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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 비껴가는 성역이 되어버린 인권위

인권위 직원 징계와 표현의 자유, 직원 길들이기


인권위 직원 길들이기와 인권위의 미래

7월 18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서 인권위 직원들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는 고등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인권위 직원들이 인권위가 내린 결정(해고)에 대해 항의하는 비판글을 언론과 내부게시판에 게시하였으며, 1인 시위를 하는 등 ‘공무원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하는 ‘집단행동’을 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내부 비판을 봉쇄하는 수단으로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징계이다. 직장 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이러한 징계가 ‘인권’을 다루는 기관인 인권위에서 벌어지고 있기에 더욱 심각하다. 징계는 징계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징계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스스로 입을 틀어막고 행동을 검열하게 되는 ‘표현의 자유 위축’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직원들은 징계를 행하는 조직의 우두머리에 의해 생각과 행동이 길들여지게 된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인권 후퇴적 결정과 비민주적 행태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직원 길들이기’는 우리 사회 인권의 후퇴와 인권위의 파행을 가속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점은 인권단체들을 비롯한 시민사회가 이번 인권위 직원 징계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이번에 고등징계위원회의 대상자 중 한 명인 김 조사관은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활동한 사람이다. 집회금지통보 등을 자주 사용하는 경찰의 자의적 행정이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인권위의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함께 했다. 또한 2008년 촛불인권침해가 한창일 때,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직권조사에도 참여했다. 아마도 이명박 정부와 현병철 인권위원장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애쓰는 그가 ‘적당히’ 일하는 ‘공무원’이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는 그러한 바람과 다르게 ‘인권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활동했다. 그게 진짜 그의 징계사유인지 모른다. 그의 징계 이후로 우리는 정부가 행한 인권침해에 대해 열심히 파고들며 조사하거나 정책을 생산하는 활동을 하는 조사관을 쉽게 만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이제 인권위 직원들은 ‘인권’을 다루는 소명을 가지고 인권침해사건을 조사하거나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정책을 생산하기를 꺼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인권이 비껴가는 성역?

그리고 이러한 징계는 그동안 인권위가 내려온 인권위 결정을 뒤집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개인의 신분이 공무원이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나 조직내부에 대해 비판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건강한 조직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난 2009년 11월 인권위는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일부개정령안>에 신설된 ‘공무원 정부정책 반대 금지’ 등 규정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그 의견서에는 “공무원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본적 인권의 주체이므로 국가가 공무원의 기본적 인권을 임의로 제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적혀 있지만 이것은 정작 ‘인권위’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인권위는 어느새 인권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이 되고 있다.


인권위는 2010년 서울의 한 주민센터 앞에서 1인 시위를 제지한 경찰관에게 주의조처를 권고하면서도 정작 인권위 직원들이 점심시간에 1인 시위를 한 것을 징계하려하고 있다. 심지어 인권위 직원들에게 1인 시위와 언론 기고를 한 것에 대해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하면 징계는 안하겠다고 했다. 이는 인권위가 2005년, 2008년, 2010년에 준법서약제, 반성문이나 각서 등을 강요하는 것은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반한다고 결정한 것과 배치되는 행위이다.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인권위를 보면 어느 국가기관이 인권위의 권고를 신뢰하겠는가! 그저 ‘말뿐일 뿐, 우리도 따르지 않아도 되겠군’이라고 판단하지 않겠는가!

이번 인권위 직원징계는 그동안 인권위가 내려온 결정을 뒤집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이 발단이 된 강인영 조사관의 해고도 수년간 인권위가 해온 중요한 권고가 현병철 인권위의 조직운영에는 비껴간 사례다. 강 조사관은 인권위에서 9년간 성실히 조사업무를 다했다. 특히나 성차별 조사관으로서 5년 동안 일하면서 여성비정규직의 인권문제나 성차별 시정업무를 성실히 다해왔다. 인권위 계약직 직원의 경우, 결격사유가 없으면 계약이 한 번 더 연장되던 그간의 관행을 깨고 인권위는 계약연장을 하지 않았다. 분명 강 조사관이 노조 부지부장으로서, 현병철 인권위에 대해 쓴 소리를 한 것이 사실상의 해고사유였다. 인권위는 공식적으로 해고 이유에 대해 ‘이제부터는 인권위에 계약직을 안 두려고’ 한 조치일 따름이라고 했지만 이를 믿기는 어렵다.

인권위는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습적인 계약해지가 어떻게 고용불안과 인권침해로 이어졌는지를 짚어가며 비정규직 노동자 인권을 옹호하는 정책 권고를 내왔다. 그 권고는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우리사회의 인권의 기준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이제 그 권고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현병철 인권위의 직원 해고와 징계로 인해 우리사회의 인권기준은 다시 내려올 처지에 놓였다. 또한 기업에서 노조활동을 이유로 해고하거나 인사의 불이익을 주는 것은 차별이라고 인권위가 결정했던 것을 기억 속에서만 찾아봐야 한다. 노조의 비판적 활동을 허용하지 않는 현병철 인권위가 노동권을 인권으로 취급하지 않는 정부로 인해 수없이 짓밟혔던 노동자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권고를 하리라는 기대는 할 수 없게 되었다.

현병철 취임2년, 역사적 평가를 두려워하라!

2009년 7월 20일은 현병철 씨가 인권위원장으로 취임한 날이다. 취임 때부터 시민사회는 인권위법상의 인권위원장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며 반대했다. 그리고 작년말 이명박 정부의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해 기각하거나 각하하는 인권위원장은 필요 없다며 전국의 인권단체들과 시민들이 사퇴를 요구했지만 사퇴하지 않았다. 국가인권기구에 관한 기본원칙인 파리원칙에 보장된 인권위원의 독립성 보장을 위한 인권위원의 임기보장이 한국의 법으로도 확실한 현실에서 스스로 사퇴하지 않는 한 ‘위원장 자리’는 보전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만나 인권위 업무를 보고하는 영광을 누렸으니 이제 자신의 임기 중 어떠한 어려움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게 있다. 바로 역사적 평가이다.

국제사회에서 롤 모델로 인정받던 한국의 국가인권기구가 어떻게 몰락해 가는지를 전 세계의 인권기구가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인권위원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인권위원과 인권위원장을 세우지 않으면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하나씩 쓸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권위원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인권위 업무의 독립성만이 아니라 인권위가 제대로 된 조사업무나 정책업무도 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실물적으로 보여준다. 효과적인 인권업무를 위한 인력모집 및 실적심사를 하기보다는, 현병철 위원장과 손심길 사무총장에 대한 충성도만으로 인권위 직원을 평가하고 있다. 인권위 조직 운영 및 인사 조치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인권위의 본연의 업무인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옹호하고 국가와 기업의 권력기관이 인권침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일을 할 수 있는지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실제 많은 여성단체들이 강 조사관은 성차별 조사업무를 수년간 한 사람이므로 이 사람을 해고하면 성차별 업무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해고를 철회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인권위가 성차별 업무에 대한 인권감수성이 없다고 비판하였다. 그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올해 여성인권 관련 권고가 아직까지 1건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 인권위에서 만든 인권정책은 보기 어렵다. 현병철은 임기를 채우더라도 이렇게 기억될 것이다. 롤 모델(role model)을 하루아침에 로우 모델(low model)로 만든 사람으로 말이다.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이며,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집행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