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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걸의 인권이야기] 어느 한 HIV 감염인의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사건에 대하여

아래 글은 지난 해 6월 한 보건소의 직원이 HIV 감염인 당사자의 동의 없이(상의 역시 없었음) 감염사실을 가족에게 노출한 것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 사건에 대한 인권위의 결정문 한 부분이다.

「감염병의 감염사실은 개인정보 중에서도 매우 민감한 정보에 해당하는 것이고, 감염병 중에서도 HIV 감염사실의 경우 그것을 둘러싸고 현존하는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더욱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정보로서, 해당정보를 다루는 사람에게 고도의 주의의무를 요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 사건은 HIV 감염인의 감염사실을 본인의 동의 없이 타인에게 알려준 사건이다. 요즘의 사회 정서상 개인정보 누출에 민감한 분위기를 보더라도 주민번호도 아닌 한 개인의 HIV 감염사실을 HIV/AIDS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에서 타인에게 노출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의료기관 등에서는 HIV 감염인을 진단하면 보건소에 신고하도록 되어있다. 보건소는 시.도에 이를 보고하고 시.도는 이를 질병관리본부에 보고한다. 그러면 질병관리본부는 관할보건소에 HIV 감염인을 상대로 역학조사 및 지원을 지시하고, HIV 감염인은 처음으로 ‘공무원’을 만나고 에이즈에 대한 정보 및 지원내용을 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은 HIV 감염인에 대하여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지 않도록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7조에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이 사건의 보건소는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7조를 위반하였다.

어쩌다 이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이 사건으로 좀 더 들어가 보자. OOO은 동생 ***과 같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동생은 OOO의 HIV/AIDS 감염사실을 알기위해 보건소를 찾아갔다. 동생은 OOO을 자신의 애인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애인이 HIV 감염사실을 문자로 통보했다’며 자신도 HIV검사를 받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에 보건소 직원이 ‘애인’의 이름을 물었고, OOO의 감염사실을 동생에게 말해주었다. 이 상황에 대한 인권위 판단을 살펴보자.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해당 보건소 직원으로서는 ***이 동거한 남자친구가 HIV에 감염되었다고 진술하며 HIV 검사를 요청한 것에 대하여, HIV 전파경로 파악을 위해 ***의 전 동거남 신상을 파악해야할 정당한 목적이 있었다 할 것이다.」

재현을 해보자. 누군가가 혹은 나의 애인이 (악의성이 있든 없든) 보건소를 찾아가 ‘이종걸이 HIV 확진을 받았다고 말했다’며 자신도 HIV에 감염된 거냐고 물었을 때 보건소에서 ‘이종걸은 HIV 감염인이다’거나 ‘아니다’라고 확인해준다면?

이는 명백히 문제가 있다. ***은 아직 HIV 양성 확진을 받은 게 아니기 때문에 섣불리 전파경로를 파악해서는 안된다. 단지 같이 살고 있는 ‘남자친구’라는 이유로 ‘남자친구’의 감염사실을 알려준 데에 보건소 직원의 정당한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설령 ***이 HIV 양성 확진을 받았다할지라도 전파시켰을 가능성이 있는 이의 신상을 확인해주는 방법으로 전파경로를 파악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런 경우 보건소는 HIV 감염 가능성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내담자에게 비밀이 보장되는 HIV 검사를 해주면 된다.

2013년 에이즈관리지침(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감염인 지원에 있어 보건소의 역할은 1) 역학조사 및 보건교육과 상담 2) 의료기관 진료 연계 및 진료비 지급이다. 보건소가 이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HIV 감염인의 동거인이나 가족에게 HIV 감염인의 동의 없이 질병정보를 알려줄 의무가 없으며 일방적으로 알려서는 안 된다.

