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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21대 대선, 민주주의의 위기를 넘는 시간이 되려면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민주주의로

21대 대선은 계엄과 탄핵이라는 정치적 사건으로 촉발한 장이다. 대통령만 바꾸지 말고 세상을 바꾸자 했던 광장의 외침이 정치를 바꿔내는 장으로서 기능할 때 21대 대선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내란 청산과 민주주의 회복’이란 구호만 있을 뿐, 그 과제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는다. 여느 대선과 다르지 않은 정치권의 행보는 어떤 시간 위에 지금이 도래했는지 망각한 듯하다. 윤석열 탄핵 광장의 외침을 기억한다면 21대 대선은 어떤 시간이어야 할까.

적대적 정치를 단절하는 것에서부터

이번 대선은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과제가 우선이다. 계엄 선포라는 민주주의 파괴가 가능했던 이유는 이미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허물어져 왔기 때문이다. 거대양당이 독식한 정치의 장에서 불평등과 차별, 불안정노동, 재난참사, 기후위기처럼 우리가 살아가며 부딪히는 문제는 정치의 과제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거대양당으로 양분된 정치는 의제가 아닌 적대를 동력으로 삼으면서 이어져 왔다. 윤석열과 민주당은 서로를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거부권과 탄핵이라는 권한을 남발했다. 사회 구성원이 마주하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보다 강대강 대립을 이어가며 민주주의를 멈춰 세웠다. 이렇게 진영화된 정치는 민주주의를 허물며 우리의 삶과 무관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 최후가 적대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시민의 권리를 모두 부정하는 계엄이라는 사건으로 나타난 것이다.

정치가 초래한 민주주의의 위기는 곧 우리 삶의 위기였다. ‘6시간 짜리 계엄’에도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민주주의의 회복을 외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은 거대양당 중심의 적대적 정치와는 단절한다는 약속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시 민주주의를 회복한다고 할 때 그 안에 담겨야 하는 것은 그동안 정치가 작동해온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민주주의 회복을 제도적인 과제로 보며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의 문제가 핵심인 것처럼 다루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은 공통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의 개헌 공약을 내놓았다. 하지만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국회의 권한을 늘리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를 보증할 수 있을까.

여전히 계엄에 대해 입장이 오락가락하며 극우세력의 지지를 얻어내려는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이번 대선에 나설 어떤 자격도 없음은 분명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 이후 사법부를 겨냥하고 검찰을 넘어 사법부도 개혁해야 한다며 적대적 행보를 이어간다. 거대양당 모두 민주주의의 회복에 대한 책임은 뒤로 한 채, 여전히 자신과 다른 정치세력을 적대화하는 정치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권한만 바꾸자는 제안이 기존의 정치와 결별을 약속하는 선언이 될 수 없다. 이번 대선은 민주주의를 파괴해온 기존의 정치와는 단절한다는 약속과 실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극우와 정치의 고리를 끊어낼 때

21대 대선이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기 위해 직면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는 세력화된 극우와 정치의 고리를 끊어내는 일이다. 극우 집단의 세력화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드러낸 단면이다. 극우 집단은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며, 소수자의 시민권을 부정하고 적대시하는 구호를 정치적 요구로 둔갑시켜 세력화에 성공한 것이다. 이들은 계엄 선포 이후 더욱 적극적으로 규합해 사회의 준거점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서 왔다. 이런 극우세력이 집단화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폭력과 차별의 선동을 정치적 의견으로 승인하며 논의의 장에 등장시켜서는 안된다. 극우 집단이 내거는 구호가 정당한 의견과 행동이 아니라 폭력과 파괴 행위라는 것을 분명히 하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음을 단호하게 선 긋는 정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선을 통과하며 정치는 또다시 극우가 다시 결집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반동성애’에 앞장서 온 손현보, ‘부정선거 음모론’을 퍼뜨리며 영향력을 키워온 전광훈의 지지를 받는 김문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국힘과 다르다는 개혁신당의 이준석 역시 윤석열의 1호 공약이었던 ‘여성가족부 폐지’를 또다시 내걸고 이주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주장하며 극우세력과 같은 주장을 선전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탄핵정국에 극우의 선동에 맞서 광장을 지켜온 정치세력조차 극우세력에 휘둘리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대선에서 표심을 잃을 수 있다는 핑계로 극우가 반대하는 문제는 회피하거나 나중으로 미루고 있다. 지금껏 극우가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던 배경에는 계엄 이전부터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성별, 세대, 고용형태 등 집단과 집단의 갈등으로 왜곡하는 주장에 편승해온 민주당의 책임이 결코 적지 않다. 박근혜 탄핵 광장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도 ‘반동성애’ 세력과 선을 긋지 못한 민주당 정부가 정권 내내 이들의 요구에 끌려다니다 결국 지난 20대 대선에서 다시 정권을 내준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윤석열 탄핵 이후 광장의 목소리를 대변해 다시 민주주의를 세우겠다는 정치세력이라면 그 책임을 다하며 극우세력의 요구와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21대 대선은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기 위한 우리 사회의 준거점을 확인해가는 정치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그동안 정치가 외면하고 부차화해온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직시하며 다시 사회의 토대를 만들어가야 한다.

