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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국회동의 건너뛰는 '백지수표 파병법'이 온다

[해설] 평화유지활동 명분 상비파병군, PKO

정부가 이라크 주둔 자이툰부대의 파병기간 연장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반전운동 진영에 또다른 도전이 닥쳐왔다. 정부 입장에서 '번거로운' 국회 동의절차를 거치지 않는 '상비파병군'을 만들자는 법안이 지난달 2일 발의된 것. 이에 대해 파병동의안 국회 처리 과정에서 분출하는 국민들의 반전여론을 피해가려는 속셈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단 파병 → 국회 의결 없으면 동의로 간주

김명자 의원(열린우리당)을 비롯한 여야의원 34명이 발의한 '국군부대의 국제연합 평화유지활동 파견에 관한 법률안'(아래 PKO법안)은 파병부대 규모가 300명 이하인 경우 정부가 국회 동의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회 통보만으로도 군대를 파견할 수 있도록 했다. 국회가 파병 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5개월 이내에 반대의결을 하지 않으면 파병에 동의한 것으로 보게 된다. 다만 국회가 의결로 철수를 요구할 경우 지체없이 철수해야 한다. 이를 위해 특정 군부대가 평화유지활동부대로 지정된다.

또 파견기간 연장의 경우 이미 파견된 부대가 100명 이하의 규모이고 연장기간이 3년 이하이면 국회 동의 없이도 가능하도록 했다.

13일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아래 국민행동)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외파병에 대해 행정부에 '백지수표'를 주는 것"이라며 "헌법상의 국회 동의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명백한 위헌"이라고 비판했다. 또 "분쟁지역은 보통 민족, 인종, 종교, 정치, 경제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군이 파병되는 것이 적절한 지에 대해서는 사례별로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며 "이를 군이나 정부에게만 맡겨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반대로 사안이 경미하고 일상적인 것이라면 국회 동의 절차를 생략하면서까지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것.

PKO법안이 처음 거론된 것은 아니다. 비슷한 법안이 지난 16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통과되지는 못했다. 2003년 김용학 의원(한나라당)이 대표발의한 '평화유지활동 목적의 해외파병을 위한 상비군 창설 법안'(아래 김용학안)은 △2개연대의 상비군을 창설하고 △부대는 자원병(일반병사 포함)으로 구성하며 △정부가 파병요청을 하면 국회는 3일 이내에 "최우선적"으로 동의안을 처리하도록 했다. 고작 3일간의 동의안 처리 기간은 파병의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는 국회 동의권을 사실상 무력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나마 김용학안에서는 사전에 국회 동의절차를 거치도록 했지만 이번 PKO법안은 이 조차도 생략되어 있다.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이란?

유엔 PKO(Peace-Keeping Operations, 평화유지활동)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이미 한국은 1993년 소말리아에 252명의 공병부대를, 1995년 앙골라에 공병부대 198명을 PKO로 파견한 바 있다. 현재도 한국은 1994년부터 서부사하라에 의료지원을 명목으로 의료부대 20명을, 2003년 11월부터는 아프가니스탄 재건지원을 핑계로 참모요원 1명을 파견해두고 있다. 또 휴전·정전 감시를 이유로 △인도·파키스탄(1994년부터) △그루지아(1994년부터) △라이베리아(2003년부터) △부룬디(2004년부터) 등에 한국군이 파견되어 있다. 이들의 파병은 매번 국회의 동의를 거쳤다.

유엔헌장은 개별국가의 무력행사를 금지(제1장 2조 4항)하면서 분쟁이 일어났을 경우 "분쟁 당사자는 우선적으로 교섭, 심사, 중재, 조정, 중재재판, 사법적 해결, 지역적 기관 또는 지역적 협정의 이용 또는 당사자가 선택하는 다른 평화적 수단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제6장)고 규정해 평화적 방법의 분쟁해결을 선언하고 있다. 동시에 "국제적 평화와 안전의 유지 또는 회복에 필요한 공군, 해군 또는 육군에 의한 시위, 봉쇄 및 기타의 행동을 포함시킬 수 있다"(제7장)고 규정해 무력적 방법 또한 규정하고 있다.


