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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근로기준법 위반, 인권침해 전국에서 가장 높아

상록수역에서 8개 공단 실태조사를 할 때였다. 퇴근 후 딸과의 저녁 약속을 기다리는 중년의 여성노동자가 설문을 하고 있었다. 희망임금을 적을 즈음에 딸이 도착해서 엄마의 설문을 같이 보았다.

“얼마나 써야 하죠?” 그녀가 내게 묻는다.

“받고 싶은 만큼 쓰세요. 희망하는 임금을 쓰시면 돼요.”

옆에 있던 딸이 “엄마, 어차피 희망임금이라잖아. 많이 올려서 써.”

망설이던 그녀는 160만 원을 적는다.

실태조사 문항 중 지금 받는 임금으로는 생활이 빡빡하다고 했던 그녀는 현재 140만 원을 받는다고 했다. 적어도 200은 넘어야 생활할 수 있지만 그렇게 쓰지 못한다. 옆에 있던 딸은 아르바이트할 때 일한 것보다 터무니없이 낮게 받는 경험이 많아서 안다며 엄마의 소심함을 답답해했다.

2015년 8개 공단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2013년 실태조사 결과에서와 마찬가지로 저임금 노동자들의 희망임금은 높지 않았다. 반월시화공단 노동자의 희망임금은 226.2만 원으로 주 40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보면 180.8만 원이다. 한 번도 제대로 받아본 적도 없기에 많은 임금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못 받는 현실에서 욕심도 못 부리는 게 가난한 이들, 저임금노동자들의 마음이 처한 자리이리라.

이번 실태조사는 민주노총에서 같은 내용으로 8개 공단이 동시에 설문했기에 공단별로 비교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임금, 노동시간, 근속 기간과 경력, 출퇴근 시간, 희망임금, 근로기준법 준수 여부, 인권침해 등이 포함됐다.

반월시화공단의 노동자 임금의 평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각각 190만 원, 166.3만 원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의 전국적 평균인 204.6만 원과 176.7만 원보다 낮다. 시간당 임금의 평균은 6596.4원으로 8개 공단 시간당 임금 평균값(7180.7원)보다 600원 가까이 낮았다. 8개 공단 중 웅상과 광주 다음으로 낮다.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42.2%로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10명 중 4명 이상이 저임금 노동자인 셈이다. 여성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의 평균은 5889.6원으로 매우 낮아 2015년 법정 최저임금 수준이다. 안산에서는 성별 임금 격차가 심해 여성 노동자는 50%가 저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그녀가 떠올랐다.

고용형태는 정규직은 55.8%, 비정규직은 44.2%였다. 비정규직의 67.3%에 해당하는 28.0%가 근로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안산공단의 고용불안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1년 미만 일을 하는 단기근속자 비율이 31.1%로, 우리나라 단기근속자 비율과 거의 비슷하다. 반면 10년 이상 장기근속자는 11.1%로 전국 평균보다 안산이 크게 낮다. 또 정규직조차 단기근속자 비율이 22.4%나 되니 정규직이 말만 정규직이 셈이다. 세대별로 보면 20~30대는 임시직 비중이 높고 40대는 5.2%로 임시직 비중이 작아졌다가 50대가 되면 다시 임시직 비중이 11.1% 높아지는 V자 모양의 추세가 나타났다. 규모별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임시직 비중이 적다가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임시직 비중이 17.7%로 높아졌다. 아마도 일정 규모가 되면 파견노동을 사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렇게 저임금 고용불안을 그대로 보여주는 실태조사 결과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과 인권침해가 어느 공단보다도 많았다는 사실이다. 근로계약서를 정식으로 교부하지 않는 경우가 72.3%에 이르고, 연차 휴가를 노동자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절반이 넘는 52.7%였다. 노동자들이 법에 있는 최소한의 권리도 못 받고 있으니 더 적극적인 캠페인 등의 활동이 필요하다. 인권침해를 겪은 노동자 비중은 응답자 중 절반이 넘는 55.7%였다. 비정규직에 대한 인권침해는 심각해 비정규직 중 64.2%가 인권침해를 겪었다고 응답했다. 전국 평균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폭언, 폭행이나 모욕적 처우나 화장실을 마음대로 가지 못하게 하거나 복장을 단속하는 일이 작업장에서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반달(반월시화공단 전략조직화사업단)에서는 공단 지역에 노동자 실태를 알리는 선전활동도 하고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도 할 예정이다. 그리고 월담은 하반기에 노동자들이 구체적으로 겪은 인권침해의 내용이 무엇이고, 그로 인한 일상생활 및 직장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알아보기 위해 심층면접을 할 예정이다. 씁쓸하지만 권리의 주체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권리박탈의 현실을 파악하고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