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이분법, 딥페이크와 AI, 온라인 공간의 혐오와 폭력… 답이 정해지지 않은 질문을 붙잡고 씨름한다는 건 무엇일까요. 2023년 사랑방과 함께한 반성폭력교육을 계기로 인연을 맺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이자 후원인 이효린 님을 만나, 그 질문들을 어떻게 안고 걸어가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 )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효린입니다. 2017년에 온라인 공간에서 성폭력 문제가 폭발적으로 제기되었을 때 디지털 성범죄 ‘산업’의 존재를 폭로하고 피해 지원의 필요성을 외치며 모인 단체구요, 성별 이분법과 차별·혐오 문화에 저항하며 우리 사회 전반의 성평등을 실현하고자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 단체 활동도 2017년도부터 시작됐고요, 피해 지원으로 시작하여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지금은 사무국 전체를 총괄하는 사무국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방 후원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나요?
2023년에 사랑방에서 진행했던 반성폭력교육을 하고 나서 후원을 시작했을 거예요. 그 교육을 계기로 사랑방 활동가 분들이 한사성에 가입을 몇 분 하셨어요. 너무 고맙잖아요, 보답해야 되니까. (품앗이군요ㅎㅎ) 그렇죠. (웃음) 사랑방이라는 단체가 있다는 것만 알다가, 활동가분들을 실제로 만나고 얘기 나눈 게 저한테 되게 좋은 경험이었어요. 힘도 나고, 그때 좀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사랑방의 매력이 있다면?
이건 TMI(Too Much Information)인데 제가 마음이 힘들 때마다 사랑방 홈페이지에 들어간답니다. 특히 운동원칙선언, 이른바 '독립군 원칙'을 읽으면 뭔가 뜨거운 뽕(?) 같은 게 있어요. 처음 읽었을 때 굉장히 놀랐던 건, 한사성은 조직의 형태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근로 계약을 선택했거든요. 우리 안에서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형식적으로는 ‘사용자’가 있는 조직인 거예요. 그런데 사랑방의 이 선언에서 첫째로 활동비를 보장하기 위한 ‘다른 방식의 실천’을 얘기해요. “우리는 생계 해결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상근활동가로 자신을 규정짓지 않는다.”, 그렇지만 조직의 지속은 활동가의 지속과도 같기 때문에 “활동가의 생계를 개인의 책임으로 맡겨두지 않으며 공동으로 책임지는 걸 원칙으로 한다” — 이게 ‘이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싶어서 놀랐고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한사성은 채용 공고로 활동가를 모집하는 단체이고, 자연스레 취업을 목적 중 하나로 지원서를 내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이 선언에 공명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설령 돈 벌려고 운동에 들어왔다 해도 그게 틀렸다거나 진실성을 의심할 일은 아니고, 이 정신만이 유일하고 거룩한 거라고 여기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한사성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세요?
최근 민우회가 성별 이분법에 저항하는 활동의 일환으로 열었던 라운드 테이블에 함께했는데, 그 활동이 한사성에게는 ‘트랜스젠더 배제적 페미니즘’이 한국에서 폭발하듯이 일어나던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에 조직된 단체로서 지난 활동들을 돌아보는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근래에 특히 ‘창녀혐오’(각주1)라고 불리는 섹슈얼리티 위계에 저항하는 활동을 중요하게 하고 있었는데, 성별 이분법 해체를 이 창녀혐오에 저항하는 걸로 설명해보고 싶어서 노력했어요. 되게 힘들었고 잘 안 써졌는데 어떻게 또 해내서 기뻤던 시간이었습니다.
트랜스젠더 배제적 페미니스트에 대한 입장도 좀 변했어요. 지금 제가 보는 트랜스 배제 페미니즘은 창녀혐오에 트랜스젠더 배제, 난민 혐오와 중국 혐오를 함께 하면서 동시에 신자유주의 주체로서의 성공만이 해방이라 설명하고, 정상/비정상 논리로만 점철되어있는 세계관인 것 같거든요. 이전에는 ‘젠더 권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을 설득하고 함께 토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요새는 ‘아… 이거 힘들겠는데?’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깊은 절망감이랄까요. 타고난 성기를 정상성의 기준으로 삼는, 이른바 ‘정상보지’ 중심의 ‘야망보지’(각주2)들. 이들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만날 수는 있을지 엄두가 안 나는 것 같아요.