광장의 요구에 응답하는 정치를

마지막으로 21대 대선의 가장 큰 과제는 광장에서 윤석열을 파면시키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요구해온 시민들의 목소리에 정치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이다. 불안정한 일자리, 쉬운 해고, 재난참사, 산재사고, 전세사기, 젠더폭력, 단속추방, 부채 압박, 노동권 무시, 경쟁교육, 시설 수용… 존엄과 권리가 흔들리며 계엄 이전에도 이미 계엄 상태와 다르지 않은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윤석열 탄핵 광장 내내 이어졌다. 일상에서 겪는 문제는 모두 불평등한 사회라는 토대 위에 있었다. 이러한 삶의 위기를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와 사회가 계엄을 불러왔다면 이번 대선에서는 나의 일상, 즉 불평등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나의 문제를 바꿔나갈 비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선의 시간이 본격화되면서 광장에 넘쳤던 다양한 요구와 목소리들이 지워지고 있다. 평등을 향한 요구와는 거리가 먼 대선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가 먼저라며 또다시 ‘성장’만을 강조하고, 규제를 풀고 세금을 없애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경제 강국을 만들겠다고 한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치가 불평등한 우리의 삶을 살피라는 요구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평등과 차별금지의 약속이 먹고 사는 문제라는 외침을 또다시 외면하고 있다. 다시 민주주의를 말하는 정치가 들어야 할 것은 광장의 요구여야 한다.

대선을 지나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민주주의로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정치권은 ‘우리’의 자리를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주권자가 아니라 누구에게 표를 줄 건지 유권자의 위치로 가두려 한다. 광장을 함께 지켜온 정치세력과 시민사회 일부도 이에 조응하고 있다. ‘광장대선연합정치시민연대’는 진보당 등 야4당과 ‘광장대선후보’로 이재명을 선정했다. ‘내란세력’과 ‘민주세력’의 대결인 대선에서 민주당의 압도적 승리가 곧 민주주의의 승리인 것처럼 말한다. 정권교체와 사회대개혁 과제를 선후의 문제로 만들며 광장이 만든 대선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던 정치를 바꾸고 다른 세상을 만들자는 광장의 요구를 광장의 이름으로 지우는 것이다.

광장이 지워져가는 대선에서 광장을 이어가려는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의 도전이 더 의미 있는 이유다. 자신의 존재와 삶을 드러내고 서로의 자리들을 연결하며 존엄하고 평등한 우리로 존중받고 환대받는 경험을 쌓은 광장에서 우리는 누구도 외롭게 두지 않겠다는 다짐과 연대를 새겨왔다. 광장은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갈 민주주의의 모습을 함께 그리고 배우는 장이었다.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강화하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주인인 우리로부터 가능하다. 광장은 정치적 주체로서 ‘우리’를 세우고 확장해온 시간이었다. 이번 대선은 광장을 이어가며 새로운 민주주의로 나아가자는 방향성을 확인하는 계기여야 한다. 우리의 삶은 대선 이후에도 이어지기에 이번 대선이 민주주의의 승리를 바라는 이들과 함께 ‘우리’의 자리를 더 넓히고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