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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고] 홍콩 WTO 반대시위의 진실

"우리는 '자유무역'과 세계화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WTO의 신화에 저항하여, 그것과는 '다른 목소리'가 있음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삶과 생명, 식량, 그리고 민중의 권리는 상품이 아니라는 울림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목소리를 알릴 효과적이며 유력한 수단들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유일한 공간은 '거리'였습니다. 홍콩의 WTO 컨벤션센터 안에서, 그들만의 토론이 진행되고, 그들의 목소리만이 넘실대고 있었을 때, 우리는 각료회의 기간 내내 홍콩의 '거리 거리'에서, 홍콩 시민과 전 세계에서 모여든 민중들과 함께 WTO가 강요하는 신화에 저항하는 '다른 목소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위는 홍콩정부에 불법집회 혐의로 기소된 14명 가운데 12명(한국인 11명, 일본인 1명)이 1월 5일 무기한 단식에 들어가면서 'WTO에 반대하는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성명서의 일부 내용이다. 한국을 비롯한 이곳 홍콩의 주류 언론들이 연일 12월 17일 발생한 '폭력시위'와 이들 14명의 기소여부에 관해서만 떠들어 대고 있을 때, 정작 가장 절박한 상황에 빠져있는 본인들은 다시 WTO 반대라는 본연의 문제로 시선을 돌렸던 것이다. 이들이라고 왜 가족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왜 자신들이 그렇게 절박하게 홍콩에 왔어야만 했는지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문제로 인해 전 세계 농민과 민중들의 삶을 위협하는 WTO에 대한 저항이라는 원칙적인 문제가 묻혀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소된 한국 농민 가운데 한 분은 자신들이 폭도로 낙인찍혀 돌아갈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의 농민운동이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한국의 주류언론들이 문제삼고 있는 '폭력시위'에 대한 부분이 왜곡된 점이 많다는 것이다. "왜 남의 나라에 가서 법을 어기며 폭력시위를 일으켰냐"는 시각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것은 현재 홍콩에서 집회 및 시위의 권리가 현저히 제한당하고 있는 현지법을 간과한 것이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이전에는 홍콩법상 집회나 시위를 할 경우 당국에 이를 '사전통보'하는 절차가 전부였다. 하지만 1997년 이후부터는 이것이 30명 이상이 모여 시위하거나 50명 이상이 집회를 열 경우 7일전에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법이 바뀌었고, 집회의 내용도 통제를 당해서 이를 어길 경우 '무허가집회'나 '불법집회'로 처벌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현재 홍콩시민단체들은 퇴보한 홍콩법이 홍콩시민들의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현저히 침해한다는 판단 하에 이의 개정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즉 홍콩은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평화적 시위'만이 열리는 '정의와 법치'가 확고히 설립된 이상향이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WTO 각료회담이 열리는 동안 홍콩에는 처음부터 '가진자'들의 권리와 안전만이 보호되었을 뿐, WTO 반대를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온 이들을 위한 '정의'는 없었다. 제 6차 WTO 각료회담 개최 및 그 준비비용으로 홍콩정부는 엄청난 금액(비공식으로 2억8천만 홍콩달러(미화 약 3천6백만불, 한국돈 약 340억원))을 지출하며 회담장인 컨벤션센터 부근에 정부대표단들을 위한 철저한 보안태세에 들어갔지만, 정작 WTO 반대 시위 참가자들에게는 컨벤션센터 측면에서 멀리 떨어진 인적이 드문 홍콩항구 하역장 한 부근만을 집회장소로 제한하는 철저한 이중성을 보였다. 주머니를 털어가며 없는 돈을 모아 홍콩까지 날아온 전세계의 농민과 노동자,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반대의사를 전해야 할 대상인 각료들을 만날 기회, 아니 근처에 갈 기회조차 철저히 박탈당했던 것이다. WTO 폐막을 하루 앞둔 12월 17일 시위대 측이 컨벤션센터 앞에서 평화집회를 열겠다는 입장을 전했지만 홍콩경찰은 이조차 거부했다. 따라서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시위대는 경찰이 정해준 루트를 벗어나 회담장인 컨벤션센터로 행진해 나갔던 것이다. "우리가 정해준 대로만 따르고 그걸 어기면 불법"이라는 것이 홍콩 정부와 한국 언론이 말하는 '합법'이고 '정의'인지 묻고 싶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일부 폭력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려진 사실이므로 더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러한 사태는 잘 알려진 것처럼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과도한 진압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차차 하기로 하겠다. 다만 현재 홍콩에서는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증거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타나면서 홍콩당국의 입장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홍콩 경찰당국은 처음에는 부인했었던 고무총탄의 사용을 시인해야 했고, 며칠 전에는 홍콩 경찰청장이 시위진압 및 체포과정에서 '일부' 실수가 있었다고 한 발 물러섰다. 앞으로 인권탄압에 대한 증거들이 계속 드러남에 따라 홍콩당국의 입장은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천 명이 넘는 시위자들의 대량 체포가 홍콩당국이 그렇게 선호하는 법에 근거한 '합당'한 것이었느냐는 것이다. 법을 위반한 혐의가 있으면 체포를 해서 조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체포된 천여명이 넘는 시위자들의 경우 조사절차 하나 없이 (심지어 진술서 한장 쓰지 않은 채) 구금되었다가 풀려났다. 이는 이들 시위자들의 18일 폐막집회 참여를 막기 위한 홍콩당국의 자의적 '예방적 구금'(preventive detention)으로밖에 해석될 수 없다. 그리고 체포된 천여명 중 극소수인 14명만을 불법집회 혐의로 기소함으로써 홍콩당국 스스로 대량 체포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꼴이 되었다.

