서 2016년 3월 말까지 16개 업체가 폐업해 34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해양플랜트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 중 90%가 사내하청이었다. 사내하청업체는 절반 이상을 ‘물량팀’이라고 부르는 일용직을 쓴다. 일용직이니 물량팀을 이끈 업체는 손쉽게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튈 수 있었다. 경영실패의 책임은 기업주가 지지 않고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임금을 떼이며 경영실패의 결과를 떠안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체불임금노동자가 늘어난 것은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 다단계 사내하청업체를 양산하는 정책 탓이다. 정규직을 최소화하며 인건비와 노동자의 권리를 뒤로 돌리는 정부의 노동정책이 만들어낸 것이다. 경영 실패를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으로 가능하도록 한 정책이 문제다. 최근 국회는 하도급업체의 임금체불을 방지하기 위해 법개정안을 내놓았다. 발주자(원청)가 하도급업체인 수급사업자와 근로자에 대한 임금대금, 자재대금, 하도급대금이 항목에 맞게 지불하는지 확인하도록 하는 안이다. 그동안 노동조건 및 임금에 대한 원청의 책임성을 묻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나아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책임을 하청업체가 지는 현실은 건드리지 않고 있다. 대기업이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면서도 대금 지불을 지연하거나 단가를 낮추며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원청이 자재대금과 임금대금 등을 지급하지 않아 업체가 도산하거나, 업체는 도산을 모면하기 위해 유동성이 있는 임금을 주지 않는 것으로 대체하는, 임금체불을 양산하는 산업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개선하고 수익배분의 심각한 불균형도 바로잡아야 한다. 최근 재벌개혁이 제기되는 맥락도 이 때문이다.


주지 않아도 되는 임금은 없다!

해마다 임금체불 규모나 피해자가 줄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2004년부터 국가가 체불임금의 통계를 잡기 시작했으나 대책이 크게 달라지고 있지 않은 탓이다. 현행법상 체불 사업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돼있으나 실제 벌금 100만원 ~200만원에 그치고 있다. 임금체불의 한 유형인 최저임금 위반사업장에 대한 송치율은 2%에 불과하다. 체불에 따른 벌금은 체불액의 10%정도로 사업주는 체불액이 클수록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의 벌금만 내면 된다.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아도 될 정도다. 경기가 어려우면 임금을 안 줘도 된다는 인식이 있기에 임금체불 기업주에 대한 처벌도 낮은 게 아닌가 묻게 된다. 정부는 체불하는 사업주를 엄정하게 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발표하지만 그동안 임금체불로 구속된 숫자는 많지 않다. 올해 상습체불사업주로 공개된 업체와 기업인이 116명과 비교해도 적은 숫자다. (*구속자수: ‘09년:2명 →’10년::11명→‘11년: 13명→’12년:19명→‘13년: 9명→’14년: 31명→‘15년: 22명 → ’16년 7월 현재 7명) 단지 근로감독관 수가 적어서만은 아니다. 임금을 주지 않으면 회사에 불이익이 온다는 신호를 정부가 주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계에서 임금체불기업주에 대한 이행강제금 제도 도입, 체불사업주 명단공개 제도의 실효성 강화, 징벌적 배상제 마련, 각종 정부 지원 제한 등의 제도를 제안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임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복지가 거의 없고 노동소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노동자에게 임금체불은 생계중단을 의미한다. 근로기준법에서 기업주가 갖고 있는 여러 채무 중 임금을 우선변제해야 하는 채무로 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임금채권 우선변제) 그러나 민사상 채권에 대한 권리 보전이 10년인 것에 반해, 임금 채권에 대한 권리는 3년만 인정하고 있어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을 받아낼 수 있는 기한은 짧다. 아직 우리 사회가 임금을 노동자의 것, 노동자의 권리로 보기보다 ‘사장이 번 돈에서 일부 임금으로 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지난 6월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가 체불 임금을 독촉하자 사업주가 급여 440만원을 100원짜리 동전과 500원짜리 동전 2만여 개로 지급하는 황당한 일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다.

노동자가 일해서 굴러간 회사에서 노동자가 일한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임금은 노동자의 권리다. 하지만 경기불황으로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는 구호가 횡행하는 현실에서 노동자들은 임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힘들다. 아니 고용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라는 말에 무료노동을 감내하게 된다. 입사와 동시에 계약관계는 계약이 아니라 순종서약서로 변하는 현실에서 노동자는 애초 계약한 임금수준을 지급하라는 당연한 요구조차 하기 어렵게 된다. 임금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고 체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권리행사를 위한 정보가 공유돼야 한다. 회사의 경영상태는 어떤지, 임금산정에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노동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주의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도 물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정보를 제공하는 업체는 거의 없으며 그나마도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다. 임금에 대한 권리는 노동자들이 모이고 함께 행동할 권리를 통해 확장된다.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조건에 대한 권리, 노조결성 등 노동3권에 대한 권리는 이렇게 만난다. 거꾸로 말하면 여러 노동자의 권리가 축소될수록, 임금에 대한 인식도 낮아지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경기가 나쁘면 임금을 못 받을 수 있지, 임금을 적게 줄 수 있지 하는 생각들에 맞서 더 크게 함께 외치자! 주지 않아도 되는 임금은 없다고.


*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2015년 발표
** 강승복 <체불임금의 실태와 정책과제>, 2012.8.
*** 강승복, <체불임금의 실태와 시사점>, 2012.4.
**** <2015 조선자료집>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