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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 직접민주주의의 씨앗 (끝) 국민소환제

대표자 선출과 소환의 권리는 동전의 양면

몇 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선거. 국민들의 '소중한 표'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들은 몇 년 동안 국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직위를 유지한다. 그들이 아무리 민의에 반하는 행동을 해도 국민들은 그들을 선출했던 것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국민소환제 도입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일 수밖에 없다.


대의제의 실체를 보여 준 부안

7만의 군민 중 수천 수만 명이 200여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지난해 7월 이후 관련 구속자 38명, 불구속자 85명, 불입건자 95명, 중상자가 400여명(2004년 2월 10일 집계)이었고, 마을 이장의 70%가 총사퇴하였다. 그다지 크지 않은 지역에서 일어난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정부와 일부 자치단체장을 중심으로 부안에 핵폐기장을 건설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결국 2월 14일 주민투표를 통해서 72.04%의 투표율에 91.83%의 압도적인 반대로 주민들은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군민의 손으로 직접 선출한 군수와 도지사는 군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핵폐기장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에 부안 군민들은 군수소환을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해 2만3천여명(유권자 5만2천여명)의 군민이 서명을 하였고, 군수 퇴진을 위한 시위와 불복종운동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현재 군수와 도지사는 여전히 군민들을 대상으로 핵폐기장 유치를 설득하고 있는 중이라고 핵폐기장백지화핵추방범부안군대책위 관계자는 전한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신봉'하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 모습이다.


주민발의로 주민소환조례 쟁취

한편 광주광역시에서는 '주민발의에 의한 주민소환조례'가 제정되어 직접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주민소환조례제정운동에 앞장서온 광주시민단체협의회(아래 광주시민협)는 "2004년 2월까지 광주전남지역 자치단체장 29명 중 10명이 각종 비리로 그 직위를 상실했거나 사법처리 과정을 밟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시장은 뇌물수수 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추징금 3천만원의 형을 받았고 현재 항소중이다. 이에 광주시민협은 '시장이나 시의원의 위법·부당한 행위, 직권 남용, 직무유기에 대해 소환을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광주시민협은 지난해 9월부터 6개월여 동안 서명운동을 진행한 결과 1만9천여 명을 주민소환조례제정 청구인으로 등록했다. 이어 2월 23일에는 '광주광역시공직자소환에관한조례안'을 시에 제출했고, 지난 29일 시의회 본회의를 거쳐 조례안 제정이 확정되었다. 조례안에 따르면, 시장과 시의원을 소환 대상으로 하여 전체 선거인의 일정 수(시장은 유권자의 10%, 시의원은 20%)가 연서해 소환을 결정하면 소환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게 된다. 투표 결과 투표자의 과반수가 소환에 찬성하면 소환 대상자는 직위를 잃는다. 소환선거는 소환 요구가 성립된 60일 후 80일 전에 실시해야 하며, 소환선거와 함께 후임자 선출을 위한 보궐선거를 동시에 치르도록 하였다. 단, 취임 후 6개월이 지나지 않았거나 잔여 임기가 6개월 미만, 또는 소환선거 후 6개월 이내에는 소환 요구를 할 수 없다.

소환조례 제정에 대해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소환제와 관련한 상위법이 없고, 소환조례가 '지방자치단체장의 임기와 퇴직사유'에 대해 규정한 현행 지방자치법과 상충된다는 근거로 시 관계자 일부가 반발하며 나선 것. 이에 광주시민협은 "주민소환제는 지방분권특별법 14조의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주민투표제도, 주민소환제도, 주민소송제도의 도입방안을 강구하는 등 주민직접참여제도를 강화하여야 한다'는 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며 반박했고, 그 결과 소환조례는 광주시민들의 의사에 따라 제정되었다.


소환사유의 기준은 헌법이 돼야

주민소환제정운동이 광주뿐만 아니라 전라남도, 구리 등 곳곳에서 진행중이지만, 국민소환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열린우리당이 17대 국회 개원시 우선처리 47개 법안 중 하나로 국민소환에 관한 법률을 지정하였고 민주노동당 역시 국민소환제 도입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인권운동사랑방의 '국민발의제·국민소환제에 대한 질의서'에 열린우리당이 "위법·부당한 행위나 직권남용을 한 선출직 공직자에 대해 국민소환제도를 도입할 것"이라 밝히고 "이라크 파병이나 한-칠레 FTA 문제 등 정치적 결정에 대해서는 헌법소원 등 다른 방법으로 그 정당성을 묻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답함으로써 국민의 의사에 반하거나 헌법 정신에 위배된 정책을 결정한 대표자에 대해서는 소환할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 정책에 따르면 부안군민들은 자신들의 의사에 반하는 군수를 여전히 자신들의 힘으로 소환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관련, 일본 마끼정의 상황은 고무적이다. 오마이뉴스(2004년 2월 9일자)에 따르면, 일본 중앙정부의 마끼정 원전 건설 계획에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자주관리 주민투표' 운동을 벌였다. 당시 일본에도 주민투표와 관련한 조례가 없었지만 95년 1월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주민의 95%가 반대를 표명하였고 이후 단체장에 대한 소환운동이 벌어져 결국 정장은 사임했다. 이후 '마끼 원전 주민투표 실행모임'의 대표가 정장에 당선되었고 주민투표 조례안이 만들어져 96년 주민투표 실시 결과 60%가 넘는 반대로 원전 계획을 철회시켰다.

헌법 1조는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정신에 기초하여 국민의 뜻과 의사를 무시한 권력은 국민소환제 도입을 통해 철회되어야한다. '더 많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국민소환제 도입을 통해 국민이 '주권자'로 다시 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