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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보안' 고집하는 보안경찰에 미래는 없다

최규식 의원, 국회에서 토론회 열어

정권안보를 위해 일상적으로 국민을 사찰·감시해왔던 보안분실이 해체요구에 직면한 가운데 보안경찰의 필요성에 의문을 던지는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9일 최규식 의원(열린우리당)이 "보안수사대! 과거·현재·미래는?"을 주제로 토론회를 연 것. 최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안문제연구소의 '사상감정' 문제도 제기한 바 있다.


보안경찰 역할은 '운동권 학생' 때려잡기?

지난해 국감자료에 따르면, 2004년 8월 현재 전국에 44개의 보안수사대가 있고 2,772명의 보안경찰이 배치되어 있다. 이는 전체 경찰 91,510명의 3%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제성호 교수(중앙대 법학)는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가 일부 개선된 것은 사실이나,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며 "화해·협력으로 모두가 들떠 있고 통일 분위기에 젖어 있다 하더라도, 어디선가는 보수적인 관점에서 국가안보와 체제안보를 걱정하고 묵묵히 대북 안보태세를 유지하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4년 한해동안 국가보안법 위반 검거자는 68명이고 구속자는 37명인데 이들은 모두 대학생이었다. 이 중 보안수사대가 수사한 경우는 △옥인동 분실(9명) △경기청 보수대(9명) △부산청 보수대(4명) 등 9개 보안수사대 28명이었고 나머지 35개 보안수사대는 알려진 '실적'이 없다. 보안경찰 2772명이 68명을 입건했으니 보안법 위반 혐의자 1명당 형사 41명이 투입된 꼴이다.

지난해 10월 <YTN> 보도에 따르면 인천경찰청 소속 보안과 형사는 100여 명인데 2003년부터 처리한 건수는 단 3건이며 모두 불구속 처리됐다. 또 한달 평균 경찰 1인당 사건 처리 건수가 조사계의 경우 20.4건, 강력반이 6.5건인데 비해 보안과는 0.002건일 정도여서 보안경찰은 '할 일 없이 운동권 학생 잡아들이는 곳'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는 금강산 관광객 수가 100만 명을 돌파하고 하루 평균 1000여 명이 북한을 방문하고 있으며 중국에 이어 남한이 북한의 2대 교역국으로 떠오르는 등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대세가 된 탈냉전 상황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발제를 맡은 송상교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기존의 냉전적 반공 시각으로는 보안경찰이 시대의 변화를 쫓아갈 수 없"다며 "지난 2년간 보안수사대가 존재 이유를 되물을 정도로 유명무실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위와 같은 시대의 근본적이고 불가역적인 변화"라고 지적했다.


보안분실은 밀실수사의 근원

보안분실로 끌려간 피해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보안분실은 대부분 △주택가에 간판도 없이 자리 잡고 있고 △내부 구조는 교도소와 같이 어두운 복도를 따라 조사(심문)실이 있으며 △각 조사실 안에는 책상, 침대, 세면대, 화장실, 욕조가 설치되어 있고 △연행된 피의자는 그곳에서 외부와 고립된 채 3∼4명이 한 조가 된 보안경찰들로부터 며칠씩 수사를 받는다. 특별한 첨단장비를 갖추고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아니라 보안법 위반 혐의자를 연행해 장기간 심문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철야수사도 이뤄지므로 침대까지 마련해 둔 것.

송 변호사는 "폐쇄된 공간에서 비공개적으로 진행되는 수사에서는 '자백'을 강요하여 받아내기가 용이하고, 필요한 수준에서 적절한 '고문' 등을 하더라도 외부에 쉽게 알려지지 않"는다며 "수사관들로 하여금 쉽게 고문의 유혹에 빠지게 하여 인권침해사례를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보안분실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는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가족 등 일반인과 접견하고 서류나 물건을 수수하며 의사의 진료를 받을 권리 △제한없이 허용되는 변호인과의 접견교통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자백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 등이 유명무실해진다는 것. 송 변호사는 "몇평 안되는 밀폐된 공간에 3∼4명의 수사관과 피의자 자신 밖에는 없고 다른 일반인은 조사실은 물론 건물 안으로 접근할 수 조차 없는 상황에서 자유롭게 혐의를 부인하고 형사소송법상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토론자로 나선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박성희 간사에 따르면, 99년 4월 13일 장안동 분실 수사관 30여 명은 서울 성수동 소재 한 기획사에 들이닥쳐 직원 9명을 국가보안법 상 이적표현물 제작·배포혐의로 연행했다. 이들은 장안동 분실에서 위압적인 분위기로 수사 받았으며 "앞으로 이적표현물 될만한 것을 제작하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강요받기도 했다. 연행자들은 15일까지 차례로 풀려났으나 변호인에 따르면 검찰은 이들에 대해 영장신청을 하지도 않았다.

또 2001년에는 통일운동단체인 '전국연합'의 홈페이지 호스팅 업체인 '인스정보통신'의 대표 변창수 씨가 한 남자로부터 "웹호스팅 관계로 상담을 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장안동으로 갔다가 "정복 경찰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인근 건물로 끌려 들어갔다. 변 씨는 약 1시간 반 동안 "전국연합 홈페이지에 실린 각종 자료들을 조사중"이라는 말과 함께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사람들의 로그 파일을 넘겨 달라", "돈을 줄테니까 전국연합 홈페이지를 폐쇄하지 말고 별도로 관리하면서 전국연합에 대한 자료와 정보를 넘겨달라"는 사실상의 '프락치' 요구를 받았다. 변 씨는 '협력자 인적사항 카드'를 작성한 후에야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변씨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장안동 분실로 추정된다.


