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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 김종서의 인권이야기 ◑ 인권 : 1994년과 2004년

지금부터 꼭 10년 전, '문민'정부가 출범한지 한 해가 되던 1994년에 열린 한 심포지엄에서 당시 인권운동사랑방의 서준식 대표는 과거 인권문제의 청산, 국제적 인권기준에 따르는 법제도 정비, 그리고 인권의식 향상을 위한 교육 내지 계몽, 이 세 가지를 문민정부가 인권상황 개선을 위하여 채택해야할 정책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그 때부터 10년이 지나, 정부의 모토도 '문민'에서 '국민'을 지나 이제 '참여'로 바뀌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세 가지 기준은 지금도 유효하다.

삼청교육, 의문사, 해직언론인과 해고노동자 등의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상태이다. 오히려 새롭게 드러나서 청산을 요구하는 과거 인권문제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음에도 정부의 의지는 찾아보기 힘들고 과거청산은 '국민통합'의 이름 아래 더욱 멀어지고 있다. 10년 전 220명이었던 양심수의 숫자가 71명으로 줄었다는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아야 할 지경이다.

군사정권하에서 만들어진 반인권적 억압법제는 어떤가?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건재하여 '참여'정부 출범 후 금년 5월 13일까지의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자수는 89명에 이른다. 더구나 참여정부 출범 후 9개월간 국가보안법 관련 법원의 판결이 100% 유죄율을 보이고 있다는 데에는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보안관찰법과 사회보호법 또한 위력이 여전하고, 집시법은 완전히 집회금지법이 되었으며, '국민의' 정부에서 시작된 테러방지법 제정 기도는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비록 전교조는 '국민의' 정부에서 합법화되었지만, '참여' 정부는 공무원노조를 지명수배하고 있다. 10년 전 빗발치는 비판 속에서 추진되고 있던 '근로자 파견법'은,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의 암담한 현실을 짓누르는 수많은 노동악법 체제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간에 눈에 띄는 변화 하나가 있었다면 국가인권위원회가 설치된 것이리라. 국가인권위원회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권단체들이 몇 년에 걸쳐 노력한 결과 얻어낸 결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그러한 바람들을 얼마나 구체적 실천으로 승화시켜낼지 여전히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활동이나 심지어 그 존재가 국민들에게 얼마나 인식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학생들에게, 법집행공무원들에게, 그리고 일반 국민들 모두에게 행해져야 할 다양한 인권교육 프로그램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기획되고 집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듣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전히 인권교육은 인권운동사랑방이나 수많은 인권단체들의 몫으로 남겨져 있는 상태이다.

많은 인권단체들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사람의 자유와 권리가 충분하게 또 한결같이 보장되는 사회가 도래하여 그 단체의 존립의의가 상실되는 것, 그리하여 아무런 부담 없이 자진 해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 대표가 인권운동의 장래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10년 전보다 우리 인권단체들이 담당해야 할 몫은 오히려 더욱 커진 듯이 보인다.

◎김종서 님은 배재대학교 법학부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