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 선거 놀음에 파묻힌 인권 법안

인권과 주권의 대립이라는 낡은 틀

[기획] 선거 놀음에 파묻힌 인권 법안 (1) 출입국관리법 일부개정안

2004년 ‘개혁국회’라는 꼬리표를 달고 시작했던 17대 국회가 이제 마지막 정기국회를 열었다. 하지만 정치권은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당파와 자신들의 이익만을 따지면서 국회를 공전시킬 것이 예상된다. <인권오름>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제대로 된 토론조차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회기만료와 함께 폐기될 위기에 처한 인권 관련 법안들을 살펴본다. <편집인주>


출입국관리법을 인권의 기초 위에

공단 근처 길가에 봉고차 한대가 대기하고 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외국인들을 강제적으로 봉고차에 태운다. 봉고차 문을 걸어 잠그고 차 안에서 외국인들의 등록증을 확인하여 적법 체류자들만을 선별적으로 풀어놓는다. 봉고차는 남겨진 ‘불법체류자’들을 태운 채 다른 공단으로 또는 보호소로 떠난다. 이와 같이 이른바 ‘토끼몰이’식 단속이라 부르는 ‘불법체류자’ 단속의 ‘불법’적 형태는 우리에게 낯익은 풍경이다.

크레파스 명칭에서 ‘살색’이 빠진 지는 오래다. 그리고 한 미식축구 선수의 성공을 계기로 이른바 ‘혼혈인’ 차별 문제의 대안을 말하는 목소리들도 무성했다. 그러나 공권력 행사 대상에는 여전히 ‘살색’이 존재하며,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의 뿌리는 제도 그 자체에 닿아있다. 적법절차원칙이 헌법적으로 확인되고, 법치주의가 상식이 된 사회라지만, 이주노동자들에 대하여는 이런 무법적인 공권력 행사가 절차 내에서 반성 없이 이루어져 왔다. 이렇게 차별적 관행이 가능한 사회적 토대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아프게 성찰해야 했다.

지난 7월 25일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열린 집중 단속 규탄 기자회견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지난 7월 25일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열린 집중 단속 규탄 기자회견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2005년, 인권단체연석회의는 ‘반차별 공동행동’의 일환으로 그 낯익은 풍경의 불법성을 지적하면서 출입국관리법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를 공론화하였다. 이 시점을 전후하여 국가인권위원회는 출입국관리법상 단속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하며, 사업장에 무단으로 진입하여 단속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 두 차례의 결정을 통하여, 법무부장관에게 형사사법절차에 준하는 실질적 감독체계를 마련하라는 출입국관리법 개정 권고를 하였다. 그리고 2006년 7월, 출입국관리법을 인권의 기초 위에 세우기 위해 인권단체연석회의가 준비한 개정 법률안이 이원영의원의 대표 발의로 국회에 상정되었다. 그러나 국회는 이 문제에 대하여는 묵묵부답,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2007년 2월, 여수외국인‘보호’소라는 모순의 공간에서 우리는 그 무관심의 불행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화재 발생으로 11명의 무고한 생명이 쇠창살에 갇힌 채 속수무책으로 죽어갔다. 출입국관리 행정에 대한 절차적·민주적 통제가 조금만 더 일찍 이루어졌더라면, 이들의 무고한 생명이 쇠창살에 갇힌 채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수 화재 사건 이후에도, 국회는 정부 개정안이 제출될 예정이라는 이유를 들어 실질적인 논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문을 열어 달라!’는 11명의 죽음의 절규는 아직도 메아리를 만들지 못한 채, 그들의 죽음은 아직 제도적인 반성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천당에서 지옥까지’ 절대적 재량권 - 사법적 통제의 도입 없이는 인권 보장도 없다

