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주거인권학교

[연재 - 노숙당사자모임과 함께하는 주거인권학교 ⑦] 황당 살벌한 편견

차별을 딛고 노숙인 날아오르다

맑은 날씨였다. 햇빛이 쨍쨍하지도 않고 조금은 찬 듯한 바람이 불어 머리 속이 또렷해지는 게, 세상의 편견과 맞짱 한 번 뜨기에는 딱 좋은 날씨였다. 다섯 번째 주거인권학교, ‘날아올라’ 프로그램의 시작을 앞두고 진행을 맡은 진우씨의 얼굴이 긴장돼 보였다. 이제는 많이 친해져서 막 장난이라도 치고 싶은 아저씨들과 여느 때처럼 깔깔대며 몸 풀기 맘 열기 게임 한 판하고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차별에 분노하기도 어려운…

먼저 각자가 경험한 ‘차별’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한 분, 두 분 말씀을 하셨지만 자신의 차별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성토대회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자신이 겪은 차별을 뭐 신나는 일이라고 떠들어대겠냐 싶으면서도 이 분들이 차별에 분노하기에는 너무 존중받은 적인 없는 인생을 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벌써부터 하고 싶은 말을 쓰고 있는 아저씨들<br />

▲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벌써부터 하고 싶은 말을 쓰고 있는 아저씨들



이야기가 끝나고 아저씨들의 느낌과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노숙인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정리해 각각의 편견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쓰는 것이다. 벽에는 편견이 적힌 빈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이 종이가 모두 글씨로 채워지고 나서 우리는 다시 둘러앉았다. 진우씨는 한 장씩 종이에 적힌 글을 읽고 아저씨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고 각 편견마다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군대 두 번 가고 싶수?

“쉼터는 규제가 너무 많아. 교회에서 하는 데는 새벽부터 예배 보느라 하루가 다 가고.”
"쉼터는 노숙을 벗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도움을 안줘. 그런 프로그램 같은 것도 없고.”

‘노숙자 대책’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쉼터’를 떠올린다. 그리고 왜 노숙인들이 쉼터에 가지 않는지 이상해 하고 노숙인들은 노숙을 즐긴다는 어이없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그 어이없는 결론에 대한 한 아저씨의 짧지만 잊히지 않는 항변 하나. “군대 두 번 가고 싶수?” 많은 사람들이 ‘쉼터’를 제안할 때 노숙인 아저씨들은 ‘군대’를 떠올리는 것. 몇 주 전 프로그램에서 쉼터는 절대 집이 아니라며 목소리를 높이시던 아저씨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럼 쉼터 밖, 거리 생활은 어떨까? 한숨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겨울에도 찬 물로 머리를 감고 빨래를 하고 나면 도둑맞을까봐 마를 때까지 지키고 있어야 하는 아저씨들에게 누가 더럽다며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 />

▲ "우리의 말 좀 들어보라구." 노숙인에 대한 편견에 아저씨들은 할 말이 참 많았다.



노숙인이 범죄자라구?

“일반인들이 먼저 시비 걸지 아저씨들은 일반인한테 시비 안 걸어. 왜냐면 경찰이 우리말은 안 믿거든. 우리가 증인을 서도 우리말은 안 믿어주니까 결국은 우리만 딱지 떼고.”
“나는 인상도 안 나쁜데 하루에 검문을 열 번 씩 해. 정말 짜증나. 아까 했다고 해도 아까는 아까고 이거는 이거라는 거야.”

‘범인은 노숙자 차림의….’ 범죄 기사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말이다. ‘노숙자 차림’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노숙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아가는 것이다. 현실은 어떨까? 많은 수의 노숙인들이 범죄의 가해자 아닌 피해자로 고통 받고 있다. 명의 도용으로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술 취한 사람들의 일방적인 폭언, 폭행에 시달리기도 한다. 억울한 아저씨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경찰도 그들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숙이 술을 부른다

“사람들 걸어다니는 소리에 하이힐 소리에 또 불이 훤하니 어떻게 자. 술이라도 취해야 자지.”
“술 안 먹고 누우면 또 이런 저런 생각이 너무 많이 나니까...”

‘술’ 이야기가 나오자 술이 없으면 잘 수가 없다는 호소가 가장 먼저 터져 나왔다. 술이 노숙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힘든 노숙 생활이 술을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노숙인이 모두 알콜중독자인 것처럼 말한다. 이에 대해 아저씨들은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우리가 먹으면 알콜중독자, 자기들이 먹으면 음식이야?”
“니네들은 안에서 먹고 우리는 밖에서 먹으니까 눈에 잘 띄는 것뿐이지.”
“몸이 많이 상하지만, 술 끊는 약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병원에 가도 뾰족한 수가 없어.”

힘든 생활에 어쩔 수 없이 술에 의존해 살다가 끝내 죽기도 한다는 아저씨들. 그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이 겨우 ‘알콜중독자’란 낙인을 찍는 것뿐일까?


황당하고 살벌한 편견

2시간 내내 아저씨들은 그냥 편안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는데 나는 괜히 서글펐다. 난 실제로 씻는 걸 싫어하고 게으르다. 술을 좋아하진 않지만 늘 술에 찌들어 사는 친구, 선배와 함께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런 사실에 대해 변명을 해야 했던 적은 없다. 또 그것 때문에 집을 잃지도 않았다.

사람이 좀 지저분하고 게으르고 술 좋아한다는 게 집을 잃을 이유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게으르고 더럽고 술이나 마시고, 그렇게 못났으니 노숙을 하지’ 라는 생각에 들어있는 ‘개미와 베짱이’식의 인과관계는 얼마나 황당한가. 다들 알지 않는가, 세상살이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걸. ‘~면 집을 잃어 마땅하다’는 식의 논리는 또 얼마나 무서운가.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어떤 일들이 필요한지 아저씨들이 직접 나와 요구안을 발표했다.

▲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어떤 일들이 필요한지 아저씨들이 직접 나와 요구안을 발표했다.



우리의 요구

주제별로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고 나서는 우리의 목소리를 담은 요구서를 만들어 보았다. ‘시장 후보님께’, ‘장관님께’ 라는 존칭이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라기보다 아저씨들 자신을 너무 낮추는 것 같아 안타까웠지만 모두 즐겁게 요구서를 작성했다. 아저씨들은 안정적인 일자리와 부담할 수 있는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주거를 원했다. 노숙인이 게으르고 지저분한 것은 사람들의 오해일 뿐만 아니라 일을 하려고 해도 일자리가 없고 씻으려고 해도 따뜻하게 씻을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편견에 짓눌려 찡그리던 노숙인, 날아오르다<br />

▲ 편견에 짓눌려 찡그리던 노숙인, 날아오르다



더 늦기 전에 그들을 향한 이 황당하고 살벌한 편견의 색안경을 벗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황당하고 살벌한 편견을 만들어내고 있는 정책들을 바꿔야 한다.


<날아올라~>는

노숙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지 함께 얘기해보는 프로그램입니다.

노숙인들이 흔히 듣게 되는 편견들을 적은 종이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봅니다. 편견이 만들어지는 이유와 그로 인해 어떤 차별을 받게 되는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런 편견과 차별들을 없애나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요구안을 모둠별로 만듭니다. 요구안에 적힌 내용들을 보며 노숙인을 짓누르고 있는 편견들을 떼어내면 풍선을 타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이 자유롭게 날아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