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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사랑방 20년을 돌아보다 (2)

<편집자 주> 인권운동사랑방 20년 길의 기억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20년 한 길을 걸어오며 쉽게 긴장을 풀거나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많은 분들 덕분에 인권운동사랑방이 다시 걸어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그 길을 함께 걸었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고마움을 전합니다.


6.
사랑방의 중요한 기둥이었던 인권운동연구소와 인권교육실이 독립하기도 했다. 전문화한 영역을 독립시키고 스스로 문어발식 의제를 다루는 큰 단체가 되지 않으려는 지향은, 단순히 단체의 규모나 전문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운동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경향에 대한 경계였다. 2007년 인권자료실의 이전과 함께 인권연구소 ‘창’이 창립하고, 2008년 인권교육센터 ‘들’이 창립했다. 인권영화제의 독립(2013)을 위한 준비도 시작했다. 인권하루소식을 3000호로 종간하고 새로운 주간인권신문인 <인권오름>을 창간하면서, 사랑방은 창립 당시의 모습과 크게 달라졌다.

한국 사회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내는 운동들도 있었다. 2000년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운동들, 체제가 요구하는 삶을 거부하며 새로운 삶의 가치들을 조직하는 운동들도 번져 나왔다. 사랑방은 점차 다양한 자리에서 다양한 운동들을 만나게 됐다. 인권활동가대회를 통해 전국의 인권활동가들이 만나 운동의 전망을 토론했다. 인권단체연석회의와 같은 수평적 네트워크가 만들어졌고 그 외에도 다양한 네트워크들이 인권운동 안팎으로 만들어졌다. 여러 영역에서 전문화된 인권단체들은 각자의 운동을 통해 만난 세상을 교류했고 그 세상에 함께 덤비기 위한 힘을 나누었다.

연결이 연대체의 구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인권활동가들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투쟁에서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가치를 제시하며 불복종행동을 조직했다. 이와 같은 실천 속에서 인권운동과 다른 운동의 자리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이런 흐름들을 엮어 ‘소통, 연대, 변혁을 위한 사회운동포럼’을 함께 열기도 했다. 가치들의 횡단이 운동들의 연결로 바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사랑방은 다른 운동들을 보며 변혁을 꿈꾸는 자리를 다시금 헤아려볼 수 있었다.

7.
2007년 말의 ‘누더기 차별금지법 사태’는 운동들의 연결을 더욱 고민하게 했다. 차별금지법이 성적 지향 등 특정한 차별금지 사유를 삭제함으로써 추진되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 그것이 ‘소수자’의 문제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차별을 금지하려는 법이 차별당하는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한 법으로만 이해될 때, 자신을 차별하는 위치에 놓으며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주장이 손쉽게 먹혀들었다. 혐오가 그렇게 힘을 얻어갔다. 성소수자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혐오는 새로운 현상은 아니었으나 차별금지법 제정 논란을 계기로 정치적 현상이 되었다. 혐오는 특정 세력에 의해 사회적 힘으로 조직되고 있었고, 그것은 단순히 종교적 신념이나 타인을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못하는 마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보수우익 정치세력들은 늘 혐오를 선동한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물적 조건을 봐야 했고, 그 위에서 사람들의 관계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들여다봐야 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세상 속에서 어떻게 인식하게 되며 어떻게 살아가기를 도모하는지 이해해야 했다. 다양한 소수자운동과의 만남을 통해 조금씩 이루어졌던 가치의 횡단은 한 발 더 나아가야 했다. 사랑방은 ‘차별’을 소수자 운동의 의제로 여겨왔다. 여러 소수자 운동이 움틀 때 사랑방은 그 자리를 함께 다지기 위해 연대했지만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면 다시 우리의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그것은 다른 운동들과도 비슷했다. 노동권이든 주거권이든 건강권이든,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 몫은 다른 운동들에 있고 인권운동은 그 자리를 옹호하는 것으로 제 몫을 한다고 여겼다.

자유권과 사회권이 마치 서로 다른 권리인 것처럼 여겨지게 한 이분법적 접근의 문제를 누누이 지적해왔지만 사랑방의 활동은 권리의 영역별로 이루어져왔다. 각각의 영역에서 인권침해를 낳는 구조에 대한 인식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어디에선가 부족했고, 그 안에서 펼칠 수 있는 운동의 전망은 어디에선가 공허해졌다. 권리의 영역들은 세상을 보는 하나의 길잡이들일 뿐인데, 그 안에 갇히다 보니 정작 인권의 주체라고 강조해온 ‘사람’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충분히 보지 못했다. 인권침해를 고발하는 기자회견과 항의집회 등을 쉴 새 없이 했지만 인권운동이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헤아리기 어려웠던 것도 그 때문인 듯했다.

8.
이명박 정권은 법치와 안전을 강조하며 새로운 공안체제를 구성하기 위해 국가기구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했다. 검찰, 경찰, 국정원 등 전통적인 공안기구들을 십분 활용할 뿐만 아니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같은 기구들을 공안의 수호자로 끌어들였다. 성범죄를 선정적으로 부각시키면서 사람들을 불안에 가두고 안전을 위해 감시체제와 국가 형벌권을 강화했다. 이 시도들이 이전 정권들에서 만들어온 변화의 방향을 거스르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다져진 토대 위에서 더욱 밀어붙였을 뿐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눈치를 볼 줄 몰랐다는 정도.

