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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보자 폴짝] 구급차가 아니라 짐차에 실린 수바수 아저씨



“엄마 나갔다 올게. 먼저 자고 있어”
오늘도 엄마는 전화 한 통을 받고 급히 나가셨어. 처음에는 왜 그렇게 서둘러 나가시는지 무척 궁금했어. 하지만 엄마가 아무말 하지 않고 나가셔도 이젠 그 이유를 알아.

엄마는 ‘이주노동자’ 인권단체에서 일하셔. 나도 잘은 모르지만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일을 하러 온 이주노동자들이 무시를 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겪지 않도록 힘을 모으고, 이들을 지원하는 곳이래. 그런데 요즘 엄마는 나랑 놀 시간도 없이 무척 바빠졌어. 바로 미등록이주노동자(*)를 잡아서 무조건 쫓아내려는 출입국관리사무소(**) 때문이래.

‘2월 11일’의 악몽 그리고…

지난 일요일에 나는 엄마랑 같이 추모제에 갔었어. 누구를 추모하는 자리였냐고? 아마 너희들도 뉴스에서 봤을 거야. 지난해 2월 11일,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가둔 출입국 ‘외국인보호소’에서 불이 났어. 그래서 27명의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죽고 다치는 끔찍한 일이 있었어. 그리고 벌써 1년이 지난거야. 엄마는 추모제가 그분들을 기억하며 함께 슬픔을 나누는 것뿐 아니라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는 자리라고 하셨어. 아직도 그날의 악몽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면서 말야.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화재로 죽어간 이주노동자 1주기 추모제 (출처 : 이주노조탄압분쇄비상대책위)

▲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화재로 죽어간 이주노동자 1주기 추모제 (출처 : 이주노조탄압분쇄비상대책위)


그럼 다른 외국인보호소에서 또 불이 났냐고? 그렇진 않아. 그 이후로 외국인보호소에 불이 났을 때 천장에서 자동으로 물을 뿌리는 스프링쿨러가 설치되고 바닥재도 불에 잘 타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대. 하지만 시설만 조금 바뀌었지 정작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했던 변화는 없었어. 얼마 전에 강제로 네팔에 돌려보내진 수바수 아저씨에 대해 들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거야.

아픈 사람을 쫓아내는 나라

치료도 받지 못한 채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갇힌 수바수 아저씨 (출처 : 이주노동자탄압분쇄비상대책위)<br />

▲ 치료도 받지 못한 채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갇힌 수바수 아저씨 (출처 : 이주노동자탄압분쇄비상대책위)

수바수 아저씨는 네팔에서 우리나라에 온 이주노동자였어. 그런데 작년 7월에 길을 가던 중에 경찰이 요구하는 신분증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수바수 아저씨를 끌고 갔어. 결국 미등록이주노동자였던 아저씨는 화성에 있는 외국인보호소에 갇히게 되었어.

그런데 평소 몸에 이상을 느끼지 않던 아저씨는 외국인보호소에서 여러 번 아팠대. 그때마다 진료를 받기는 했지만 계속 건강은 더 나빠졌어.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올해 초 당뇨병이라는 걸 알게 된 거야. 수바수 아저씨는 한 달 만에 몸무게가 5Kg이나 빠졌어. 앞이 뿌옇게 보일 정도로 시력은 나빠지고 아파서 잠도 잘 수 없었어. 엄마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찾아가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수바수 아저씨를 잠깐이라도 내보내 달라고 했어. 외부 의사들도 당뇨병환자는 영양을 잘 섭취하고, 규칙적인 운동과 위생적인 곳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외국인보호소의 환경은 너무 나빠서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어.

서울 목동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수바수 아저씨를 풀어달라고 집회를 했어요.(출처 : 참세상)

▲ 서울 목동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수바수 아저씨를 풀어달라고 집회를 했어요.(출처 : 참세상)


하지만 화성외국인보호소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대. 그러면서 조금 괜찮아지면 바로 네팔로 돌려보낼 거라는 말만 반복했대. 아픈 사람을 치료하기보다는 쫓아내려고만 하는 게 보호소에서 하는 일이라니. 수바수 아저씨가 미등록이주노동자나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다니. 정말 화가 나지 않니?

엄마네 단체에서 일하는 언니가 얘기해줬는데, 실제 몇 년 전엔 아픈 이주노동자를 무조건 돌려보내려고 하다가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대. 그 분은 에이즈라는 병에 걸렸는데,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고, 강제로 돌려보내려고만 했대. 수바수 아저씨처럼 조금 나아질 때만 기다렸다가 바로 출국을 시켰대. 하지만 비행기 안에서 고향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셔야 했어. 아픈 사람이 제대로 치료받고, 건강해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아니라 무조건 우리나라에서 쫓아내기만 하면 된다는 잘못된 정책이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아간 거야.

수바수 아저씨는 1월 30일 네팔로 돌려보내졌어. 그것도 엄마와 같이 항의하는 사람들 몰래 아저씨를 공항으로 데려가기 위해 짐차에 실어서 말야. 정말 아저씨에게 필요했던 건 짐짝처럼 취급당하는 게 아니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구급차였는데.

아저씨가 건강해지기를 바라며

비록 수바수 아저씨는 치료를 받지 못하고 네팔로 돌아갔지만 만약 아저씨가 포기하고 지냈다면 이런 억울한 이야기가 알려지지도 않았겠지? 엄마가 바빠지는 게 싫긴 하지만 엄마처럼, 그리고 수바수 아저씨처럼 같이 싸우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미등록이주노동자들도 더 안전하고 행복하게 우리나라에서 살고, 일할 수 있지 않을까?

내일 아침엔 엄마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수바수 아저씨에게 힘내시라고 편지도 써야겠어.

(*) 미등록이주노동자 : 한국에 머물러도 된다고 한국정부에서 허락해주는 ‘비자’ 없이 한국에서 머물며 일하는 사람
(**) 출입국관리사무소 : 사람들이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를 드나드는 것에 대한 일을 맡아 하는 행정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