한사성은 ‘사이버’ 성폭력에 대응하는 곳이니만큼 온라인 공간에서의 혐오와 폭력에 관한 고민도 많으실 것 같아요. 최근에 특별히 마음 쓰신 일이 있었을까요?
4월쯤에 저희가 BJ 여성 비난에 저항하는 성명(각주3, [클릭])을 냈거든요. 저희 인스타그램이 그렇게 좋아요나 댓글이 많이 달리는 인기 계정이 아닌데도 성명 게시물에 댓글이 진짜 많이 달렸어요. 비판도 있었지만 대체로 욕설과 비하, 조롱이었고, 회원 탈퇴도 20명 정도 있었어요. 탈퇴 사유는 “나는 피해자 지원하는 거 도움 되고 싶어서 회원 가입했지, ‘그런 여성들’까지 옹호할 줄은 몰랐다.” 이런 거였고요.
욕먹었던 포인트 중 하나가 BJ 여성들이 겪는 낙인을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낙인이랑 비교해서 설명한 파트였어요.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을 구성하는 게 저희는 ‘창녀혐오’라고 설명하거든요. 피해자가 직접 물리적으로 폭력을 겪는 게 아니더라도 고통스러운 건 창녀혐오라는 낙인 때문이고, 이건 BJ 여성도 마찬가지라는 얘기였는데, 진짜 거의 대부분이 ‘감히 피해자랑 BJ를 비교했다’고 하는거죠. 피해자는 전혀 행위성이 없는 순결한 존재로 신격화되고, BJ 여성은 피해성이 없는 행위자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나 현실에서는 행위성과 피해성을 넘나드는 경험들이 엄청 많은데, 그걸 페미니즘의 언어로 어떻게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가 앞으로 반-사이버 성폭력 운동에서 중요한 쟁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딥페이크 성폭력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고 있잖아요. 그런데 딥페이크의 기반이 되는 AI 산업에 정부는 힘을 막 실어준다고 하고. 한사성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저희는 AI 자체를 폭넓게 다루고 있진 못하고, AI가 젠더 폭력에 쓰이는 지점에 국한해서 얘기해보자면… 2년 전 한 대학의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이 보도된 뒤 초중고 사건들이 연달아 알려지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잖아요. 그때 나온 예방 교육이 ‘영상을 보기 전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라’는 식이었어요. 한사성에서는 이걸 ‘진짜 vs 가짜 논쟁’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고 생각해요. 딥페이크가 ‘얼마나 정교하고 진짜 같은지’에만 초점이 가다 보니, 누가 봐도 티 나게 조악한 합성물로 인한 피해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여겨지거든요. 예전에 강의 나갔을 때, 한 중년 여성분이 딥페이크의 합성 편집 방식을 듣고는 본인 어릴 적에 성인 잡지에 아는 여자 얼굴을 오려 붙이던 게 생각난다고 하시더라고요. 정확한 통찰이라고 생각해요. 딥페이크는 놀라운 신종 범죄가 아니라 도구만 바뀐, 계속되어온 여성 혐오적 젠더 폭력이라는 거죠.
이건 보너스 질문인데요. 한사성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잖아요. 한국에서의 젠더폭력, 사이버성폭력이 갖는 특수성이 있을까요?