따라서 보건소를 찾아간 ***은 OOO의 성접촉자도 아니고 배우자도 아니므로 HIV 검사를 유도할 필요가 없고, 감염사실을 알게 할 이유도 없다. 설령 ***이 OOO의 애인이라고 할지라도 보건소는 비밀유지 및 감염인 인적사항을 보호해야 하고, HIV 감염인 본인이 알리도록 권고를 했어야 하는 것이지 OOO과 상의도 없이 감염사실을 알릴 권한이 없다. HIV 감염인을 진단한 의사 또는 의료기관이 감염인과 그 배우자 및 성접촉자에게 에이즈예방에 필요한 사항을 알려야 하는 경우일지라도 감염인의 의사를 참고하여야 한다.

인권위의 조치의견은 더욱 실망스럽다

「***이 OOO의 감염사실을 확인할 목적으로 피진정인2(해당 보건소 직원)의 답변을 유도한 정황이 있는 점, 피진정인2에게 인권침해의 고의성이나 악의성이 있다고 할 수 없는 점 등을 감안하여, 피진정인2의 개인적인 책임을 묻는 것보다는 향후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피진정인1(보건소장)에게 소속직원들에 대하여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직무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이미 인권침해의 피해가 존재한 상황에서 고의성이 없다는 것만으로 책임을 묻거나 사과하는 조치 없이 직무교육 이수로 결론짓는 것은 인권위가 피해자가 겪은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안일하게 판단한 것이다. 인권위 스스로가 ‘해당 보건소 직원이 잘못은 했으나 이 정도 문제제기 했으면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보건소 업무 지원 및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보건복지부 및 질병관리본부에 대해서 재발방지를 위한 어떠한 조치의견도 권고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HIV 감염사실의 경우....현존하는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더욱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정보로서, 해당정보를 다루는 사람에게 고도의 주의의무를 요하는 것”이라면서도 “고의성이나 악의성이 있다고 할 수 없는 점”을 감안하였고, “HIV 전파경로 파악을 위해 ***의 전 동거남 신상을 파악해야 할 정당한 목적이 있었다 할 것이다”며 보건소 직원의 행위를 두둔하여 앞뒤가 맞지 않는 결정을 하였다.

HIV 관리 행정 체계에 있어 보건소가 가장 기본적이고 현장밀착형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보건소 담당자 교육 및 에이즈관리지침 등을 통해 보건소의 에이즈예방 및 HIV 감염인 지원 업무에 대한 지원 및 관리감독을 하고 있다. 그만큼 보건소의 역할이 중요하고, 보건소는 HIV 감염인이 에이즈와 관련하여 만나는 ‘최초의’공무원이자 ‘유일한’ 공무원이다. 보건소에서의 경험은 HIV 감염인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판단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보건소에서의 인권침해 문제, 특히 감염사실 누설은 수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문제제기되었다. 과거 “감시”와 “격리” 위주의 에이즈정책이 에이즈를 예방하는데 거의 효과가 없고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서 보건소의 ‘감염인 추적관리’를 폐지하고 시.군.구를 경유하지 않고 시.도에 보고하도록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염사실 누설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은 질병관리본부 및 보건복지부가 보건소 담당자에게 업무관련 교육프로그램 지원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보건소가 담당하고 있는 국가HIV/AIDS관리사업을 제대로 관리. 감독하고 있는지 점검해볼 필요를 제기한다.


이후 피해자 OOO는 동생 ***과는 더 이상 같이 살지 않고, 서로 연락도 하지 않는 상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사자 OOO은 가족뿐만 아니라 보건소와 질병관리본부, 보건복지부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했고, 국가인권위 진정을 통해 인간으로서 존중 받아야할 존엄성 또한 무시당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알리도록 허락한 피해자 OOO의 상처 입은 마음을 이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7조(비밀 누설 금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이 법 또는 이 법에 따른 명령이나 다른 법령에서 정하고 있는 경우 또는 본인의 동의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에는 물론 퇴직 후에도 감염인에 대하여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1.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예방·관리와 감염인의 보호·지원에 관한 사무에 종사하는 사람
2. 감염인의 진단·검안·진료 및 간호에 참여한 사람
3. 감염인에 관한 기록을 유지·관리하는 사람

제26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제7조를 위반하여 비밀을 누설한 사람
덧붙임

이종걸 님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