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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반인권적 국가범죄, 공소시효 없다

공소시효 배제 입법 시급


반인권적인 국가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피해자가 구제를 받기는커녕 가해자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권력과 부를 누리고 살아간다면 어떨까?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동안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에 대해서도 '공소시효'와 민사상의 '소멸시효'를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가로막아 온 것.

이와 관련해 27일 열린우리당 이원영 의원은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에 공소시효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국가가 범죄를 승인하는 결과가 되며, 범인도 형벌을 받았다기보다는 오히려 상당한 사회적 지위를 누려오는 등 공소시효제도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인권적인 국가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내용을 주 골자로 하는 '반인권적국가범죄의공소시효등특례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법안에 따르면, △국가공권력에 의한 살인, 고문 등의 행위에 대해 공소시효 적용 배제 △국가기관의 고의에 의한 범행의 조작·은폐행위로 공소를 제기할 수 없었던 기간에는 공소시효 정지 △손해배상청구권은 공소시효가 지났더라도 인정하도록 함으로써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할 수 없게 했다.

고 최종길교수사건과 관련한 국가배상청구사건에 대해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음"을 이유로 26일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서울지방법원 제23민사부(부장판사 이혁우)의 판결은 공시시효 배제에 관한 입법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2003년 8월 서울지방법원은 고 수지김 유족들이 제기한 국가배상청구사건에서 "국가가 위법행위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가 소멸시효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상 도저히 허용될 수 없다"며 국가 책임을 물어 유족들에게 48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그럼에도 법원은 최 교수의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판단을 함으로써 결국 피해자들의 권리구제를 법원의 판결에만 기대기 어렵다는 것을 증명한 것. 최 교수의 아들 최광준 씨는 "법원에서는 1987년 이후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하지만 한 개인이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란 어려운 일"이라며 "국가범죄에 대해서는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법안에 대해 인권사회단체들은 일단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도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들에 대한 형벌권의 소급 적용 여부에 대한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은 점은 아쉽다는 입장이다. 새사회연대 이창수 대표는 "반인도적인 국가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의 소급적용을 통해 가해자에 대해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제법이 요구하는 인권보장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상임활동가는 "민사상의 소멸시효 적용 배제도 중요하지만 반인도적인 국가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에 대해서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법정에 세워서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국가의 불법 행위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표하고, 가해자에 대해 공직에서 추방하는 등의 처벌은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앞으로 "대공수사기관이라는 국가권력의 조직적 지원 하에 반인권적인 국가범죄를 저지른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에 대한 퇴출 운동과 더불어 공소시효 배제 특별법 제정 운동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