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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미경의 인권이야기] 명실상부 노동기본권 최악의 나라

박근혜 정부의 노동탄압, 민주주의 억압에 대해 높아지는 국제사회 우려의 목소리

2014년부터 국제노총(ITUC)은 국제권리지수(Global Rights Index)를 발표한다. 각국에서 노동기본권이 법과 제도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어느 정도 보장되고 있는지 몇 가지 기준으로 측정하여 1에서 5+까지 등급을 매겨 발표한다. 지난 두 해 동안 한국은 5등급을 기록했다. 5등급은 ‘노동기본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나라’라는 뜻이다. 5+등급은 ‘내전 등의 상황으로 노동기본권이 보장될 수 없는 나라’여서 사실상 5등급은 최하위라는 뜻이다. 이밖에 국제노총 인권/노동기본권위원회(Human & Trade Union Rights Council)는 ‘노동기본권 위험국’(노동자들의 권리가 전혀 보장되지 않으면서 해당 나라의 노동조합이 취약하거나 심각한 탄압으로 안전과 활동이 담보되지 않아 국제적인 캠페인이 집중되어야 하는 나라)과 ‘노동기본권 감시국’(노동기본권 침해, 노동조합 탄압이 빈번히 일어나 항상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한 나라) 목록을 두고 있다. 한국은 ‘노동기본권 감시국’에 해당한다. 국제노총의 분류에 따르면 한국과 인권/노동기본권 현실이 동급인 나라는 중국, 인도,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그리스, 과테말라, 라오스, 말레이시아, 이집트, 스와질랜드, 터키, 잠비아, 짐바브웨 등이다.

그렇다.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비롯해서 파업만 했다하면 불법파업 딱지를 붙여 노조 간부들을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구속하고 어마어마한 액수의 손배가압류로 노동조합의 숨통을 틀어막는 관행, 사용자들의 노조파괴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불처벌 등 한국에서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은 노동자들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현실을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국제적인 연대를 호소하는 것은 민주노총 국제국장으로서 나의 역할이다. 그러나 가끔, 아니 자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한국의 노동기본권 현실이 과테말라와 같은가.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공장을 폐쇄한 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옆 동네에 버젓이 새 공장을 가동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고(이는 대부분 한국인 사용자가 운영하는 의류공장에서 발생한다), 심지어는 노조 간부가 소리소문없이 끌려가서 살해당하는 과테말라의 현실이 한국과 같은가. 한 사업장 내 전체 종업원의 30% 이상이 가입해야 비로소 노조를 설립할 수 있고, 주력산업인 의류공장이 밀집한 수출가공지대 내에서는 아예 노동조합 설립이 불가능한 방글라데시와 한국의 현실이 같은가. 노동조합 간부들이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으며 체포되고 평화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한 노조간부들이 ‘폭탄 테러’ 공격으로 목숨을 잃는 터키와 한국의 현실이 같은가. 국제적인 관심과 연대를 촉구하기 위해서는 한국을 ‘노동기본권 보장이 최악인 나라’로 규정하는 것이 이롭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심각한 탄압을 받고 있으니 주목해달라”고 이야기하자면 세계 곳곳 노동자들의 현실이 훨씬 더 참혹하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출처: 노동과 세계

▲ 출처: 노동과 세계


그러나 최근, 특히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이후 벌어지고 있는 민주노총과 가맹조직들에 대한 탄압은 한국을 ‘명백한 노동기본권 최악의 나라’로 만들었다. 11월 21일 민주노총 및 산별노조 사무실 압수수색, 집회 참가자를 색출하기 위해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 경찰이 노동조합 조합원 명단 및 CCTV 기록 제출 요구, 한상균 위원장에 대한 경찰의 체포를 막으려 했던 조합원을 ‘범인은닉 및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 집회 참가자 구속 및 대대적인 소환, 사용자와 통상적인 교섭을 통해 단체교섭을 체결한 후 이에 응하지 않은 업체가 노조 간부들을 ‘공갈 협박죄’로 고소하자 이를 검찰이 받아들여 구속, 노조활동을 탄압하고 인권을 침해한 풀무원에 맞서 싸운 화물연대 조합원들을 구속... 최근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그냥 나열하기만 해도 해외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끔찍하다”, “이해가 잘 안 된다.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는 반응을 보인다. 민주노총 영문 페이스북에 올린 민중총궐기 탄압에 관한 포스팅에도 “한국은 민주국가인가 독재국가인가”, “이게 남한식 민주주의냐” 등의 댓글이 달렸다. 한국에서 노동조합 간부가 구속되고, 평화적인 집회를 탄압하는 일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해외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현재의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국제노총, 그리고 7개의 국제 산별노련이 함께 하는 레이버 스타트(Labour Start) 캠페인 <박근혜 정부는 노동개악 반대투쟁에 대한 공안탄압을 중단하라!>는 15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전파되고 있고, 12월 2일 현재 8,400명이 동참했다. 각국 노동조합들은 “12월 5일 평화 집회를 보장하라”는 요구를 담은 서한을 박근혜 대통령과 각국 한국대사에게 보내고 있다.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ILO 8개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국제노동기준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했다. 한미 FTA, 한EU FTA를 체결하면서도 같은 약속을 했다. 1996년 노동법과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로 한국의 노동법/노사관계는 OECD로부터 특별감시감독을 받았다. 이런 이유로 각종 국제기구들, 한국의 주요 교역 대상국 역시 군사독재 시절로 회귀한 듯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주목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정부가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마구잡이식으로 탄압하면서 세계의 눈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다. 12월 5일 2차 민중총궐기가 평화적으로 보장될 것인지, 민주노총이 12월로 계획하고 있는 노동개악 저지 총파업이 보장될 것인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음을 정부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 국제노총 및 국제산별노련들에서 "박근혜정부의 노동개악 반대투쟁에 대한 공안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이 진행 중이다. 세계 곳곳 더욱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너른 공유와 참여를 부탁드린다. <온라인 서명하러 가기>
덧붙임

류미경 님은 민주노총 국제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