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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북 사회의 자유권과 진보적 인권운동의 고민

한반도인권 뉴스레터
19호 | 2010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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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북한은 자유가 없는 나라’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러한 일반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북한은 인권침해 국가’라는 등식이 성립하기도 한다. 이 말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OO국은 인권침해 국가’라고 낙인을 찍는 일이 아니다. 인권침해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인권침해가 있는지 밝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당사자와 인권옹호자들이 서로 소통하고 함께 토론하는 것이 더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1) 사상 양심의 자유

사상 양심의 자유는 언제 어디에서나 보장되어야 한다. 정치체제나 사회·역사적 배경이 다르다고 해서 사상 양심의 자유가 제약되어서는 안된다. 남북은 역사적으로 분단 이후 체제 경쟁을 벌여 왔다.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가 대립해오는 동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을,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의 사상을 억압해 왔다. 남한에서는 대표적으로 「국가보안법」이 사상 양심의 자유를 제한해 왔다. 북한 역시 ‘비사회주의 그루빠 검열’ 등을 통해 과도하게 사상 양심의 자유를 제한해온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의 「형법」 제61조 반국가선전·선동죄나 같은 법 제67조 민족반역죄 등 정치적인 범죄에 대한 광범위한 규정을 보았을 때, 단지 사상과 양심의 차이만으로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우려된다. 이와 같이 사상과 양심의 문제로 처벌의 대상이 된 ‘정치범’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사회적으로 정치·사상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규모와 관계없이 인권침해라고 할 수 있다. 남한에도 아직까지 적지 않은 수의 정치범(양심수)들이 존재한다. 북한에도 정치범이 있다는 증언과 추측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남북 모두에서 모든 정치범들을 석방하고, 사상 양심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해야 하는 것은 공통의 과제이다.

사상 양심의 자유와 더불어 북의 종교의 자유에 대해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북 유엔 UPR 보고서는 “공민은 헌법 아래, 저마다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종교를 실행하고, 종교건물과 시설을 지을 수 있으며, 공개적·비공개적·개인적으로나 공동체 내에서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종교의식을 열 수 있고, 종교교육을 줄 수 있는 권리와 같은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주장했다. 또 “국가는 종교로부터 분리되고, 모든 종교는 평등하다”고도 주장했다. 현재 북한에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조선불교도연맹, 조선천주교인협회, 조선천도교중앙지도위원회, 조선종교인협의회 등과 같은 종교단체들이 있다. 그리고 평양에는 봉수교회와 장충성당, 러시아정교회가 있고, 개성 영통사, 금강산 신계사, 용악산 법운사 등과 같은 오래된 절들이 복원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다수의 종교시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이 역시 선언적인 ‘종교의 자유 보장’과 종교시설의 존재만으로는 종교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있다고 결론 내리기는 힘들다. 동시에, 북 사회에서 종교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있었다는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하기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종교시설의 존재 여부만을 기준으로 하는 모호한 종교의 자유 논란이나 북한이탈주민들의 인터뷰에만 의존한 조사 결과에 근거한 논란 대신, 북 당국이 먼저 나서서 인민들이 어떠한 종교 활동의 욕구가 있는지, 실질적으로 종교 활동을 하는데 방해나 억압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한 후 정보를 공개하고 필요한 정책을 만드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이때, 종교의 자유와 관련된 혼란 중의 하나는 종교의 자유를 ‘선교의 자유’로 혼동한다는 데 있다. 종교는 문화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사회 구조, 정치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선교’가 실제로 다른 문화·정치 사이에 충돌을 낳고 갈등을 유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선교에는 종교만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정치도 대부분 함께 동반되기 때문이다. 몇 해 전에는 선교를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갔던 한국인 선교사들이 아프가니스탄 저항세력에게 인질로 잡히는 사건을 통해, ‘공격적 선교’의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특정한 목적과 행태를 가지는 ‘선교’는 종교적 문제라기보다는 정치·문화적 문제에 가깝다. 다른 종교 간의 공존을 모색하지 않고 자기 종교만 진리라고 하는 주장은 오히려 종교의 자유에 반하는 행위다. ‘종교’와 ‘선교’를 빌미로 문화적·이데올로기적 목적으로 침투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또다른 얼굴이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 교회는 북한을 적극적으로 선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보였던 ‘공격적 선교’가 북한에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많은 기독교 교회가 ‘북한인권’을 말하며 북한 주민들을 ‘불쌍한 대상’으로 만들고, 북한 정부를 악마화하며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라고 공격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 기독교 교회들은 북중 국경 지역에서 한 편으로는 북한이탈주민들을 도우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선교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탈주민이 중국에 있는 한국 교회와 접촉했던 사실이 북한으로 돌아갔을 때 밝혀지면 처벌 강도가 커진다는 점이다. ‘종교’와 접촉했던 사실이 문제가 되기보다는 남한 사람(조직)과 접촉한 사실이 문제가 되는 것인데, 관련한 교회들은 이를 ‘종교의 자유 침해’라며 본질을 호도하는데 이용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의 피해가 일방적으로 커지고 있다.


