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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파장? 파장!] 세월호 참사 인권침해에 인권위는 없었다

물대포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라!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서 304명의 목숨이 속절없이 생명을 잃어가는 데도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구조는 없었고 허위보도만 넘쳐났다.”

기자회견문을 읽는 활동가의 목소리가 울컥한다. 건조한 문장을 읽는데도 울컥하는 것은 그때 참사를 화면으로 본 사람으로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고통을 보아왔기에 그냥 문장으로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여전히 밝혀진 게 없는 현실에서 현재진행형인 아픔으로 다가오기에 그런 것이리라. 그러니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족들의 마음은 오죽하랴.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304명’을 살아 숨 쉬며 친구들과 가족들과 뛰어놀던 사람이 아니라 그저 숫자로만 읽는 사람들이 있다. 정부를 비롯해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꺼려하는 권력자들이 그렇다. 그런데 더 큰 불행은 이렇게 읽는 사람들이 이들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만 사람의 생명과 존엄성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인권을 다루는 국가인권위원회도 세월호 참사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진정인에게 기각결정도 제대로 통보하지 않아

벌써 1년의 시간이 흘렀건만 인권위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또는 세월호 참사 추모와 항의행동을 막았던 인권침해에 대해서 의견표명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작년 6월 9일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고 정부의 책임을 묻는 사람들을 연행하거나 청와대 인근 집회를 모조리 금지하던 인권침해에 대해 시민들이 집단 진정을 했다. 진정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제대로 된 조사도, 제대로 된 결정도 없었다. 그게 부끄러웠는지 기각결정문도 제대로 통지하지 않았다.

5월 19일 열린 '세월호 집회 인권침해 진정 외면 규탄 및 물대포 의견표명 촉구' 기자회견

▲ 5월 19일 열린 '세월호 집회 인권침해 진정 외면 규탄 및 물대포 의견표명 촉구' 기자회견


당시 집단진정의 대표 진정인이었던 나에게 기각결정은 통보되지 않았다. 주소는 사무실도 아니고 집도 아닌 나도 모르는 곳으로 되어 있었다. 전화로 요구를 해서 최근에야 받아보았다. 당시 집단진정은 7건이었는데, 이 중 2건은 아직까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경찰과 검찰의 주장만 받아들여 기각결정

‘가만히 있으라'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을 연행하면서 남성경찰이 여성의 몸을 더듬는 등 성추행이 있었고 치마나 반바지를 입은 여성의 속옷과 다리가 훤히 보이는 등의 모욕적 처우가 있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기각결정의 사유는 정말 가관이다. 과거 인권위의 판단보다 후퇴됐다. 유치장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은 진정인이 항의하자 경찰은 불법채증을 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진정인이 계속 고함을 지르고 소란을 피워 채증할 목적으로 미리 고지하고 시작”했기에 괜찮다고 했다. 도대체 인권위가 그동안 판단한 것은 알고 기각결정을 내린 것인지 묻고 싶다. 이는 영장 없이 채증을 할 경우에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에 대해서만 채증하라고 인권위가 권고한 것과도 배치된다. 그저 목소리 높여 항의한다는 이유만으로 채증하는 것은 일종의 협박일 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박정희 기념관에 항의하러 갔던 사람들을 연행하면서 경찰이 에어매트도 깔지 않은 채 사다리차를 동원한 옥상 진입 작전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현장구조상 에어매트를 설치할 공간이 없었”으므로 인권침해가 아니라는 경찰의 황당한 주장을 받아들였다. 당시 청년들의 박정희 기념관 시위는 급박하게 연행할 만큼 위험한 상황도 아니었고 장기간의 시위도 아니었다. 그저 유인물 몇 장, 현수막 하나를 들고 있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기념관에 들어가자마자 언론에 노출되는 일을 막기 위해 급하게 안전장치 없이 연행한 것인데도 경찰 측의 주장만을 받아들였다.

또한 핸드폰을 영장 없이 압수한 것에 대해서도 “당시 상황으로 보아 피진정인이 법원에 영장을 받을 수 없는 때”라며 인권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기각했다.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압수했는데도 영장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경찰의 황당한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체포 당시 현장에서 ‘관련 물건’으로 압수한 것이 아니므로 영장주의의 예외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당시 경찰은 수사를 하면서 법원에 영장을 청구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헌법 제13조 제3항은 헌법상의 적법절차 원리의 하나인 영장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압수·수색은 수사기관의 강제 처분이다. 경찰이 국민의 물건에 대해 함부로 해서는 안 되기에 헌법상의 적법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결정했다.

또 세월호 참사의 정부 책임을 묻기 위해 서울 정부종합청사에서 기습시위를 벌인 학생에 대한 차별적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기춘, 남재준부터 즉각 해임하고 내각 총사퇴하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유인물을 뿌린 게 전부지만 진정인은 나이가 많아 구속됐다. 특히 당시 검사가 여학생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요새 집회가 너무 많아 주동자를 찾기 어렵다”며 “여학생이 나이가 많아 주동자일 가능성이 크고 통합진보당 당원이므로 구속해야 한다”는 차별 발언을 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줬다. 피의자의 신분을 설명한 것으로 보이며 검사가 그런 발언을 한 것으로 볼만한 객관적 자료(증거)를 확인할 수 없다면서 기각했다. 인권위가 경찰과 검찰 측의 대변인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결정문이다.

