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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 국가인권위의 침묵과 배신, 무능

국가인권위법 개정안 활동가 워크숍(1) 민주적 인사절차 및 독립성 확보

지난 8월 23일 열린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전원위원회의 희극적인 모습은 소식을 접한 이들을 비극적인 심정에 빠지게 했다. 여러 언론에서 보도되었듯이 전원위원회에 상정된 ‘정보기관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직권조사’와 ‘정보인권 특별보고서’ 등 주요 인권현안이 친정부 성향의 인사들이 비상식적인 이유를 들며 반대하여 통과되지 못했다. 이 사건을 단순히 인권위원들 간의 의견이 일치하지 못한 사건을 넘어 인권위가 국가의 인권침해에 대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는 이유는 회의 때 친정부 성향의 인권위원들이 반대근거로 내세운 것이 비상식적이고 몰인권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위는 정부 눈치를 보며 해야 할 권고나 조사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나 무자격자이자 인권활동의 경험과 감수성이 없는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인권위는 정부에게 부담이 되는 의견표명이나 결정은 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가 친기업정책을 추진하면서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민영화정책과 노동유연화로 발생하는 인권후퇴 정책, 경찰의 폭력 증가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과 침해가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인권침해에 대해 인권위가 앞장서서 조사해도 모자랄 판인데도 진정이 들어온 사건조차도 인권위는 조사나 결정을 주춤하거나 부결시켰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안건 외에도 인권위는 PD수첩 검찰수사 사건에 대한 의견제출건 부결(2009. 12. 1.),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에서 나타난 주거권 침해 법원 의견제출건 부결(2009. 12. 28.), 야간시위 헌재 의견표명건 부결(2010. 3. 8.), 박원순 변호사 명예훼손사건 의견제출건 부결(2010. 4. 26.) 등 주요 인권사안에 대해 의견표명을 거부했다. 또한 최근에는 4대강 공사를 반대하며 항의농성하고 있는 ‘이포보 농성자들의 식량권, 건강권 관련 긴급구제’ 요청을 기각하였고, 강제철거에 반대하며 농성하고 있는 두리반에 GS 건설사가 전기를 끊은 조치에 대해서도 긴급구제요청을 기각하였다. 국내법의 한계를 파악하고 실정법이 아닌 국제적 인권가이드라인에 따라 우리 사회의 인권수준을 높이고 법적, 제도적 정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인권위의 역할임에도, 행정공무원이나 경찰에서 근거로 낼 법한 하위법을 기준으로 주요 인권사안에 대한 진정과 긴급구제가 기각되는 경우가 많아 한숨소리가 나온다.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나 이러한 인권위의 침묵과 정부의 꼭두각시 노릇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권위가 잘못된 길을 걷고, ‘인권옹호기관’이 아니라 ‘정부옹호기관’으로 변해가고, 그래서 정부의 인권침해를 합리화시키는 알리바이기구가 되어 우리사회 인권인식과 인권수준을 떨어뜨리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은 필수이지만, 여기에 머무른다면 인권위의 회생가능성은 멀어질 것이다. 사방팔방이 폭력과 비리, 반인권으로 넘쳐나는 시대에 사회적 약자가 가장 쉽게 기댈 수 있는 곳이 인권위이기에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모색과 실천은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지난 8월 20일 인권활동가들이 모여 인권위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제대로 서기, 법으로 되겠냐마는~” - 국가인권위법 개정안 활동가 워크숍>을 진행했다.

8월 20일 진행된 인권위법 개정안 워크숍 모습

▲ 8월 20일 진행된 인권위법 개정안 워크숍 모습


인권활동가들이 이번 인권위법 개정안에 담으려는 의제는 크게 4가지이다. (1)인권위원의 민주적 인선절차와 검증절차 마련, (2)인권위 독립성 확보방안, (3)인권위의 민주적 운영방안, (4)인권위의 진정 기능 보완 방안이다.

임명권자만 명시된 현행 인권위법의 인선절차를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바꿔야

인권은 민주주의와 함께 가지 않으면 공감과 보편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권의 가치 안에는 민주주의가 내재되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한 인권을 다루는 인권위원을 뽑아 구성하는 과정은 민주적이고 투명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곳보다 투명해야 하고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렴해야하는 인권위원회의 인권위원들에 대해서는, 임명권자만 있을 뿐 인사청문회와 같은 인선절차나 검증절차가 전혀 없다. 청문회 제도 자체에 한계는 있지만 최근 정부가 임명한 장관들의 인사청문회가 치러지면서 장관의 자질을 사회적으로 검증하고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기능을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선절차와 관련하여 현행 인권위법에는 “5조(위원회의 구성) ② 위원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자중에서 국회가 선출하는 4인(상임위원 2인을 포함한다), 대통령이 지명하는 4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을 대통령이 임명한다.③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한계로 인권위는 언제든 권력자의 의향에 따라 흔들릴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국가인권기구에 관한 국제기준을 설명하고 있는 유엔 국가인권기구 핸드북에서도 이러한 점을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짚고 있다. “모든 기구는 구성원의 독립성 수준에 따라 해당기구의 독립성이 결정된다.”, "구성원의 임명방법은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의회와 같은 대의기구에게 임명을 위임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청문회는 필수, ‘다원성, 다양성, 시민사회의 협력’ 높이는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그러하기에 인권위원 구성의 인선절차와 검증절차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권활동가들이 인권위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현재까지 계속 주장해왔다. 이번 워크숍에서 나온 인선절차의 방안은 크게 3가지였다. 우선 검증절차인 청문회는 필수이다. 2009년 18대국회에 민주당 김재균 의원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인권위법 5조 개정안에는 「국가인권위원회」상 장관급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도 청문회 대상으로 되어 있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인권위가 다른 국가기구와 다른 독립성, 높은 청렴성과 시민사회의 신뢰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특성이 있기에 다른 국가기관과 다르게 장관급이 아니어도 상임위원들까지는 청문회대상이 되어야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상임위원들은 인권위에서 상주하면서 주요한 활동을 하는 하기에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인선절차로 언급된 것 중 핵심은 ‘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한 인권위원 구성이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도록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그렇게 만든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인권위원 후보를 2배수로 추천하면 이중에서 임명권자가 인권위원을 임명하는 안이다. 또한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한다면 지금의 인권위원 선출 및 지명과정에서 시민사회와의 협의과정이 부족한 점, 법조계 출신 위원들이 대다수이고 성소수자나 장애인 등 소수자들은 과소 대표되어 있다는 단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의견이었다.

