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논평]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공소시효는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광복절 60주년 경축사에서 밝힌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범죄에 대한 민형사상 시효 배제' 발언을 두고 정치권이 논란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의 정치권 논의는 과거사법의 개정이나 특별법의 제정 등을 통해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피해자의 배상과 보상을 위한 민사상의 소멸시효를 없애는 것까지는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이나마도 한 걸음 진전된 논의라고 할 수 있겠으나, 정작 문제는 과거 고문과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 범죄자에 대해 형사상 공소시효를 없애는 입법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이를 두고 앞다퉈 위헌 논쟁을 이끄는 인사들의 면면은 과거 군사정권에서 가해자의 위치에 있었거나 방조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로 채워져 있다. 군대와 정보기관을 앞세워 헌법을 유린하고 시민의 기본권을 짓밟았던 군사권력 앞에서는 침묵했던 이들이 이제 와서 헌법을 들먹이고 법적 안정성을 앞세운다. 나아가 그들은 국제법에서 말하는 반인도적 범죄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국가범죄와는 다르다는 논리도 내세운다.

하지만 애초에 형법상 소급효금지의 원칙은 국가의 부당한 형벌권 행사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성립된 논리다. 문제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해야 할 국가가 앞장서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조작·은폐하고, 피해자의 법적 권리구제의 길을 원천봉쇄함으로써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범죄라는 점이다. 공소시효의 완성을 피눈물을 흘리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피해자들을 두고 위헌 운운하는 것은 국가가 자신의 범죄를 또다시 은폐하고 스스로 면책하는 것과 다름없다. 과거 국가범죄를 단죄하지 못한다면 정의는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고통스런 과거는 가까운 미래에 언제든 다시 찾아올 것이다.

이미 고문과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인정하지 않는 확고한 국제관습법의 원칙이 있으며, "국가는 고문과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의 책임자를 불처벌로 이끄는 법률을 폐기하고 그러한 침해를 기소해야 함"을 역설한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의 행동강령도 있다. 이외에도 '전쟁범죄와비인도적범죄에대한공소시효부적용조약' 등 공소시효 배제를 명문화한 조약들도 여럿 있음에 대해서는 왜 애써 외면하려 하는가.

국제사회에서 합의된 과거청산의 올바른 방향은 당연한 전제인 철저한 진실규명과 함께 책임자 처벌, 그리고 배상이다. 이 가운데 책임자 처벌은 과거청산의 핵심과제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는 우리가 부르는 과거청산을 '불처벌'(Impunity)과의 투쟁으로 개념짓고, 범죄인의 지위에 따른 면책행위나 수사나 기소를 하지 않는 행위, 정치적 편의에 의한 사면행위 등을 일체 금하고 있다.

따라서 중대하고 명백한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대해 공소시효가 진행 중인 경우는 그 시효를 연장하고, 시효가 완성된 경우에는 사후적 입법을 통해서라도 공소시효를 배제해 반인권적 국가범죄를 단죄해야 한다. 그래야만 과거 인권침해의 주범들이 권력의 자리를 여전히 유지하는 거꾸로 선 질서를 바로잡고, 현재도 진행형의 고통을 당하는 피해자들에게 배상의 길을 열어주는 인권과 정의가 서는 미래를 그릴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