출입국관리 행정은 국가의 경계를 배타적으로 관리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칙을 국민· 국가의 수준으로 제한한다. 그리고 국가주권 행사의 영역이라는 강화된 명분으로 막거나(입국금지), 가두거나(단속, 보호), 내보내는(강제퇴거) 외국인에 대한 절대적 재량권을 행사한다. 단속-보호-강제퇴거로 이어지는 출입국관리 행정절차는 실질에 있어서는 집행 대상자의 가족, 재산, 직업 등 거주지에서의 모든 생활기반을 박탈할 수 있는 소위 ‘사회적 사형’에 해당하는 중대한 처분이다. 그러나 출입국관리공무원의 재량권 행사를 절차적으로 통제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은 사실상 전무했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출입국관리 절차에 사법기관 등의 절차적 통제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에 있다. 그 동안 출입국관리 행정에 과도하게 부여된 ‘천당에서 지옥까지의’ 절대적 재량권을 제도적으로 제한하고, 절차적인 통제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출입국관리법을 인권의 기초 위에 세우는 출발점인 것이다.

출입국 직원들에게 잡힌 터키 출신 이주노동자 코스쿤 셀림 씨는 지난해 2월 27일 새벽 수원출입국사무소 6층에서 추락사했다. 사진은 그해 3월 7일 단속·추방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수원출입국사무소 건물에 쓴 구호.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출입국 직원들에게 잡힌 터키 출신 이주노동자 코스쿤 셀림 씨는 지난해 2월 27일 새벽 수원출입국사무소 6층에서 추락사했다. 사진은 그해 3월 7일 단속·추방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수원출입국사무소 건물에 쓴 구호.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2006년 7월 법무부가 주최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 공청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정부의 개정 초안은, 절차적인 통제의 도입을 철저히 배제한 채 단속의 법적 근거만을 규정하는 수준의 매우 제한적인 것이었다. 이와 같은 개정 방향은 문제의 진단과 처방이 잘못된 기초 위에 이루어져 있는 것이며, 기존의 인권 침해적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를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법률에 단속의 근거 규정이 없었던 점이 아니라, 단속 등 권한 행사에 대한 합리적 통제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있다.

단속·보호 절차에 사전영장제도를 도입하거나 또는 사후적으로 법원의 적부심사를 거치게 하는 사법적 통제의 도입 없이는 인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처분에 대한 실질적인 인권보장이 이루어질 수 없다. 헌법재판소 역시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2조제6항의 규정이 행정절차에 있어서도 적용되어야 함을 지적한 바 있다.

인권과 주권의 대립이라는 낡은 인식틀

여수화재사건 발생 직후인 2007년 2월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부랴부랴 인권단체연석회의의 개정안(이원영 의원 대표발의)을 전제회의에 상정했다. 전체회의에서 한 전문위원은 “개정 방향은 바람직하지만, 너무 앞서 가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요지의 검토의견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검토의견은 급조된 관심과 인식의 불철저함을 드러낼 뿐이다.

영국의회가 인신보호법(Habeas Corpus Act)을 제정하여 자의적인 구금을 제한한 때가 1679년이었으며, 형사절차 이외에서의 인신구속에 대해서도 법원이 통제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한 것이 1814년이었다. 또한 외국 출입국관리법 입법사례들을 찾아보는 조금의 노력만 기울이면 한국의 법과 관행이 얼마나 인권 침해적이며 낡은 인식 수준에 묶여있는지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너무 앞서간다’는 우려는 사실 ‘너무 뒤쳐진’ 현실을 합리화하려는 부당한 인식일 뿐이다.

곧 정부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될 것이라고 한다. 국회에 바란다! 인권의 관점에 기초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의 문제의식을 ‘주권’과 ‘인권’의 낡은 대립틀에 구겨 넣고, 진지한 고민 없이 평가절하해서는 안될 것이다. 인권의 기초 위에서 주권이 행사될 때에만 그 주권 행사는 정당화될 수 있다. 공권력 행사 대상에 “살색”은 있을 수 없다는 이 평범한 상식을, 국회는 확인하라!
덧붙임

◎ 정정훈 님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