한국에서 사이버 성폭력 문제와 가장 밀접하게 얽혀 있는 개념은 ‘음란’인 것 같아요. 미국은 연인 간 불법 촬영물 유포 문제를 시민사회에서 주로 ‘프라이버시’ 침해로 접근해온 것으로 아는데, 한국은 달라요. 젠더 폭력의 문제로 보긴 하지만, 한국 법 자체가 촬영물을 이용한 성폭력을 규정할 때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 유발’을 구성 요건으로 삼고 있어서 피해는 ‘얼마나 음란한가’로 판단되는 구조인 거죠. ‘음란’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지만 이 음란이 한국에서 불법이다 보니 음란과 성폭력에 대한 규제가 계속 혼재되는 어려움도 있어요. 플랫폼 사업자는 불법 촬영물과 음란물을 각각 유통시키면 안 되는 의무를 지는데, 자율적인 규제 상황에서 사업자가 자의적으로 '폭력'과 '음란'을 구분해 규제하고 있거든요. 결국 야하면 다 금지시켜버리는 단순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AI로 음란물을 만들면 성폭력 처벌법으로 처벌하겠다는 발의안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실존하지 않는 여성이 등장하는 AI 음란물을 만든 게 무죄였던 판례의 공백을 메우려는 취지인데, 결국 여기서도 음란물과 성폭력이라는 서로 다른 범주가 계속 뒤섞이고 있는 거죠. AI를 이용한 사이버 성폭력을 다룰 때 가장 쟁점이 되는 건 결국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 했는가’일 텐데,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 등장하는 합성물을 '폭력'이라 부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남아서 저희에게도 여전히 어려운 숙제 같아요. 리얼돌을 둘러싼 논쟁과도 비슷하게 맞닿아 있을 테구요.
▲ 한사성의 ‘음란전복 프로젝트’ 사진. 전복은 여성의 성기를 이미지화하는 데 많이 언급되는데 뒤집어엎는다는 전복(顚覆)의 의미도 있지요. 여성을 ‘음란’으로 통제하고 비난하는 사회적 시선을 뒤집기 위해 전복 사진을 활용해 ‘음란전복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활동에 대해서만 물어본 것 같네요. 효린님 개인적인 근황도 궁금한데요, 최근에 겪은 변화 같은 게 있나요?
제가 올해부터 사이버대학에 다니고 있어요.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도전을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내내 10년 정도 직장 생활하다가 단체 활동을 시작한 케이스예요. 회사 다닐 땐 학력에 대해서라던가, 공부하고 싶다는 욕구나 갈증을 잘 못 느꼈는데, 활동 시작하면서 좀 더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사회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활동이랑 병행할 수 있는 사이버대나 학점은행제 같은 데는 그나마 비슷한 게 후마니타스학과(인문학과)더라구요. 그런데 1학년 1학기를 했는데 병행이 너무 버거워서 8월부터는 상근을 주 4일로 줄이는 시도를 했어요. 한사성이 자유롭고 유연하다는 장점이 있는 조직이라, 동료들과 협의하고 응원과 지지를 받으면서 제가 시작한 공부를 활동과 병행할 수 있도록 많이 배려를 받았죠. 그게 최근 저의 큰 변화예요.
오, 큰 전환이네요. 기억에 남는 배움이 있으신가요?
젠더 관련 수업이 하나 있었는데, 노인여성학 하신 교수님 수업이라 ‘나이 듦’과 ‘죽음’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어떻게 관리되고 산업화되는지 등을 공부했어요. 저로선 처음 생각해보는 주제였는데 내가 ‘나이 듦’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사랑방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늘 응원하고 있고 고맙다, 이런 마음이에요. 바라는 점은 딱히 없고, 그냥 사실 후원인이지만 사랑방이 궁금해요. 사실 ‘사랑방’이란 말만 들었을 때는 뭘 하는 건지 잘 모르다가, 홈페이지를 많이 구경하기도 하면서 알게 되는 중이거든요. 사랑방이 지금 어떤 활동을 하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활동가 한 분 한 분도 다 궁금해요. 앞으로 더 알아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1) 여성을 가부장적 규범에 맞춰 보호할 가치가 있는 ‘성녀’와 배제해도 되는 ‘창녀’로 구분 짓고 차별하는 가부장제 권력의 핵심 기제. ‘피해자다움(가해를 ‘당하기만’ 한 수동성, 완전무결함을 강조)’을 강요하고 가부장적 규범을 벗어난 성범죄 피해자에게 도덕적 낙인을 찍음으로써 구조적 가해의 문제를 은폐하는 기제로 작동.
2) 가부장제가 규정한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권력과 성공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슬로건. 그러나 사회 구조를 해결하는 것보다 개인의 능력주의적 성취를 우선시하며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 경향이 짙음.
3) [성명] ‘양지’와 ‘음지’라는 구분을 거부한다 - 인터넷 방송 BJ 여성의 광고 모델 기용 취소 및 사이버몹에 부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