그래도 한 발 양보해서 대량 체포가 정당했다고 가정해 보자. 하지만 체포된 이들이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구금당했어야 하는지는 또다른 문제이다. 체포 후에라도 혐의가 없으면 빨리 풀어주어야 하는 것이 '법'에 의거한 경찰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여명 미만의 시위자들만이 폭력에 가담했다고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노약자들 및 여성 시위자들까지 모두 체포하여 장시간 구금한 것은 과연 '합법'적인가? 그리고 연행과 구금당시 경찰이 자행한 것으로 알려진 수많은 인권침해들을 홍콩 당국은 어떻게 '합법화'할 것인가?

문제는 이러한 경찰의 인권침해가 이번에만 발생한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홍콩 경찰의 비민주적 행태가 주목을 받으면서 그동안 외쳐도 들리지 않았던 경찰서와 구금시설에서의 상시적 인권침해 상황이 홍콩 시민단체들에게 조금씩 보고되고 있다. 심각한 것은 피해자들 대부분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나 빈민들, 성노동자 등 사회의 힘없는 약자 계층이라는 것이다. 이에 놀란 이곳 시민단체들은 지난 12월 17일과 18일 연행과 구금과정에서 발생한 경찰의 인권침해에 대한 실태조사와는 별도로 이 문제에 대한 케이스 수집에 들어가는 한편, 경찰 시스템 개혁에 대한 요구를 계획하고 있다.

홍콩의 인권상황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2003년 7월 1일 홍콩판 국가보안법인 '기본법 23조' 제정반대를 위해 50여만명의 홍콩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후, 시민사회 활동에 대한 홍콩시민들의 참여가 증가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WTO 각료회담이 열리기 약 일주일 전인 12월 4일에는 2007년 행정장관 및 2008년 입법회 선거 직선제 실시를 요구하며 10만명이 넘는 홍콩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최근에는 직선제 실시를 위한 정확한 시간 일정표를 명시하지 않고 입법회 의석을 10석 늘려 놓는 것으로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했던 홍콩정부의 정치개혁법안이 입법회에서 거부당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렇게 자꾸 몰리는 입장에서 홍콩 정부는 시민운동이 더욱 확산되어서 자신들의 통제범위를 넘어서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한국농민들의 문제에 강력히 대처를 함으로써 시민운동진영에 명확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나 확실한 것은 한국농민들의 이번 WTO 시위가 결코 폭력시위만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많은 홍콩 활동가들은 이번 한국농민들의 활동으로 인해 WTO체제 및 신자유주의의 수혜자였던 홍콩시민들이 WTO를 좀더 이해하고 다른 나라 민중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고마워했다. 일례로 지난 1일자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 1면에는 한 라디오 방송국이 홍콩 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5년을 대표한 인물' 선정 투표에 관한 기사가 실렸는데, 한국농민들이 19%를 획득하여 70%를 획득한 홍콩 경찰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3위인 도날드 청 홍콩 행정장관(3.5%)과의 표차도 엄청나지만, 편파적인 홍콩언론의 보도를 고려할 때 홍콩 시민들의 진정한 시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기사에 따르면 투표 초반에는 한국농민들이 1위를 달리다가 이에 반발한 경찰들이 이메일 등을 통해 주변인들에게 홍콩경찰에 대한 투표를 독려함으로써 순위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홍콩에서 벌였던 한국농민들의 시위의 진정한 모습에 주목해야 한다. WTO를 반대하는 그들의 본연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일부 '폭력'을 빌미로 그들을 매도하려는 시도는 중단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홍콩 당국이 자신들이 자행한 인권침해와 불법적 행위들에 대해 자성하고 철저한 조사로 화답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또 14명의 기소된 WTO 시위자들은 즉각 석방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임

김수아 님은 홍콩아시아인권위원회에서 긴급항의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