청와대 인근 집회 금지통보,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않아

언제부턴가 청와대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권리가 사라지는 ‘인권의 사각지대’가 됐다. 청와대 인근 집회는 모두 금지되고 경찰만 가득하다. 작년 청와대 만민공동회를 개최하기 위해 청와대 인근에 낸 5월 8일, 18일, 6월 10일 집회신고를 경찰은 계속 금지통보 했다. 그래서 인권위에 진정을 했지만 아직까지 판단하지 않았다.

담당 조사관에게 왜 아직까지 결정을 내리지 않는지 묻자 “지금 청와대 인근 집회 금지통보 관련 행정소송을 하고 있는 곳이 있어 그 결정을 보고 판단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정말 황당한 답변이다. 우리가 인권위에 진정을 한 것은 5월 8일과 18일 건이며, 6월 10일 건은 행정소송 중이다. 재판 중인 경우 각하 사유가 될 수 있기에 일부러 5월 8일과 18일만 진정을 했는데도 6월 10일 재판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한다. 청와대 인근 집회금지 통보라는 점에사 비슷한 사안이니 ‘청와대 인근 집회 금지통보는 과잉금지’라고 인권위가 결정하면, 그 결정이 우리가 하는 행정소송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재판 결과를 본다고 하니 한심할 따름이다.

인권위의 판단은 헌법과 국제인권기준을 바탕으로 하기에 재판보다 더 근본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헌법 제21조에는 “1.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2.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 (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에서는 청와대나 국회, 헌법재판소 등의 앞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하고 있으나 집회금지를 통보한 장소는 100M 밖이다.

게다가 이에 대해서는 2003년 헌법재판소의 판례도 있다. (선고 2000헌바67, 2000헌바83 결정) 헌법재판소는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 자신이 계획한 집회를 할 것인가를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만 집회의 자유가 비로소 효과적으로 보장되는 것이다. 따라서 집회의 자유는 다른 법익의 보호를 위하여 정당화되지 않는 한, 집회장소를 항의의 대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금지한다”고 했다. 결국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인권위는 1년의 세월을 나 몰라라 하며 보내고 있는 셈이다.

물대포에 대해 빨리 의견표명하라

이제 경찰은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려는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을 향해 거침없이 물대포에 캡사이신을 쏘아댄다. 가족을 잃은 것도 서럽고 아픈데 정부는 진상규명을 하기보다는 목소리를 진압하려고 한다. 5월 1일의 경우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쏘며 많은 사람들이 구토 증세를 보이고 호흡곤란을 겪을 정도로 위험했다. 게다가 유가족과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직사하면서 뒤로 넘어져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청래 의원실(새정치민주연합)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5월 1일 집회에서 40,000ℓt를 사용했는데 이는 2013년과 2014년 두 해에 걸쳐 집회현장에서 사용된 양의 9배가 넘는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최루액으로 파바(PAVA) 0.3%를 물대포에 섞었는데, 파바는 위험성이 심각한 물질(노니브아미드 10.7%)을 포함하고 있다. 화학물질의 특성과 위험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는 해외에서 제공하는 ‘MSDS(Material Safety Data Sheets·물질안전자료)’에 따르면 노니브아미드는 ‘피부접촉, 눈의 접촉, 섭취시 매우 해로움’, ‘심각한 과량 노출시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라 명시될 정도로 위험하다.

이렇게 최루액 혼합사용은 건강과 생명에 영향을 미치지만, 경찰관직무집행법이나 위해성 경찰장비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 이에 대해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는 5월 6일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인권위가 세월호 인권침해에 대해 방조하는 사이, 정부는 이제 유가족들에게도 공공연히 경찰 폭력을 자행한다. 유가족들을 연행하고 백주대낮에 유가족의 목을 조르기도 했다. 이제라도 인권위는 인권위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지난 5월 4일, 인권위는 교육부가 세월호 참사 관련 교내 리본달기를 금지하는 공문을 보낸 것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미 리본달기를 한창 금지하던 때에는 정작 아무 말 하지 않다가 참사 1주기를 맞아 새누리당 의원들도 노란리본을 달자 내린 ‘효과 없는 뒷북치기’ 결정일 뿐이다.

지금 가장 심각한 것은 물대포 사용으로 인한 인권침해이므로 인권위는 이에 대해 하루 빨리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 또한 헌법재판소에도 의견서를 제출해야 한다. 인권위법 제28조에 따르면 “인권의 보호와 향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재판이 계속(係屬) 중인 경우 법원 또는 헌법재판소의 요청이 있거나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법원의 담당 재판부 또는 헌법재판소에 법률상의 사항에 관하여 의견을 제출”하도록 되어있다.

청와대 눈치 보는 무자격 인권위원들 탓

얼마 전 언론보도에 따르면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해 위원장 성명을 발표하려 했는데 다른 인권위원들의 반대로 못 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인권위는 현병철보다 더 인권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최이우, 유영하 같은 인물이 인권위원으로 있다. 인권위법에는 임명권자만 있고 인선절차가 없기 때문이다. 인권위원 인선절차가 없어 무자격 인권위원들이 인권위원이 되고 그렇게 인권위원이 된 사람들이 임명권자의 눈치, 권력의 눈치만을 본다. 그래서 국가인권기구 간 국제조정위원회(ICC)는 한국 인권위 등급심사를 3번이나 보류했다. 8월 12일이면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임기도 끝난다. 인권위가 정부의 인권침해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현실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인물을 인권위원장으로 임명할지 우리가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덧붙임

명숙 닝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이며,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집행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