그러나 어느새 ‘정치’는 모두 여당과 야당 사이의 대결에 갇혀 버렸다. ‘독재 타도’의 구호가 다시 등장한 거리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거기에서 사람들은 정권에 항의하는 개별 국민으로만 존재했다. 안전을 바라는 개인들의 기대는 전자발찌와 같은 정책으로 손쉽게 수렴되었다. 먹고사는 문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강요되는 경쟁을 견디는 것으로만 풀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혐오는 더욱 거세졌고, 어느새 사람들은 집단행동을 통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패기를 잊어갔다.

자유권이 다시 ‘정치’의 쟁점으로 불려나갔으나 흩어진 목소리들은 현실을 바꿀 힘이 되지 못하고 제도화된 정치에 갇혔다. 복지국가, 경제민주화 등의 주장은 사회권을 말했지만 살아 있는 목소리가 아닌 규범적 근거로만 떠돌았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겠다는 오만한 시도는 막았지만 지배 권력으로부터 스스로 독립적일 수 없음은 분명해졌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너도나도 인권조례를 만들 때 ‘인권’은 그들의 권력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분절된 인권의 요구들로는 제도화된 정치를 넘어설 힘들을 만나기 쉽지 않았다. 정권은 인권을 어떻게 탄압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통치체제를 조직하면서 누구의 어떤 저항을 막아야 할지 고민한다. 인권운동은 그것에 인권침해라는 딱지를 붙이며 싸울 수 있었다. 그러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점점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인권침해를 주장하는 것으로 통치체제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목소리를 만들고 전하고 모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로부터 나올 수 있을 뿐이다. 희미해진 목소리들을 듣기 위해 ‘인권’은 다시 귀를 여는 태도가 되어야 한다.

9.
인권운동으로부터 배운 감수성을 더듬이 삼아 인권의 현장을 찾아 다녔다. 촛불 인권침해감시활동에 이어 세계인권선언 60주년에 즈음한 2008 인권선언 운동을 조직했다. 용산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강제퇴거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한 활동을 벌였다. 공권력 감시 및 대응팀, 표현의 자유 연대 등 자유를 확장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청소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캠페인단에도 결합했다. 희망버스와 함께 달렸고 강정의 평화도 기원했다. 차별금지법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여러 단체와 함께 부대꼈다. 그러면서도 헛헛함을 숨길 수 없었다.

우리의 더듬이가 향하는 곳, 향해야 할 곳을 더욱 분명하게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기억을 되새겼다.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사라진 것만은 아니었다. 2008년 촛불은 거리로 넘쳐흐르면서 대중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기존의 운동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힘이 번져 나오면서 서로를 물들여갔다. 정치적 결속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거리의 가능성을 일깨워 주었다. 물론 거리는 이내 조용해졌지만 스스로 두려움 없이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실현하는 힘이라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인권’은 살아있는 언어일 수 있다.

용산참사는 공간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려는 시도가 국가의 무력과 사적 폭력을 통해 어떻게 관철되고 있는지 참혹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망루를 지어 ‘여기, 사람이 있다.’는 외침을 전하려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고 공명하는 사람들의 흐름을 만들었다. 저항의 연대는 조금씩 변형을 거치며 넓어지고 깊어졌다. 한진중공업의 85호 크레인으로 향했던 희망버스는 그 흐름들이 우발적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 개인에게 주어진 자리에 갇히지 않으며 서로를 넘나드는 힘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주민발의로 만들어졌고, 물러설 수 없는 원칙을 지키기 위한 교육청 농성이 조직되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강정 주민들이, 밀양의 주민들이 함께 살자고 힘을 모아 외쳤다.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싸우는 것은 꿈이 아니다.

0.
그 꿈을 더욱 벼리기 위해 다시 걸어가려고 한다. 스스로의, 그리고 서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집단적 저항에서 ‘인권’이 여전히 울림을 만드는 언어일 수 있다는 믿음을, 우리는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울림만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체제를 변혁하는 것이 무엇일지, 사랑방을 만들 때에도, 지금도 우리는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것은 단 하루의 봉기도 아닐 것이고 그저 개혁의 시간이 누적된 결과도 아닐 것이다. 치밀하게 구성된 전략을 통해 추진하는 프로그램도 아닐 것이며, 사람들이 어디에선가 모여 흘러가기를 기다리며 대기 상태에 머무르는 것도 아닐 것이다.

‘지금, 여기’를 직시하며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다시 묻는다. 충분히 잘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절망의 근거로 삼기보다는 희망을 벼리는 실마리로 삼으려고 한다. 충분히 잘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가능했던 관계로 우리를 당기거나 밀었던 힘이 무엇인지를 살피려고 한다. 변혁을 먼 미래의 사건으로 유예하지 않고 오늘의 것으로 만드는 일은 우리 스스로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질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새삼 환기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인권’은 그 관계 속에서 사람들의 힘을 통해서만 의미 있는 언어로 세상을 흔들었다는 점을 기억한다. 존엄을 호령했던 사람들, 그리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목소리로 인권의 신호를 보냈던 사람들, 그리고 많은 운동들이 몸으로 보여준 미래를 기억한다.

스무 살로 자란 우리의 몸은, 오늘도 변혁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