상금·특진제도, 보안지도관 제도 폐지해야

경찰 내 다른 부서에 비해 보안경찰이 누리는 특혜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국가보안법은 상금 조항(제21조)에 따른 '국가보안유공자 수당'(제24조)을 보안경찰에게 보장하고 있고, 경찰은 보안사범 5명을 검거한 경찰은 특진시키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송 변호사는 "이러한 이유로 경찰청 내 보안국은 모든 경찰이 선망하는 부서로 자리매김되어왔고, 보안부서의 경찰은 실적을 위하여 무리한 검거나 수사를 하여 온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보안경찰은 다른 공무원과는 달리 퇴직 이후에도 보안업무에 종사할 수 있다. "퇴직한 보안경과의 경찰공무원 중에서 우수 요원을 선임하여 재직 중 경험지식과 사례 등을 보안업무에 협조지원"하도록 하는 '보안지도관'이 그것. 보안지도관은 공무원 신분도 아니면서 공안업무에 관여하고 현직 보안경찰들을 재교육하고 있다. 게다가 '보안지도관운영규칙' 제2조 제3항에 따르면 "자격정지 이상의 형의 선고 또는 선고유예를 받은 자, 징계로 파면, 해임된 자는 임용될 수 없다"면서도 "다만 재직중 보안업무를 수행하면서 과실에 의해 파면, 해임된 자는 임용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아 고문조작, 자백강요 등 업무상 과실로 인해 해고된 자도 보안지도관이 될 수 있다. 송 변호사는 "단순한 특혜라는 점을 넘어서, 보안경찰 내에서 전시대의 보안경찰들에 의하여 형성된 구시대적인 보안관, 수사관들이 계속 재생산·답습되게 하고, 보안경찰의 개혁에 장애가 된다는 점에서 더욱 커다란 문제"라고 밝혔다.


날뛰는 보안경찰, 통제장치는?

경찰은 보안분실의 예산·조직·역할은 비공개로 하고 있고, 전국에 44개 있다는 분실의 위치·내부구조·인력조차 '끌려갔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해서만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이영순 의원실 국감자료에 따르면 경찰청의 2004년 예산 중 보안국 예산은 85억7천만원인데 이 가운데 국가정보원이 관리하는 예산인 특수활동비가 74억3천만원(약 87%)으로 그 사용내역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송 변호사는 "특히 보안경찰에 대한 국회의 통제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보안경찰의 소관 상임위는 정보위원회이지만, 보안경찰이 비밀대상임을 이유로 대부분의 자료공개를 거부하고 있어 예결산의 산출내역과 근거에 대해서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 송 변호사는 "보안경찰이 수집한 정보내용은 보안으로서 비밀대상이 될 수 있으나, 보안경찰의 규모, 인력, 예산에 관한 정보는 비밀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제한 없이 국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며 "일반행정에 관한 사항은 기본적으로 행정자치부 소관사항이므로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의 통제를 함께 받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보사찰업무 폐지해야

이와 함께 근본적으로 정보사찰업무를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경찰청 보안국 뿐만 아니라 경찰청 정보국에도 일상적인 사찰업무가 부여되어 있고, 국정원과 마찬가지로 보안경찰은 '보안정보수집권한'과 '보안사범수사권한'을 모두 가지고 있다. 현재 경찰청 △정보1과는 신원조사 및 기록관리 △정보2과는 정치분야 △정보3과는 경제·노동분야 △정보4과는 학원·종교·사회·문화분야의 정보수집 및 집회시위 등 집단사태 관리를 맡고 있는 것. 송 변호사는 "한 기관에 두 권한이 집중될 경우 인권침해의 소지가 크"다며 "기본적으로 사찰업무와 수사업무는 분리되어야 하며 보안경찰이 유지될 경우에도 보안경찰이 보안정보 수집업무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새 밥그릇 찾기 : '북한이탈주민'

보안경찰 폐지 주장에 맞서 경찰이 내세우는 새로운 업무영역이 이른바 '북한이탈주민'이다. 경찰청 국감자료에 따르면, 2004년 6월말 현재 712명의 보안경찰이 4500여 명의 '북한이탈주민'을 담당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의 신변을 보호하고 애로사항을 파악해 지방자치단체 등에 통보하는 등 조기 정착을 돕고 있다는 것. 제 교수는 "중국 등을 통한 북한이탈주민의 대량 입국과 동시에 탈북자를 위장한 불순세력의 잠입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시민의 신문> 보도에 따르면 경찰청 보안국은 북한이탈주민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보안경찰도 늘어나야 한다는 이유로 지난해 1300명의 인력증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송 변호사는 "북한이탈주민 역시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므로 그에 따른 권리를 갖는다"며 "(이들의) 신변보호를 보안경찰이 맡도록 하는 것은, 경찰이 기본적으로 북한이탈주민을 '관리'나 '감시'의 대상으로 보거나 '국가안보에 대한 잠재적 위협세력'으로 본다는 혐의를 충분히 받을 만한 것으로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지원은 기본적으로 '보안'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며 "(북한이탈주민의 범죄는) 일반 형사범죄일 뿐이므로…수사과 등에서 다루면 될 문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