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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정치는 정당만의 몫이 아니다

21대 총선 이후, 시민사회운동의 과제

21대 총선이 정부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여러 분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다른 무엇보다 이번 선거는 코로나19 사태가 모든 것을 집어삼킨 선거였다. 수개월째 계속되는 지구적 보건위기 속에서도 한국이 비교적 안정적인 대응과 관리가 되고 있다는 점,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 더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민생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정부 여당을 선택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조차 어려운 당장의 위기는 미래에 대한 비전보다 위기관리능력을 더 찾게 만든다.

하지만 정부 여당의 압승이 단지 코로나19때문만은 아니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떠올리게 만드는 미래통합당의 무능, ‘정의당 지지가 진정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위한 길’이라던 심상정 대표,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하려다 거부당한 민중당·녹색당의 행보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한국 정치의 주류가 보수정치에서 진보개혁정치로 교체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면서, 마치 민주당이 새롭게 등장한 집권세력이라도 되는 양 지난 20년 동안 한국사회를 신자유주의 효율성에 반응하는 사회로 만들어버린 책임은 사라진다. 심화하는 불평등과 폭력 속에서 삶의 위기와 불안을 극복할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은 그만큼 작아진다. 시민사회운동, 인권운동은 선거정치에서 한 발 비껴나 언제까지 이런 관전평만 반복해야 하는 건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21대 총선 결과다.

정책과 정치세력은 분리불가능하다

시민사회운동은 선거 시기에 나름의 방식으로 정치참여를 해왔다. 대표적인 게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다. 주로 후보자의 자질과 도덕성에 초점을 맞춰 선정한 낙선대상자 86명 중 59명이 낙선할 정도로 선거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단체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87조를 일부 개정하기도 했다. 그 이후 매 총선시기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연대기구가 꾸려졌고, 이번 선거에서도 ‘2020 총선시민네트워크(총선넷)’이 각 정당의 정책평가와 낙선후보명단을 발표했다. 하지만 2000년 16대 총선 이후, 시민사회단체 선거대응의 영향력은 계속 줄어들었다. 언론과 유권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정책질의에 대한 정당과 후보자의 응답률은 떨어져만 갔다.

시민단체의 선거대응은 90년대 관권선거를 막기 위한 공명선거운동, 투표독려운동에서 출발해 낙선운동을 거쳐 정책평가활동 중심으로 변화 발전해왔다. 선거 시기 시민단체는 정치의 조직자가 아닌 감시자, 정보제공자, 평가자의 위치인 것이다. 이러한 시민단체 선거대응에서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중요한 원칙이 된다. 선거대응의 중심이 된 메니페스토운동, 정책평가활동 역시 공정성과 중립성이 중요해지는데 이는 특정 정치세력, 정당과 거리를 두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선거 시기 유권자들의 선택에서 정책이나 공약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유권자들은 선거용 공약에 더 이상 속지 않을뿐더러, 개별 정책과 공약을 넘어 지지할만한 정치세력인지를 판단하면서 각 정당에 투표한다. 혹자는 합리적인 정책대결이 실종되고 진영논리만 강화된다고 하겠지만, 무릇 정책이 그것을 추진하는 정치세력과 분리될 수 없다는 걸 떠올린다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 동안 민주당 계열 정당에 입당한 수많은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의 행보가 이를 증명한다. 이들은 노동, 여성, 환경, 청년 당사자 또는 정책 전문가로서 운동의 과제를 ‘개인적’으로 실현하려고 했겠지만 보수정치세력인 민주당의 지향과 한계에 갇힐 뿐이었다. 정치는 결코 정책 성안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정책을 제대로 실행하기 위한 조직화, 세력화가 정치다. 얼마나 많은 법안들이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되는가. 설령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실행과 집행 계획이 뒷받침되지 못해 사문화되는 일도 부지기수다. 시민단체의 선거대응활동이 인물중심의 ‘낙선운동’의 한계를 넘어 ‘정책평가’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여전히 선거에서 유의미한 행위자가 되기 어려운 이유다.

제도 정치는 정당의 몫?

