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정치인 면죄부에 양심수 끼워넣기' 되풀이!

광복 60돌 특사, 사면제도 근본적 재검토 요구돼

'광복 60주년 경축 특별사면' 발표 결과를 두고 사회단체들의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불법 정치자금 관련 정치인들을 대거 사면복권 대상에 포함시키면서도 현재 수감돼 있는 1천명이 넘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존재는 아예 외면했다. 한총련 수배자들에 대한 사면도 지난 2003년과 마찬가지로 '선별 사면'의 잣대를 고수했다.


양심수 13명 석방, 그러나 여전히 묶인 '양심들'

12일 천정배 법무부장관은 오는 15일자로 총 422만여 명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한다고 밝혔다. 유형별로는 도로교통법상 벌점·운전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을 받은 사람이 420만여 명으로 가장 많지만, 정대철(16대 대선 당시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 김영일(16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선거대책본부장), 서정우(16대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 법률고문), 김종필(전 자민련 총재), 김성호(전 복지부장관), 김홍업·홍걸(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등 비리 정치인들도 대거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국가보안법 위반자의 경우 이종린(전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 최승환(한총련 9기 의장) 씨 등 총 273명이 사면·복권됐고, 이 가운데 204명은 한총련 관련자다. 현재 수감중인 양심수 가운데 민경우(전 범민련 사무처장), 민기채(한총련 6기)를 비롯한 한총련 관련 양심수 6명, 강성철(전 전국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조직국장), 인태순(전국철거민연합 회원) 등 13명은 형집행면제 등으로 풀려나 자유를 되찾게 됐다. 또 강태운(전 민주노동당 고문) 씨등 3명은 감형 조치됐다. 한총련 등 국가보안법 위반 양심수와 미복권자 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전향적인 사면이 이루어진 셈이다.

반면, 병역법 위반으로 자유를 빼앗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아예 고려대상에서부터 제외됐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가 현행 병역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이래 병역거부 양심수들이 대거 늘어나면서 7월 11일 현재 1,053명이 수감돼 있는 상태다. 나동혁 씨 등 정치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들과 오태양, 여호와의증인 등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바로 그들. 이에 대해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회회는 12일 성명을 내어 "1천여명이 넘는 병역거부 양심수들에 대해 사면 논의나 고려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번 8·15 사면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꼬집었다.

이 밖에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병역거부자들(향토예비군설치법 위반) 역시 사면복권 대상에서 제외됐다. 여호와의증인 한국지부 홍보부의 유흥빈 씨는 "애초 열린우리당 사면 검토 대상에 향토예비군설치법 위반으로 벌금형이나 전과가 있는 사람들이 포함돼 조금은 기대를 했었지만, 결국 포함되지 않았다"며 "이것도 생계형 범죄 구제 차원에서 검토된 것일 뿐 처음부터 병역거부자들을 고려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선별 사면 잣대, 또다시 되풀이

또 사면 대상으로 검토된 이들에 대해서도 자의적 잣대에 따른 선별 사면이 이뤄져 비판을 낳고 있다.

정부는 먼저 이번 사면에서 현 정부 출범 이전의 노동문제나 시위 등으로 처벌받은 이들을 사면 대상에 포함시키면서도, 현 정부 출범 이후 사건 관련자들은 제외하는 이중성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천정배 법무장관은 "참여정부 이후 노동사범 중 상당수는 재판에 계류중"이며 "그렇지 않다 해도 적어도 참여정부 출범 이후 평화적 의사표현 수단이 보장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겼다는 점과 관련, 앞으로 폭력적 집단행동에 대해 엄정대처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 정부 아래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권, 집회·시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는 해명은 아시아나항공 파업에 대해 긴급조정권까지 발동된 현실 등에 비춰볼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한총련 수배자에 대해서도 정부는 지난 2003년 선별사면의 잣대를 똑같이 들이댔다. 이날 법무부는 "한총련 핵심간부 내지 적극적 폭력행사에 관련되지 아니한 18명에 대하여는 학업복귀 등 인도적 측면을 고려하여 검찰에서 관용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대검 공안부는 18명에 대해서는 자진 출석할 경우 불구속 수사하고, 나머지 수배자에 대해서는 "자수하고 반성할 경우, 제반사정을 확인해 관용조치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선처'를 미끼로 또다시 양심을 굴복시키는 일이 되풀이될 수도 있게 됐다.

이에 대해 '한총련정치수배해제모임' 정재욱 대변인(11기 한총련 의장)은 또다시 선별 사면 방침이 발표된 데 대해 유감을 표하고 "18명을 제외한 나머지 수배자들에 대해 또다시 반성문이나 각서의 형태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현재 열린우리당사와 민주노동당사에서 농성중인 한총련 수배자 7명은 13일 오전 대검찰청과 영등포경찰서로 나누어 출두할 방침이다. 농성자 가운데는 유영빈 씨(10기, 11기 대의원)만이 불구속수사 대상에 포함됐다. 정 대변인은 "이번 조치가 불충분하지만 한총련 수배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로 삼고자 농성자들이 집단 출두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이후 검찰조사과정에서 이번 조치의 진실을 증언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봉건적 잔재, 사면제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편 이번 사면 역시 역대 사면과 동일하게 비리 권력자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부여하는 정략적 도구로, 양심수에 대해서는 '선심 베풀기' 차원에서 작용하고 있음이 드러나면서, 사면제도 자체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상희 교수(건국대 법학)는 "사면은 기본적으로 국왕이 법 위에 존재하던 시대에나 이뤄지던 봉건적 잔재로서 사면권은 되도록 축소하되, 급변하는 시대 상황이나 사회정의의 요구에 비추어 현실의 법이 빚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차원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국가보안법 위반 양심수처럼 정치적 맥락에서 만들어진 '범죄자'들을 사면하라는 요구가 운동진영에서 나오는 것은 우리가 거쳐 온 시대의 산물로서 이해될 수 있지만, 대통령의 정치적 용단이라는 임시방편에 기대기보다 국회의 입법적 노력을 강제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주장은 때 되면 되풀이되는 정치권의 사면 논의에 기대 양심수 사면을 촉구해온 운동의 관행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준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최정민 공동집행위원장도 "이번 사면을 앞두고 병역거부 양심수들은 정략적 도구에 불과한 사면에 끼어서는 나가고 싶지 않다고 말해 왔다"면서 "단일 사안으로는 최다 양심수를 양산하고 있는 병역거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선처' 형식의 사면이 아니라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법 개정을 촉구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