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기본권 보장에 관한 우리 헌법의 핵심 원리인 평등이념의 실현을 도모하는 것”이라며 정부에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권고를 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라는 시민들은 더 늘어났지만, 정부와 국회는 차별금지법을 애써 모른 척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이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지난 20년 동안 도대체 국가는 차별을 대처하는 역량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 충분하지 않다면 어떤 부분을 더욱 살펴나가야 하는지부터 다시 묻기로 하였습니다. 구체적인 현실에서부터 법률적, 학술적 의미까지 한국 사회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해 총체적으로 살피는 <공동학술대회-차별금지법 권고 20년 : 한국사회 현재적 쟁점과 차별금지법>(이하 학술대회)가 6월 19일 열렸는데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와 한국인권법학회에서 주관한 학술대회에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사랑방의 활동가들도 함께 참여해 공부하고 또,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궁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
학술대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보편의 감각을 새롭게 구성하는 일”이라는 차제연의 공동대표이자 장애여성공감 활동가인 진은선 님의 개회사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1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상 차별의 개념 재구성>을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차별금지법의 실효적 적용을 위해 차별의 포괄적 의미를 어떻게 법적 개념에 반영할 것인지를 질문한 발제는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는데요. 그중에서도 모든 차별의 유형들이 단일한 차별 사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복합적이고 중첩되어 발생한다는 현실을 어떻게 법에서 다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긴 부분은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이었습니다. 성차별이 발생하는 현실은 그저 성별이라는 단일한 요인 때문에 발생하는 차별이 아니라 혼인 유무, 민족적/ 종교적 생활양식의 차이, 나이 등 복합적인 요소가 반영된 사회적 기준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이죠. 이런 실제 현실을 고려하여 포괄적 차별금지법에서 차별에 대한 정의부터 복합차별을 기준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더 적합하겠다는 제안을 던지기도 했는데요. 법이 현실을 제대로 포착하기 위해 던져 볼 수 있는 질문이라는 측면에서 토론자를 포함하여 참여자들의 공감을 얻는 제기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차별의 개념 자체가 너무 복잡해질 때 오히려 차별받은 당사자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워지는 등 법의 효용성에 대한 질문도 제기되며 함께 토론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2부에서는 차별금지법이 적용되는 영역으로서 일터의 영역과 일터를 제외한 교육, 서비스, 행정 등의 영역에서 차별금지법이 다루는 쟁점을 다루었습니다. 일터 영역에서는 개별적 차별금지제도가(남녀고용평등법, 장애인차별금지법, 고령자고용법, 근로기준법, 국가인권위원회법 등) 차별을 어떻게 규율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는데요. 개별법마다 규제하는 차별의 유형과 적용 범위가 다른 만큼 제도의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용형태, 나이, 국적 등에 따라 구제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달라지고, 차별당한 사람이 자신의 차별을 입증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등 일터에서 발생하는 차별에 대응하기에 쉽지 않은 조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터를 제외한 영역은 훨씬 더 제도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황인데요. 이는 현재 여성은 입학할 수 있는 마이스터고가 없는 조건, 트랜스젠더 학생의 수련회 참여 제한 등 명백한 차별의 현실로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차별금지법이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쟁점도 있었습니다. 차별해선 안 된다는 사회적 원칙을 세우면서 동시에 사적영역에 법적으로 규율하기 어려운 쟁점들을 살피며 차별금지법을 통한 평등의 원칙을 어떻게 세워나갈 수 있는지 구체적인 쟁점과 함께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이어진 2부의 백미는 혐오 대응과 차별금지법의 쟁점을 다루는 부분이었습니다. 최근 스타벅스 사태에 이어, 배재고 사태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한국 사회가 혐오를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되묻게 되는 상황입니다. 편견의 방치가 혐오표현을 낳고 그 혐오표현의 방치가 차별을 낳으며, 다시 증오범죄를 만든다는 ‘혐오의 피라미드’의 개념을 빌리면 결국 위에서부터 명확한 원칙을 세우지 않고 있는 국가의 문제를 짚을 수밖에 없는데요. 소수자에 대한 비대칭적인 권력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로서 차별과 이 연쇄 속에 있는 혐오 표현을 다루지 않으니, 표현을 규제하려는 상황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오직 끔찍한 표현에만 집중하여 규제하려 들기 때문에 어떤 표현을 허용하고, 금지할지만 쟁점을 삼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방향으로만 혐오 표현 규제에 관한 접근법이 반복된다는 진단을 내린 것인데요. 이는 법률적 일관성을 세우는 일에도 실패할 뿐만 아니라, 혐오 표현 규제나 차별금지에 대한 왜곡된 반대 흐름을 오히려 키우는 효과를 만들고 있다는 토론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국가가 자신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서고,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혐오가 내재한 비대칭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해악성에 따른 규제의 우선순위 판단 등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제안까지 나아갔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학술대회 자료집이나 요약 발표문을 참조해주세요)

넘치는 고민 그러모아 이제는 제정으로
마지막 시간은 차별시정과 평등 증진을 위한 제도화의 방향에 대해 여러 패널이 동시에 나와 토론하는 시간이었는데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활용해온 운동의 경험과 고용 영역에서 성차별의 문제를 제도를 통해 대응해온 활동가들의 경험을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차제연의 고민을 함께 이야기하였습니다. 또한 정부 기관에서 차별금지 제도화와 관련하여 어떤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지 법무부, 인권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의 담당자들도 참석하여 현재의 각 기관의 노력을 살피기도 했는데요. 국가기관 중 앞장서서 차별금지법제정에 나서야 할 법무부와 인권위원회가 참여해 차별금지법 제정에 충분한 답을 내고 있지 못한 현재의 상황을 반성적으로 평가한 점은 나름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함께하는 활동가 입장에서 뚜렷하게 제정의 방향성을 확인시키지 못하고 ‘노력’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돌아간 점은 실망스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실망만 하기에는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을 만드는데 언제 정부가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자임했었나 돌아보게 됩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 2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앞선 10년은 정부와 정치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서겠다고 말하면서도 성적지향, 학력, 가족 형태 등 7가지 사유를 삭제한 법을 통과시키려고 하거나, 아예 발의했던 법안을 철회하며 무능을 드러낸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20년 누구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평등에 대한 지향을 실현하는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을 만들자는 의지를 모아 온 것입니다. 정부가 더디면 운동과 더불어 시민들이 나서서 차별금지법 제정하라는 요구를 만든 것이지요. 그리고 이번 학술대회는 그중에서도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100여 명의 활동가, 법조인, 연구자 등이 모여 차별금지법 제정에 함께하겠다고 종일 함께 머리 맞대고 함께 토론한 자리였습니다. 이렇게 참여자가 많은 학술대회는 처음이라는 한 연구자의 말이 귓가에 남습니다. 학술 토론 그 자체가 중요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학술의 영역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넘쳐나는 자리였기에 풍성한 고민도 함께 토론되는 자리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앞으로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발걸음을 걸어갈 이들을 더욱 너르고 힘차게 모아갈 수 있도록 학술대회에서 나눈 이야기 잘 그러모아 차제연의 활동과 더욱 연결해나가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드는 자리였답니다. 더욱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학술대회 자료집을 꼭 살펴보시길 권해드리며 이만 글은 마무리하겠습니다!

공동학술대회 - 차별금지법 권고 20년 : 한국사회 현재적 쟁점과 차별금지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