"PKO 근거는 유엔헌장 제6.5장"

유엔 PKO는 5대 원칙으로 △분쟁 당사자의 정전 합의 △당사자의 동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분쟁의 한쪽 당사자에게 유리하게 행동하지 않는 중립성 △5대국 및 이해관계국의 군대는 원칙상 제외하고 조건이 깨질 경우 철수 △요원의 생명·신체의 방어 또는 임무수행을 방해하는 기도에 대한 저항을 제외한 무력 불사용의 원칙 등을 두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PKO는 이런 원칙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지적이다. 이라크·쿠웨이트 감시단(UNICOM:1991∼2002)은 이라크의 동의 없이 미국·영국이 참여했고 제2차 유엔 소말리아 PKO(UNOSOM II:1993∼1995)는 유엔헌장 제7장에 근거한 평화강제활동 권한을 부여받아 무장세력의 무장해제에 착수해 원칙을 어긴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은 바 있다. 당시 미국은 7천명의 부대를 추가로 파견해 아이디드파와 대결하는 등 독자적인 작전을 전개하다 미군 병사가 사살되면서 국내에서 철수여론이 일기도 했다. 결국 안보리는 UNOSOM II를 조기 철수시켰다. 이처럼 PKO는 분쟁발생요인을 줄이고 완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분쟁발생요인을 증가시키는 강대국의 행태를 그대로 둔 채 분쟁이 발생한 경우 사후대책을 중립국이나 약소국에 분담시킴으로써 강대국 지배체제를 담보해주는 활동에 불과하다는 평가마저 있다.

유엔 2대 사무총장 함마슐트가 "PKO의 유엔헌장 상의 근거는 제6.5장"이라고 말한 것처럼 현실의 유엔 PKO는 유엔헌장 상의 근거를 갖지 못한 '관행적 개념'이다. PKO는 유엔의 이름을 내걸더라도 전적으로 정당화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그 정당성을 개별 사례별로 주의 깊게 봐야한다.


국방부 "자이툰 부대도 PKO"

PKO법안은 '국제연합 평화유지활동'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른 '평화의 조성·유지, 시설의 복구 및 인도적 구호'로 정의하면서도 △분쟁지역 내 무력분쟁 발생 및 확대 방지 △치안 및 질서 유지 △무장세력의 분리, 무장해제 등을 통한 강제적 평화유지활동 등 군사활동을 포함하고 있다. 국민행동은 "'정전 및 평화협정의 유지' 혹은 '분쟁 당사자간의 합의된 약속의 이행 지원' 등과 같은 명백한 단서조항이 포함되지 않는 한…PKO의 5원칙을 넘어설 우려가 있는 모호하고 포괄적인 규정"이라고 비판했다.

게다가 국방부는 2004년 국방백서에서 이라크에 파병된 서희·제마부대와 자이툰부대를 아무런 성격규명 없이 국제 평화유지활동의 일환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PKO법안이 통과되면 미국의 대테러전쟁 등 유엔에 영향력을 갖는 강대국의 군사전략에 국회의 견제도 없이 휘둘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 국민행동의 지적이다.


파병부대 임무 자의적 변경 가능

게다가 PKO법안이 파병부대의 구체적인 직제와 병과(보병, 공병, 의료 등)에 대한 규정 없이 활동내용만 열거하고 있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또 의료지원, 생필품 지급 등 구호활동이나 난민의 정착·귀환 등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등 PKO법안에서 규정하는 나머지 활동들은 굳이 군대가 수행할 필요가 없는데도 PKO의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민간, 비전투병, 전투병의 영역을 모두 포괄하고 있어 비군사적 활동으로 파병되더라도 현지에서 유엔의 요청에 따라 언제든 군사적 임무로 전환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여기에 국회 동의절차는 물론 불필요하다.

지난 5월 6일 국민행동이 연 '(가칭)해외파병법 대응을 위한 내부워크샵'

▲ 지난 5월 6일 국민행동이 연 '(가칭)해외파병법 대응을 위한 내부워크샵'



"정기국회 통과 가능성 높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평화군축팀 이경아 부장은 "아직 상임위에 상정은 되지 않았지만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PKO법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등 사실상 당정이 조율을 거친 법안으로 보인다"며 "반전운동이 강력하게 저지하지 않는다면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지난달 13일 국방부가 발표한 <국방개혁안 2020>에도 'PKO 참여기반 강화'가 21개 대과제 가운데 하나로 포함돼 있고 육·해·공군·해병대 1160명으로 PKO 상비부대를 편성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