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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 국가인권위의 침묵과 배신, 무능

국가인권위법 개정안 활동가 워크숍(2) 민주적 운영방안 및 진정 기능 보완

봉숭아 학당의 코미디는 방지하는 민주성 확보방안

지난 전원위원회에서 위원장이나 인권위원들이 인권기준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없이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에 대한 언론이 사용한 비판적 표현이 “봉숭아 학당”, “식물인권위”였다. 민주주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투표권 행사에 대한 현병철 위원장과 김양원 인권위원의 비상식적 발언은 봉숭아학당 그 이상이었다. 위원장은 “황덕남 위원이 찬성 의견을 밝힌 뒤 먼저 자리를 떴으니 찬성표로 쳐서 의결해도 되겠느냐”고 동의를 구하며, 대리투표를 진행하려했다.

인권위 전원위원회의 비민주적 운영은 이번만이 아니다. 1) 위원장이 사무총장을 추천할 수 있으나 전원위원회의 의견을 거치도록 되어 있는데, 전원위원회에서 다수의 위원들이 반대했으나 임명 제청. 2) 2009년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에 기소된 철거민과 관련하여 재판부에 의견서를 보내는 안을 심의하다가, 위원장이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는 망언을 남기며 독단적으로 폐회. 3)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프랑크 라 뤼의 상임위원 면담을 위원회가 이유 없이 거부. 4) 시민사회의 참여나 인권위 활동 모니터링을 하기 어렵게 만든 전원위원회 방청규정 개악. 5) 현병철 취임 이후 많아진 비공개 안건 등이 있다. 물론 인권위의 비민주적 운영은 전원위원회나 시민사회와의 선긋기만이 아니다. 인권위의 활동방향을 바꾸기 위해 비민주적 운영으로 위원장 줄서기 방식의 조직 관리를 해오고 있다.

인권위원회가 최소한의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법적 수준에서 강제할 수 있는 방안은 많지 않다. 따라서 인권위법 외에 인권위 내부규칙이나 회의관련 규정의 개정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위원장 중심의 1인 운영체제를 완화하는 방안이어야 한다. 우선적으로 바꾸어야할 인권위법의 내용은, 비공개안건을 자의적으로 확대하지 못하도록 14조(의사의 공개)를 수정하고, 전원위원회 회의록 공개에 대한 의무규정을 신설하는 것이다.

현행 인권위법 14조에서도 위원회의 의사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비공개를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필요하다’고 명시된 문구를 악용한 자의적 행사가 많았으므로 이 문구를 구체적으로 수정하여야 한다. 또 의사공개의 원칙은 방청의 자유를 인정하며, 의사에 대한 보도의 자유, 위원회 회의자료 및 회의록의 공표나 배포의 자유 등의 원칙을 포함하는 것이므로 이에 따라 전원위 회의록 공개는 동반되어야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현재는 전원위원회 방청을 하더라도 회의안건지도 방청자에게 주지 않으며, 회의록 공개는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공개결정이 나야만 주고 있는 실정이다. 회의록 공개를 한다면, 위원들의 책임성과 민주성을 높이고, 전원위원회 논의가 단순한 표결에 그치지 않도록 방지할 뿐 아니라 인권위원들의 인권적 감수성과 인권기준에 대한 인식을 파악할 수 있다.

인권위의 진정 기능 강화방안

인권위는 사회적 약자들이 쉽게 인권침해에 대해 진정하고 구제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법원 등 기타 국가기관에도 인권침해에 대한 구제절차가 있지만 인권위 진정이라는 또 하나의 구제절차를 두는 것은 인권침해 피해자들이 그 중 가장 적절한 제도를 선택하여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권리구제를 받게 하기 위함이다. 인권위 진정은 접근하기 쉽고, 법보다는 신속한 조치가 가능하며,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약자들에게 필요한 구제절차이다. 따라서 이러한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인권위의 진정과 권고, 조사 대상을 확대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각하사유의 축소