시민단체의 선거대응활동과 비슷한 시기, 혹은 그보다 더 일찍 민중운동, 사회운동은 후보출마와 정당창당을 통해 제도 정치에서의 세력화 운동을 시작했다. 이미 92년 대선부터 민중후보를 내왔고,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과 2004년 원내 진출 이후 진보정치는 보수일색의 한국정치를 바꿔내는 중요 행위자가 되었다. 시민사회운동은 2000년을 즈음해 총선네트워크 방식의 권력감시운동과 독자적 진보정당운동으로 각각 선거정치에 임해왔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분당과 통합진보당 사태를 거치며, 사회운동과 진보정당의 연계는 느슨해졌다. 민주노동당 창당에 핵심적 역할을 한 민주노총은 2012년 19대 총선부터 ‘유권자네트워크’에 참여한다. 원내정당이 된 이후 진보정당은 선거중심정당이 되어갔고, 더 많은 의석 수 확보를 위한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이 ‘민주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십여 년 동안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통해 현실 정치에 개입하고자 했던 사회운동은 총선네트워크에 소극적으로 참여하거나, 냉소적 관전자가 되어갔다.

지난 20여 년간의 결과로 제도 정치는 정당, 즉 사회운동과의 연계가 희미해진 정당의 역할이라는 관념이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특정 정책이슈를 제기하고 사회적 문제를 쟁점화하는 시민사회단체가 정치적 요구와 세력화가 집약적으로 이루어지는 선거 시기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기에 애매하게 선거대응기구가 꾸려진다. 직접 정당정치에 뛰어들거나 한 발 비껴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 이어진다.

제도 정치를 바꿀 ‘운동과 정치’를 조직하자

이명박근혜 정권 시절 광장을 가득 채웠던 대중운동의 물결을 민주당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성공적으로 수렴해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신을 저버렸다는 비판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비판이다. 촛불정신에서 삶의 위기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와 연대의 힘을 발견했던 ‘운동’이 그 힘을 이어가기 위한 ‘정치’를 새롭게 조직해야 했다. 정치는 언제나 선거 그 이상이지만, 현실 정치권력을 새롭게 재구성하기 위한 과제를 제도 정치만의 문제라며 외면할 일도 아니다.

‘2020 총선넷’은 ‘분노하자. 참여하자. 희망하자’며 활동을 펼쳤다. 주요 활동 의제로 불평등 타파, 젠더 차별 혐오 근절, 기후위기 대응과 안전사회, 권력기관 개혁, 한반도 평화를 내걸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 실현과제도 함께 제기했다. 하지만 이런 의제를 내걸고 꾸준히 활동하고 정치를 조직해온 세력이 없었기에 총선넷의 활동은 정책 제안과 감시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힘들었다. 공약과 정책만큼이나 그를 실현할 정치 세력이 중요하다면, 시민사회단체와 운동세력들이 정치세력화의 마중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선거와 같은 제도 정치를 정당들의 역할이자 몫으로만 미뤄둬서는 안 된다. 민주당과의 선거연합, 진보정당들 사이의 통합이나 연합 논의를 뛰어넘어 사회운동이 여러 진보정당들을 담아내는 틀 역할을 할 수는 없는 걸까? ‘나락으로 떨어진 한국 정치, 절망의 정치’에 분노한 이들이 매번 선거 때마다 권력위임을 강요당하고 절망에 내몰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코로나 이후 국가의 역할을 새롭게 묻게 되는 지금, 누구나 전환을 말한다. 180석의 슈퍼여당이라는 결과를 보고 누군가는 개혁국회를 기대하지만, 정부 여당을 선택한 많은 사람들조차 개혁은커녕 당장의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기만을 바랄 것이다. 각자도생의 사회를 만든 정치적 책임은 사라지고, 새로운 전환 사회에 대한 비전조차 없는 민주당이 개혁정치세력으로 불리면서 제도 정치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우리가 경험하기 시작한 경제와 사회의 총체적 위기는 기존 시스템의 기능저하, 작동불능을 의미한다. 정치는 이를 수습하려 하겠지만 민주당이 주도하는 제도정치는 이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 사회 대전환은 정부와 국회를 장악한 정치세력의 정책과 프로그램이 아닌, 삶의 위기와 불안을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경제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운동’, 그리고 그 운동이 조직할 ‘정치’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21대 총선이 지난 지금 시민사회운동에 남겨진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