후보추천위원회는 인권문제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들로서, 국회, 보건의료, 노동조합, 농민, 빈민, 법조계, 여성인권, 청소년인권, 장애인권, 성소수자인권, 일반인권 단체들이 추천하는 사람 등 20인으로 구성하는 안을 검토했다. 이는 파리원칙에 기초한 내용이다. 후보추천위원회를 어떻게 잘 구성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문제이다. 특히 요즘처럼 ‘인권’자만 붙이면 인권단체인양 반인권적 발언을 일삼는 시민단체가 늘어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파리원칙에서의 인권위원 자격 기준

국가인권기구의 구성과 독립성, 다원성의 보장:
국가인권기구의 구성과 그 구성원의 임명은, 선거의 방법에 의하든 혹은 다른 방법에 의하든, 인권의 보호와 증진에 연관된 (시민사회의) 사회세력들의 다원적 대표성을 보장하는데 필요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특히 다음과 같은 대표자들과 함께, 또는 그들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a) 인권 및 인종차별과 싸우는 데 책임이 있는 비정부기구들, 예컨대, 노동조합, 관련된 사회-전문 조직들, 변호사, 의사, 언론인, 저명한 과학자들의 협회, (b) 철학사상과 종교사상의 다양한 경향들, (c) 대학과 자격 있는 전문가들, (d) 의회, (e) 정부 부처 (정부대표들이 포함된다면, 그들은 단지 자문능력만을 가진 채 심의에 참여해야 한다)

그 외에 다른 쟁점으로 다루어진 것은 대법원장 몫을 제외하고 대통령 몫을 축소하고, 국회의 몫을 늘리는 안이었다. 현재 대법원장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는 현실을 볼 때 대법원장 몫을 제외할 필요가 있다. 인권위가 가장 거리를 두어야 할 국가권력이 행정부라고 할 수 있으므로 대통령의 임명권한을 제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과 국제인권정책이사회가 발간한 국가인권기구의 효과성 평가 (국가인권위원회, 2008)에 따르면, 행정부처의 지명보다는 시민사회단체에 의한 지명, 의회에 의한 지명, 다른 자치기관에 의한 지명이 더욱 개방적이고 투명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의회 지명의 경우 내부위원회 등 책임기구가 시민사회조직으로부터 후보지명을 받고 후보자를 상대로 공개면접절차를 진행할 수 있음을 예시하기도 했다.

인권위 독립성 확보방안, ‘조직, 인사, 예산의 독립성 ’법에 명시

인권위 독립성 확보는 인권위가 국가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피해자의 인권침해를 구제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이러한 독립성 침해는 인수위 시절 시도하다 철회한 인권위 대통령직속기구화, 행안부의 인권위 조직 21%축소, 행안부의 인권위 직원 해고권고 등이다. 이에 대해서는 유엔 고등판무관실과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기구인 ICC에서도 우려와 재검토를 권고할 정도로 국제기준에 반하는 행위였다.

현재 인권위는 헌법재판소처럼 헌법에 명시된 독립기구는 아니다. 헌법이 만들어진 시기와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국제사회의 문제의식과 국가인권기구 설립시기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다. 그렇다고 지금 헌법을 개정해서 인권위의 독립성을 법적으로 명시하는 것을 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가능한 방법은 감사원법처럼 인권위법에 독립적인 기구임을 명시하고 국가재정법에 나열된 독립기관에 국가인권위를 포함시켜 수정하는 것이다.

현행 인권위법 18조에서는 조직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어 인권위가 정부의 영향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독립적인 기관인 법원 및 감사원이 조직의 세부사항을 규칙으로 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처럼 인권위도 규칙제정권 조항을 신설하는 안을 검토하였다.

또한 인권위 직원이 해고 등 인사 불이익을 당할까봐 정부의 눈치를 보는 일이 없도록, 인권위법 16조를 개정하여 위원회 소속 직원의 임용은 인권위 자체의 권한임을 분명히 하여야 한다. 지금처럼 무자격자인 친정부 성향의 인권위원장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은 있으므로, 인권위 운영과 인사에 관한 세부적 사항을 위원장 1인이 결정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상임위원회 검토 등 합의제 운영을 위원회 규칙으로 명시하는 등 인권위 내부의 민주성이 보장되는 독립성 확보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정부가 인권위 조직을 작년처럼 축소하여 인권위 기능을 약화시키거나 정부의 눈치를 보도록 만드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권위 재정의 독립성이 확보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인권위법 3조의 개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독립적인 기구임을 명시한 감사원법처럼 인권위법 3조에 ‘위원회의 조직, 인사, 예산의 독립성을 확보하여야 한다.’는 항을 추가하여야 한다. 이에 따라 국가재정법을 함께 수정하여 인권위가 독립기관임을 명시한다면, 독립기구의 위상에 걸맞게 예산 조정에 대한 협의나 예산 요구액 감액 시 의견제시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이며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