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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한-칠레 FTA 또 한고비 넘겨

이라크 추가파병 동의안, 국회 국방위 통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아래 FTA) 비준안 처리가 내주로 연기되면서 일단 고비를 넘겼다. 한-칠레 FTA는 9일 국회 국방위원회를 통과한 이라크 추가파병 동의안과 함께 다음주 본회의에서 다시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FTA, 국회 진통 끝에 1주 유예

9일 오후 6시께 본회의에 상정된 한-칠레 FTA 비준안은 찬반토론에 이어 표결방식을 둘러싼 진통 끝에 밤 11시경 국회 처리를 유예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국회 밖에서 1만 6천 여명의 농민·학생이 경찰의 물대포 세례를 맞으며 한-칠레 FTA 반대를 부르짖는 4시간 동안 진행된 국회 찬반토론에서 유시민, 임종석 등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은 한-칠레 FTA가 시장개방 시대의 대세라며 비준을 촉구했다. 반면, 민주당과 각 당 농촌출신 의원들은 FTA 비준은 농민 생존권을 말살할 뿐 아니라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대의사를 강하게 밝혔다.

특히, 이날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WTO DDA 농업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점', '일본과 EU도 칠레와의 협상에서 농산물의 대부분을 제외시키고 있는 점' 등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농촌 소득보전 정책을 취하는 동시에 자국농업을 시장개방에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비준 찬성 의원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추 의원은 또 정부가 농민보호 대책으로 내놓은 4대 농업특별법에 대해서도 "우루과이라운드 농업개방 이후 이미 정부는 90조원을 농촌에 투자했지만 개방으로 인해 피폐해진 농가를 살리는데 실패했다"며, "앞으로 119조원을 온전히 농업에 투자한다해도 망해 가는 농가에 빚만 더 얹어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농촌 출신 의원들도 '한-칠레 FTA가 통과될 경우 우리의 소농민들은 칠레 농업시장을 장악한 선진국의 거대한 자본과 경쟁을 벌여야 할 뿐 아니라, 곧 재개될 DDA 농업 협상은 물론
다른 농업대국과의 시장개방 협상에서 불리한 지위를 갖게될 것'을 거듭 경고했다.

파병 동의안, 당론 엇갈려

한편, 국회 국방위는 오후 5시경 이라크 파병 동의안을 끝내 통과시켰다. 국방위원 전체 14명 중 장영달 국방위원장과 한충수 민주당 의원만이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3당의 당론이 서로 엇갈려 파병안은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이날 오전 문정현 신부, 홍근수 목사 등 파병반대국민행동 대표단은 이라크 파병안 처리를 반대하며 장영달 국방위원장의 출석을 저지하는 행동을 벌였지만 국방위 회의를 무산시키지는 못했다. 애초 예정된 시간보다 4시간 30분 뒤에 열린 국방위 회의에서 소속 의원들은 침략전쟁의 점령군이라는 본질에는 침묵한 채 오로지 파병을 위한 명분 찾기에만 열중했다.

국방부 장관에 대한 질의의 대부분은 재건사업을 통한 국익에 초점이 맞춰졌고, 일부 의원들은 해병대 파병의 증원을 요청하는 등 상식 이하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국방부 장관은 '우리 군대가 파병되는 키르쿠크 지역의 위험성을 부정할 수 없고, 전후복구 사업 참여 역시 불투명한데다 주둔 기간이나 소요 예산 역시 예측할 수 없다'는 답변만을 내놓았을 뿐이다.


국회 앞, 농민들 거센 저항 이어져

국회 안에서 이라크 추가파병 동의안과 한-칠레 FTA 비준안 논의가 진행되는 내내 밖에서는 농민·학생·사회단체 등이 경찰과 대치한 채 늦도록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오후 2시부터 문화마당에서 열린 농민대회에서 전국농민연대 송남수 상임대표는 "농업을 팔아 나라의 부를 일으키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FTA를 찬성하는 의원은 매국노로 규정하고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어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도 "한-칠레 FTA 국회비준저지 운동에 농민과 노동자가 따로 없다"며 함께 싸워나가자고 호소했다.

오후 3시 40분 경부터 농민들은 국회 앞으로 이동하여 이라크추가파병 국회통과 결사저지 결의대회를 끝낸 1천여 명의 시위대와 합류, '한-칠레 국회비준반대, 파병동의안 통과저지 범국민결의대회'에 참석했다. 오후 4시부터 진행하려던 집회는 경찰의 방해로 1시간 30여분 가량 지연되었다. 이날 경찰은 80여개 중대 9천여 병력과 수 십대의 차량을 동원해 국회 주위를 겹겹이 에워 쌌으며,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난사하고, 헬리콥터를 저공 비행시켜 소음을 야기시키기도 했다. 전쟁터를 연상케 하는 아수라장 속에서 참가자들은 "경찰폭력 중단하라"를 외치며 거세게 저항했다. 이날 80여명의 시민·농민·학생들은 머리나 눈이 찢기는 중경상을 입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추가파병안과 한-칠레FTA 비준안을 끝까지 막아내겠다고 결의를 다지며, 이날의 집회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