2) 집회 시위의 자유

북한이 2009년 유엔에 제출한 <유엔 UPR(Universial Periodic Review,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보고서>는 “공민은 헌법 아래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가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집회나 시위를 조직하는 사람들은 행사의 목적과 날짜, 시간, 장소, 조직하는 사람과 범위가 구체화된 통지서를 3일 전에 지역인민위원회나 인민보안기관들에 보내도록 요구된다. 인민보안기관은 집회나 시위를 위한 조건을 마련하여 주고, 사회질서와 안전이 유지되도록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법 제도적인 규정만을 통해서는 집회 시위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있는지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 한국 사회 역시 집회 시위를 규정하고 있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 자체가 이미 과도하게 집회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지만, 법 내용의 문제뿐만 아니라 법률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국가 권력이 집회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가 훨씬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북한 역시 과도하게 집회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999년에 제출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이행보고서 125항 및 126항과 2002년에 제출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이행보고서 31항에 보고된 내용을 통해 집회 금지의 이유로 국가안보와 공공질서를 내세우고 있고, 범죄 구성요건이 명확하지 않은 「사회안전단속법」에 의해 집회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집회 시위의 자유는 국가 권력이 자의적으로 침해할 수 없는 기본적 권리의 영역이다. 또 표현의 자유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특히 국가에 의해 권리를 침해당했거나 법 제도를 통해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사용하는 민주주의의 수단이 바로 집회 시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회 시위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북한이 유엔 자유권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대해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가 최종견해 24항을 통해 ▷ 집회가 사전에 금지될 수 있는지 ▷ 어떤 조건 하에서 그러한지 ▷ 그 조치에 대한 이의제기가 가능한지 여부 등 정보 공개를 북 당국에 요청한 것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덧붙여, 북이 스스로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 최근 몇 년 동안 어떤 집회가 절차에 따라 신고되었는지 ▷ 신고된 집회 중 몇 건이 금지되었는지 ▷ 집회를 금지한 이유가 무엇인지 ▷ 미신고 집회(혹은 긴급집회)가 있었는지 ▷ 어떤 내용의 미신고 집회(혹은 긴급집회)가 있었고 몇 건이 있었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이러한 북의 협력을 통해 집회 시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북 당국의 의지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3) 언론 출판의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주민들의 비판적인 의견이 존재하는 것, 그 의견이 정책결정기구의 상층에 전달되는 것, 그리고 그 의견이 사회구성원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모두 중요하다. 언론 출판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서, 언론 출판은 시민들 간의 의견 교환과 의사소통을 통해 권력 기구를 감시하고 민주주의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북은 유엔 UPR 보고서를 통해 “480종의 신문들이 발행되어 전국적,지방적 차원에서 공장,기업소와 대학들에 배포되고, 수백 가지 종류의 잡지들이 수십 개의 출판사들에 의해 간행되고 있다. 모든 공민은 텔레비전과 출판물들을 통하여 자신들의 관점과 의견들을 표현할 수 있다. 그들은 헌법과 관련된 법률들에 의해 문학 및 창작활동의 자유를 가진다. 그들은 신소청원법 아래, 기관, 기업소, 단체, 인민정권기관 일꾼들의 비법적 행위에 대해 비판하고, 불만을 제기하며, 뜯어고치도록 할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북 당국이 언론 출판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할 수 있다’거나 ‘자유와 권리를 가진다’를 넘어, 그리고 통계를 넘어 실제로 북 내부에서 북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제기한 당과 인민위원회 등 국가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나 소수 의견이 언론 출판물을 통해 유통될 수 있는지, 그리고 유통되고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주류적인 권력을 견제하고 비판할 수 없는 언론 출판의 ‘자유’는 실제로 아무 의미가 없다. 국가 권력이 절대선이 될 수 없는 이상, 국가 권력에 대한 비판은 어느 사회에서나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다양한 의견 수렴 장치가 보장되고 있어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민들의 의견을 완전히 수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언론 출판의 자유를 통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래서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북의 「출판법」 4조가 “출판사업에 대한 통일적인 지도는 그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중요담보이다. 국가는 출판기관을 합리적으로 조직하고 출판사업에 대한 유일적인 지도를 실현한다”와 같이 규정한 내용을 통해 볼 때, 북 당국이 ‘통일적이고 유일적인 지도’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 내부의 비판적인 의견을 과도하게 억압하고 언론 출판의 자유를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정부의 의사에 반하는 내용이라고 해서 언론 출판을 통해 표현하고 알리려는 것을 누구도 제한하거나 막아서는 안된다.


인권침해가 없는 사회는 없을 것이다. 북 역시 여러 자유권의 영역에서 인권침해가 있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추상적인 내용의 낙인을 통한 인권 개선 전략은 방법적으로도 올바르지 않고 실제 개선 효과도 거의 없다. 그보다는 구체적인 인권 상황을 정확하게 짚어보고 개선 전략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인권개선을 위해 더 필요하다. 물론, 북 당국의 적극적인 인권개선 의지와 구체적인 정책, 열린 대화와 협력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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