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별금지법은 내란과 탄핵 시기를 거쳐 오며 어느덧 포용과 평등을 기치로 하는 광장의 상징적인 요구로 자리 잡았다. 나아가 집회에 나와서 구호를 외치는 것을 넘어 자신과 차별금지법의 연결점을 찾고 내 자리, 혹은 내 일상에서 차별금지법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지지만큼이나 혐오도 세력을 키우고 있는 지금, 차별금지법을 자신의 과제로 여기고 있던 광장의 사람들과 함께 연결되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일상적 조직’을 도모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액션크루 1기>(이하 액션크루)가 출발했다. 직접 기획한 캠페인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움직임을 함께 하게 될 액션크루에는 현실에서 마주하는 차별에 대항하고 싶은 노동자,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직접 움직이고 싶은 성소수자, 거창하지 않은 말로 차별금지법에 대해 편하게 말을 건네고 싶은 동료 시민 등 각기 다른 위치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차별금지법, 그리고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에 대해 적극 공감하고, 이를 제정하는데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였지만 이것이 세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는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차별금지법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는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이지만 “이 법으로 무엇이 달라지는가?”라고 물을 때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워지고 원론적인 이야기에만 맴돌게 될 때, 액션 크루의 사전 교육 과정은 그 답을 채워가는 과정이었다. 차별금지법 자체를 묻고 뜯고 씹어보며 시작한 강의는 페미니즘, 극우와 성소수자, 노동이라는 각각의 관점에서 차별금지법이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짚어주었다. 액션크루들은 강의와 질문을 통해 각자 마음 속에서 모호했던 부분의 실마리를 찾아갔다. 알면 알수록, 이전에 생각한 것만큼 ‘만병통치약’같은 법이 아니라는 점에 놀라는 분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사회에 차별의 기준을 명시적으로 세울 수 있고, 차별에 대한 책임과 평등의 의무를 국가에게 부여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되새길 수 있었다. 너무나 일상적으로 접해온 탓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없다’고 여겨지는 차별의 문제를 ‘차별’이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져주는 법인 것이다. 강의 시간이 길지 않아 각 주제에 따라 필요한 부분만 족집게처럼 모아놓은 속성 강의를 들은 느낌이었는데, 덕분에 빠르고 효과적으로 나름의 근거들을 쌓아갈 수 있었다. 회차를 거듭하며 주제를 넘어 교차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정리해보기도 했다. 교육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때만큼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낭설을 기저로 한 혐오 발언을 어디서 어떻게 듣게 되어도 즉각 대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도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런 마음이었으리라 믿는다.
무엇보다 교육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자리로만 남지 않았다. 내 안의 차별을 인지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교육 과정의 첫 회차였던 ‘차별금지법 없는 나라 뒷담화’ 워크숍에서는 각자가 살면서 목격하거나 겪어왔던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발표를 들으면서 새삼 정말 다양하고 복잡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중 몇몇은 어느 날의 내가 말하거나 행했었던 차별이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금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행동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강의에서 언급되는 구체적 차별 사례를 보며 “이게 차별이라고?” 하는 순간들도 여러 번 있었다.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차별을 자꾸 마주치게 되면서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게 되었다. 그 나라는 막연히 차별과 혐오가 없어진 유토피아가 아니라 차별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맞는 책임을 지는 나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 역시도 차별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는 나라일 것이다. 차별의 문제가 나쁜 국가와 기관, 사람의 개별적인 문제로만 남지 않고 공동체 모두가 모두를 나중으로 남겨두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만 하는 세상이 차별금지법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좋으면서도 바빠졌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 책상에는 항상 질문카드가 놓여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미를 물어보는 개인적인 질문이나 차별금지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등 여러 이야기가 섞여 있는 이 카드는 서로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자 했던 일종의 장치였는데, 본격적으로 캠페인 설계를 하게 될 마지막 두 회차의 워크숍 진행 전에 놓인 카드에는 이런 질문이 놓였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캠페인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수줍게 말을 아끼던 사람들도 이 질문만큼은 빠르게, 무엇보다 즐겁게 대답했다. 이제 우리는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와 그곳에서의 우리를 상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차별금지법 만드는 중...
교육이 마무리되며 온/오프라인 등 캠페인 방식에 대한 선호와 어떤 캠페인을 하고 싶은지(쉽고 일상적인 접근, 가짜뉴스 대응, 인식 개선)를 반영하여 3개의 조를 나누었다. 캠페인의 형태는 각 조마다 다르겠지만 모든 액션크루가 캠페인의 메시지가 닿고자 하는 대상, 즉 차별금지법을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차별금지법을 설명하고 싶은지를 계속해서 고민하는 과정 속에 있다. 우리의 액션을 통해 차별금지법을 선물받은 누군가를 언젠가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주체로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을 정말 모두와 함께 만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바쁘게 캠페인을 기획하는 중이다.

교육 과정 수료를 기념하는 티셔츠에는 ‘차별금지법 만드는 중’이라는 문구와 다 채워지지 않은 로딩 바가 그려져 있고 소매에는 ‘오라, 달콤한 차별금지법이여...’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하지만 아무리 오라고 해도 알아서 오지를 않으니 우리가 갈 수밖에. 액션크루의 액션이 차별금지법의 로딩 바를 100%로 움직이게 할 수 있도록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