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보호수용제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2014년 7월 31일 법무부는 ‘보호수용제도’ 도입과 관련한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법무부는 지난 2005년 폐지된 보호감호처분 제도를 ‘보호수용’이라는 명칭만 바꿔 제도입하기로 2011년 결정하였고, 이후 3년 만에 공청회를 개최하고 올해 12월 국회에 법률안을 제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지난 2005년 폐지된 보호감호처분은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서 실시한 삼청교육의 만료시한이 다가오자, 이들의 사회 복귀를 가로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후 강력범에 대해 출소 후 보호소에 수용하며 피보호감호자들의 사회적 배제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2002년 피보호감호자들이 보호시설 내 인권침해, 사회적 배제와 편견, 사회정착금으로 기능조차 못하는 근로보상금 문제 등을 제기하며 집단농성을 시작하였고, 이중처벌금지와 보호감호제의 반인권성에 대한 문제제기 등이 이어졌다. 결국 2005년 8월 피보호감호자들과 인권시민사회단체의 연대활동을 통해 보호감호처분은 폐지되었다. 당시 작성된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보고서에서는 ‘보호감호가 사회보호 목적을 위해 피보호 감호자를 사회와 단절하고 수용하고 사회와의 교류를 제한하여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이상 형벌보다 차별화된 재사회화 효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처음부터 실현가능성이 낮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무부는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살인범과 아동 성폭력범 등 흉악 범죄자를 격리해 사회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며 보호수용제도가 필요하다고 계속 주장하였다. 2011년 보호수용 등의 각종 보안처분 제도를 명문화한 형법총칙 전면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으나 인권침해적 이중처벌이라는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으며, 이후 약 3년이 지난 2014년 7월 다시 보호수용제도의 도입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보호수용제를 통해 ‘안전한 사회’는 가능할까?

법무부에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보호수용제 도입 목적을 ‘흉악범죄로부터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고, 흉악범죄자의 사회복귀를 돕는다.’고 밝혔다. 또한 “성폭력범죄의 일일 평균 발생 건수가 58.5건에 달하는 등 흉악범죄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전자발찌, 성충동 약물치료와 같이 새로운 제도들이 도입되었고, 전자 발찌 제도 시행 이후 재범률 감소 등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으나, 이들을 사회 내에서의 관리, 감독은 본질적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보호수용제는 ‘안전한 사회’에 대한 보수정부의 해결책중 하나이다. 지난 2010년 강력범죄에 대한 사회적 파장이 발생하자 정부는 형법개정안을 통해, 유기징역의 상한을 15년 이하에서 30년 이하로, 가중할 경우 50년까지 가중하도록 조정하였고, 상습 성범죄에 대해서는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하는 규정을 신설하였다. 또한 성폭력의 경우 전자발찌, 약물치료와 같은 제도를 인권침해 논란에도 시행하였다. 이는 강력한 처벌을 통한 범죄척결을 주장한 이명박 정부의 기조에 바탕을 두었으며, 보수정부는 ‘강력한 처벌’과 ‘사회적 고립’ 을 통해 안전한 사회가 가능하다 주장하였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을 통해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는 다는 건, 양형강화, 전자발찌, 약물치료와 같은 처벌 제도가 계속 도입되었음에도 강력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여성․아동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는 더욱 증가하고 있음을 통해 알 수 있다. 

물론 전자발찌 부착을 통해 재범률이 낮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재범이 발생하지 않는 사유를 보면, 재범률이 낮아진 것만 집중해서 보지 않아야 함을 알 수 있다. 2010년 법무부에서 전자발찌 대상 21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재범행을 하지 않았다는 대답을 한 사람은 6.5%에 불과했다. 대부분 전자발찌로 인해 범죄시 체포 확신으로 인함이라 밝혔고, 이것은 전자발찌 제도가 감시를 통해 재범을 줄일 수는 있으나, 근본적 원인인 성폭력이 잘못된 행위라는 것을 가해자에게 알려주는 어떠한 효과도 기대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재범률이 낮아졌음에도 도리어 성폭력이 증가하고 있음은 강력범죄의 문제해결에 열쇠가 처벌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정책은 국민에게 국가가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알리바이만을 만들 뿐, 실질적 원인과 근본을 개선하는 데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한다.

