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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집> 겨울잠 깨워야 할 법사위 계류 법안 ⑥ : 호주제 폐지 법안 <끝>

국회, '가부장적 가족' 수호신 되려나


양성평등에 위배되는 위헌적인 제도로 비판받아온 호주제를 전면 폐지하자는 민법개정안이 국회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하지만 유림계 등 일부 세력의 극렬한 반대에 따라 통과 전망은 불투명하다. 이에 따라 2000년 9월 여성계가 호주제 폐지 청원을 국회에 제출한 이래 16대 국회 내내 지속됐던 "호주제 폐지"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가 될 위기에 처했다.

그 동안 호주제는 재혼가정의 아이들이 새 아버지와 다른 성과 호적으로 인해 혼란을 겪게 만들고, 이혼한 어머니와 살고 있는 자녀가 단지 동거인으로 기록되는 등 호주에게 우월적 지위를 부여하는 차별적인 제도로 비판받아 왔다. 1999년 유엔 자유권위원회(인권이사회)와 2001년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도 각각 우리 정부에 호주제 폐지를 권고한 바 있고, 2001년과 2003년에는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돼 현재 계류 중이다. 또 2003년 3월에는 국가인권위가 "가족간의 종적 관계, 부계 우선주의, 남계 혈통 계승을 합리적 이유 없이 강제"해 "헌법에 위배되며 인권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기도 하는 등 국내외에서 호주제 폐지 요구가 거세게 일어났다.

결국 지난해 5월 여성부·법무부 등 관계부처와 민간단체가 공동으로 '호주제 폐지 기획단'을 구성해 논의를 시작했고, 같은 해 10월 법무부가 마련한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제출됐다.


우여곡절 끝 제출된 민법 개정안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호주제 폐지라는 원칙은 지켜졌지만 일부 내용은 후퇴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애초 입법예고 되었던 안에서는 자녀의 성과 본을 부모가 협의해서 결정하고 협의가 안되면 가정법원에서 결정하도록 했으나, 정부안에서는 원칙적으로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되 혼인신고시 부모의 협의로 어머니를 따를 수 있도록 예외를 두는 정도로 후퇴했다.

또 국무회의에서 고건 총리가 "가족이 상실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함으로써 애초 안에서 삭제됐던 '가족' 범위 규정이 현행 "호주와 구성원"에서 "부부와 그 직계혈족·형제자매"로 변경·유지됐다. 이에 따라 "호주제 폐지는 가족질서를 파괴하는 부도덕한 행위"라는 일부의 반발에 굴복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남성 중심성·가족 개념 유지돼


하지만, 이처럼 후퇴한 법안마저도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유권자들의 눈치를 본 법사위 의원들은 법안을 법안심사제1소위에 회부한 뒤 심의를 계속 지연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법사위 관계자는 "논란이 많은데도 각 당에서 당론을 정하지 않아 정당간 합의가 도출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의견수렴을 위한 법사위 차원의 공청회가 예정되어 있지만, 각 당 간사들이 아직 개최 일정도 협의하지 않고 있고 총선도 얼마 남지 않아 자칫하면 법안이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당론 정하지 못해 물거품 위기


한편 법안이 통과되어 호주제가 폐지되더라도 갈 길은 멀다. 양부모 가정을 정상으로 보는 가족 규정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 '다름으로 닮은 여성연대' 타리 간사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개념을 지탱해온 호주제가 폐지되더라도 한부모 가정의 여성이나 비혼여성, 동성애 커플 등은 여전히 '비정상'으로 치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신분등록제도로서 현재 호주를 기본으로 작성되어 있는 호적제도를 대신해 여성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인별 신분등록제(일인일적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타리 간사는 "행정적인 효율만 지나치게 고려해 너무 많은 정보를 일괄해서 담는다면 국가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문날인반대연대 윤현식 활동가도 "일인일적제로 가더라도 기준자가 호주에서 본인으로 바뀔 뿐 주민등록번호가 결혼여부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연결시키는 통로 역할을 하게 되어 개인정보의 집적으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며 "출생부·혼인부·사망부 등 목적별 공부를 따로 만들어 필요한 부분만 모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본인 확인을 위해 필요하더라도 누구나 모든 내용을 볼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소수자 가정·정보인권 보장은 과제로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인권침해를 낳는 신분등록제도의 전면 수정 과제는 여전히 남게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