인권위에 진정이 공식적으로 접수되더라도 진정사건에 대해 모두 조사하지는 않는다. 현행 인권위법 32조에서는 몇 가지 제한이 있는데 이중 과도하게 진정을 각하하는 사유들을 수정하거나 삭제하자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인권위법 32조 1항 4호는 진정원인이 되는 사실의 발생으로부터 1년의 기간이 경과된 경우를 각하이유로 상정하고 있는데, 이는 실제 인권침해 피해당사자가 인권침해임을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을 고려한다면 매우 짧은 기간이다. 인권위법 32조 1항 5호는 “진정이 제기될 당시 진정의 원인이 된 사실에 관하여 법원 또는 헌법재판소의 재판, 수사기관의 수사 또는 그 밖의 법률에 따른 권리구제절차가 진행 중이거나 종결된 경우”를 각하사유로 규정하는 경우도 삭제하자고 했다. 중복을 피하자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다수의 권리구제기관을 두고 조사절차를 정하면서 각각의 요건(예컨대 청구기간이나 청구인 적격)을 달리하는 취지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인권위법 32조 1항 6호의 진정이 익명 또는 가명으로 제출된 경우도 실제 인권침해피해 당사자가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삭제가 가능하다. 허위진정일 경우는 인권위법 32조 1항 2호에 ‘명백한 거짓인 경우’가 이미 각하사유로 있으므로 굳이 이렇게 진정요건을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긴급구제의 실효성 확보방안

최근 이포보 농성자 긴급구제 신청과 두리반 단전 긴급구제 신청이 모두 기각되었다. 긴급구제는 그야말로 긴급한 상황을 벗어나서 당사자가 기본적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므로 빠른 조사와 결정이 핵심이다. 그런데 현재 인권위에서 긴급구제 가부 결정은 상임위가 열리는 시기에 맞춰서 논의하는 경우가 많다. 사안의 시급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긴급구제 관련 조항인 인권위법 48조(긴급구제조치의 권고)에 “지체 없이”의 문구를 넣는 등의 수정이 필요하다.

위원회의 조사대상 확대

현행 인권위법은 조사 대상을 국가기관의 인권침해를 위주로 하고 있으며, 법인 등 사인 간의 인권침해는 차별에 한정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인권위의 인권침해 조사대상이 국가기관의 자유권 침해에만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2009년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도 사회권도 인권위원회가 포괄해야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보내기도 했다. 인권위법 30조에 헌법 10조와 22조로 한정되어 있는 현행 인권위법은 너무나 협소한 것이며, 헌법상 기본권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아가 차별행위 금지영역을 제한하는 것은 차별행위에 대한 인권위의 조사기능을 지나치게 제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립학교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는 차별이 아니면 조사대상이 되지 못한다. 실제 얼마 전 두리반에서 단전으로 인한 건강권, 생명권 위협에 대해 긴급구제를 신청했지만 그 대상이 한국전력이어서 각하시킨 적이 있다. 단전으로 사람이 죽어가는 현실을 목도하면서도 인권위가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다면, 또 국가가 아닌 기업 등 권력집단으로부터 인권침해를 구제할 수 없는 인권위라면, 이는 반쪽의 인권위일 뿐이다. 다른 많은 국가인권기구에서는 정부만이 아니라 민간기업도 진정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인권위법 30조 1항에 1호, 2호로 예시되어 한정된 조사 대상을 ‘국가인권위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인권침해나 차별행위’로 수정하여 조사 대상을 확대하여야 한다.

인권위 제자리 찾기, 법으로 되겠냐마는

이외에도 많은 사안들과 조항들을 워크숍에서 검토하였다. 인권활동가들이 토론하면서 나온 이야기 중 하나가 “현재의 인권위 구성을 봤을 때, 인권위법을 개정하더라도 제대로 된 운영이 되겠냐.”는 것이었다. 사실 법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떤 사람이 어떻게 운용하는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권보장의 의무주체가 국가임에도 침해의 당사자로서 더 기능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새로운 인권보장의 행위자로서 국가인권기구가 등장한 만큼, 그 주체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권옹호자인 인권활동가들과 시민들의 몫이다. 그러하기에 인권위 활동 비판과 인권위법 개정에 대해 쉽게 손을 놓을 수 없다. 더구나 인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권 규범의 향상, 인권감수성의 향상이 동반되어야 하듯이, 인권위의 변화를 위해서는 인권위가 바뀌어야 하는 부분과 방향에 대해서 한국 사회에서 더 많이 논의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법’은 행위자가 인권에 포함된 가치를 내면화하고 그 가치에 헌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반대로 법이 인권의 가치를 포괄하지 못한다면, 인권을 옹호하고 증진하려는 행위자들이 한 사회와 그 사회에서 운용되는 ‘법’이 인권의 가치를 포함할 수 있도록 의제화 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해야 한다. 인권활동가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기에 인권위법 개정방향을 공론화하는 작업을 멈출 수 없다.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이며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