‘개인’을 처벌하는 사회, 변하지 않는 사회는 누가 책임을 질것인가.

강력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형법이 존재한 이후 계속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범죄의 수치는 줄어들지 않고, 증가해 왔다. ‘개인’에 대한 처벌은 강화했지만, 안전하지 않은 ‘사회’는 더욱 크게 느껴졌고, 사회적 불안감은 증가했다. 또한 가해자들이 처벌받고 교정기관에 수감되었다 나왔음에도 재범률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과연 어디서부터 문제일까? 재범률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는 여기서 전자발찌 대상자들의 설문을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전자발찌 대상자들은 교정시설에 수감된 후 사회에 다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한 행위가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교정시설은 무슨 역할을 한 걸까? 교정시설이 이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기만 할 뿐 자신이 저지른 폭력에 대해 생각하고, 피해자의 감정을 이해하도록 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재범에 대한 처벌은 ‘개인’만이 아닌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교정시설, 그리고 교정시스템을 만든 사람들이 져야 하는 건 아닐까?

또한 성폭력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었음에도 성폭력이 증가하는 상황은 결국 근본적 원인에 대한 해결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성폭력의 경우 반성폭력 활동가와 학자들에 의해 근본원인으로 성에 관한 금기, 남성중심사회, 가부장제, 피해자의 행실을 문제 삼는 사회적 시선과 법원의 태도등 사회 구조가 지적되었다. 특히 최근 강력범죄가 여성을 대상으로 증가하고 있음은 자신보다 사회적 약자를 누르고 올라가야 하는 경쟁구조에서 범죄의 대상 또한 자신보다 약자를 향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문제에서 처벌의 대상이 행위를 저지른 한 ‘개인’에 불과한 걸까? 남성중심주의 사회를 끊임없이 유지하는 사회, 끊임없이 경쟁을 통해 누군가를 공격하고 눌러야 하는 사회, 피해자에게 도리어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 어느 하나 처벌의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강력한 처벌은 결국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해버리며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회라는 ‘괴물’과 괴물을 만든 구성원들은 면죄부를 얻는 건 아닐까?

이는 최근 ‘묻지 마 범죄’라고 칭해진 범죄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가해자의 대부분은 양극화에서 밀려난 사람들, 경제적․사회적 불안에 내몰린 사람이다. 하지만 그들을 불안에 내몰고 있는 사회,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는 국가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그들을 도리어 사회에서 배제시킨다. 보호수용제도와 처벌정책은 이와 같이 어떠한 사건에 대해 책임져야할 사회구조와 국가는 삭제해버리고, 모든 것을 개인에게만 책임지고 전가시킬 뿐이다.

‘안전한 사회’는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28사단 윤일병 사망사건 이후 군대 가기 두렵다는 이야기가 SNS를 장악했다. 이는 단지 군대내 폭력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군대에서 지속적으로 발생되고 있으며, 군대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군대내 폭력, 강력범죄는 필연적으로 구조적 문제에서 발생한다. 28사단 윤일병 사망사건의 가해자인 이모 병장 또한 선임병들의 괴롭힘에 시달렸으며, 한국 군대를 경험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대내 폭력이 몇 명의 개인에 의해 발생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강력범죄 또한 마찬가지이다. 연간 만 건에 육박하는 강력범죄, 하루 58.5건의 성폭력이 몇 명의 이상한 개인이 만드는 문제일 순 없다. 보호수용제는 이러한 문제를 몇 명의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법무부는 보호수용제 도입을 중단하고, 강력범죄를 줄일 수 있는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