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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21대 대선,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는 모든 것들에 대한 속풀이 수다 후기

다들 대선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을지 궁금합니다. 3년 전,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말이 따라붙었던 20대 대선, 그때보다 나아진 게 있을지 찾아보기 어려운 21대 대선을 마주하며 모두 답답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선거’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민주 대 반민주’라는 구도에서 서로를 심판하자는 외침 속 거대양당만이 선택지로 여겨지며 다른 정치에 대한 요구는 포박되고, 모든 뉴스가 선거로 도배되면서 중요한 사회 이슈는 가려진 채 우리의 삶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시간, 부디 이번 대선은 좀 다르게 펼쳐지길 바라며 조금은 기대를 품기도 했습니다. 계엄이라는 민주주의 파괴 시도를 막아내며 촉발한 장인 만큼, 이번 대선은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과제를 확인하는 시간이어야 했습니다. 광장에 모였던 우리가 서로에게 배운 민주주의를 아주 조금이라도 닮은 대선이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대선의 시간에 광장은 사라졌습니다. 이미 계엄상태와 다를 바 없던 일상을 이야기하며 대통령만 바꾸지 말고 세상을 바꾸자 외쳤던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청소년, 농민, 노동자, 세입자 등 광장의 주인공들은 지워졌습니다. 광장을 채웠던 사회대개혁 요구는 선후의 문제가 아님에도 정권교체가 우선이라는 말 뒤로 밀려났습니다.

계엄에 대한 사과와 반성 없는 ‘내란정당’ 국민의힘, 정권교체로 ‘내란종식’을 등치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조건이라면 거침없이 적대적 행보에 나서는 더불어민주당, ‘새로운’ 선택지라 나서면서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개혁신당, 이번 대선이 또다시 기득권 정치의 무대만 될 수 없다는 갑갑함이 컸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광장의 목소리를 잇는 역할에 나선 민주노동당은 반가웠지만, 한편으론 진보정당이 미끄러져온 시간 위에서 그 도전을 나의 몫으로 여기기 어려운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속 답답한 날들이 이어지며 파면투쟁을 함께 해온 동료들의 고민과 근황이 궁금하던 때, 반가운 자리가 열렸습니다. 5월 26일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에 함께 하는 활동가들이 모여 대선을 둘러싼 속풀이 수다회를 했습니다.

계엄은 “안티페미니스트 정치의 말로”를 보여준 것이었지만, 성평등이 지워진 대선으로 드러나듯 ‘안티페미니즘 정치’는 지속되고 있다는 진단, 광장의 목소리를 이어가는데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 선거운동에 함께 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는 판단, 다른 정치의 가능성과 힘을 만들어가야 할 운동의 과제에서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의 관계를 돌아보며 재설정하지 않은 채 ‘진보 후보’를 지지하는 것에 대한 우려 등 먼저 이야기를 열어준 이들에 이어 이번 대선을 둘러싸고 저마다의 위치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곤경을 느끼는지 수다가 이어졌습니다.

지난 20대 대선을 앞두고 사랑방에서는 ‘반보수전선’을 반복하지 않고 다른 정치의 가능성을 여는 시간으로 사회운동이 세력화의 길을 내야 한다는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그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사회운동의 동료들과 5년 뒤, 10년 뒤를 바라보며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준비해보자는 포부를 품어왔는데요, 그 준비를 아직 하지 못한 상황에서 계엄-파면-대선 국면을 맞이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도래한 21대 대선이 우리에게 어떤 시간이 되어야 할까 질문할 때 과거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컸습니다. 박근혜를 파면시켰지만 우리 삶은 그대로 아니 나중으로 밀려났던 문재인 정부 시기를 또다시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대선이 끝나고 새 정부가 출범한 지금, 광장의 시간을 이어가야 하는 운동의 과제를 생각합니다.

광장에서 '다시 만난 세계'를 그릴 때 가장 많이 등장했던 요구는 '차별금지와 인권보장'이었습니다. 차별과 불평등이라는 위기에 내몰려온 우리에게 계엄 이전의 민주주의로 돌아가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이야기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불평등 구조라는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한 채 이재명 정부는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산업 성장을 만능 해결책처럼 이야기합니다. 성평등과 차별금지의 요구를 외면해온 정치의 무책임이 키운 삶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가 새 정부에서 달라지길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이러한 위기를 각자도생이 아닌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문제로 더 많이 더 크게 이야기하며 이어가야 합니다. 그 전환점으로 민주주의의 주인인 ‘우리’의 자리를 확인하고 서로를 연결하며 존엄하고 평등한 ‘우리’를 지키는 연대를 쌓아온 시간을 기억하며, 다시 우리가 함께 만들 광장을 그려봅니다.

 


▲수다회에 참여한 동료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