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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기후위기, 자본의 기회가 아닌 사람의 문제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 증언대회

2020년, 가장 많이 회자된 말은 단연 코로나19일 테지만 기후위기, 기후변화도 이에 못지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생, 50일이 넘는 긴 장마의 원인으로 기후위기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다. 유엔 차원에서 기후변화대응이 시작된 지도 30여 년이 되어가고,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묶어야 미래가 있다는 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IPCC) 특별보고서가 인천 송도에서 2018년에 발표되었지만, 한국의 최대 환경문제는 ‘미세먼지’였다. 그런데 갑자기 모두가 ‘기후위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국회에서도 기후위기 대응 비상선언이 결의되고, 정부는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재생에너지,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업들의 경쟁도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이윤을 위해 자연과 인간을 착취, 수탈해온 자본의 파괴적 결과를 기후위기로 경험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거대기업과 정부가 나서 녹색 시장과 녹색 자본을 외치는 상황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기후위기가 이들의 새로운 돈벌이 기회가 아니라 우리 삶의 ‘위기’라는 것을, 그래서 기후위기대응은 사람의 문제이고 인권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 증언대회’가 기획되었고 석탄발전 노동자, 건설 노동자, 농민, 한국과 필리핀의 청소년이 증언자로 나서게 되었다.

매일 눈뜨면 날씨부터 확인하는 건설 노동자와 농민

인천에서 형틀목수로 일하고 있는 이상범은 매일 새벽 눈 뜨면 날씨부터 확인하는 건설 노동자의 삶에 대해 증언했다. 2018년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때는 도저히 낮에 일을 할 수 없어서 고육지책으로 새벽 3시부터 작업을 시작하기도 했다고 한다. 올 여름에는 50일 넘게 이어진 긴 장마로 일을 할 수가 없어서 일당제로 일을 하는 건설 노동자들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너무 덥거나 추우면 일하는 게 고통스러운 건설 노동자들이지만, 정작 기후변화나 기후위기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다고도 했다. 하루하루 노동이 고되기도 하지만 건설 노동자가 뭘 요구한다고 바뀌는 건 없을 거라는 기대없음을 그 이유로 들었다.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를 묻는다면 당연히 일할 수 없는 날씨에도 내몰려 일하는 지금의 상황, 그리고 이런 상황을 방치하거나 방조하는 정부의 책임을 이야기했다. 과학자들은 이런 이상기후가 점점 심해질 거라고 하는데, 지금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는 정말 일을 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경북 성주에서 참외와 생강 농사를 짓는 최창훈 역시 농민들도 매일 일어나면 날씨부터 확인하다는 말로 증언을 시작했다. 냉해, 폭염, 폭우, 태풍과 같은 이상기후가 한 번씩 휩쓸 때마다 1년 농사 지어 한 해 살아가는 농민들의 생존은 큰 위험에 처한다며 구체적인 피해사례를 증언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자본에 종속된 농업의 현실이 문제임을 이야기했다. 수많은 농기계를 사용하며 소모하는 연료, 화학비료와 농약, 종자까지. 농민들이 생산자 같지만 엄청 큰 소비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게 다시 기후위기를 촉진하는 상황에서 농업이 달라져야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이를 위해 농산물 소비자들의 변화도 필요함을 역설했다.

  

기후위기대응 논의에서 배제되는 석탄발전 노동자와 청소년

고 김용균 노동자가 일했던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 이태성은 일자리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석탄화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해 증언했다. 정부의 노후석탄화력발전소 폐쇄 계획에 따라 30기의 발전소가 폐쇄되는데, 업무전환이 이야기되는 정규직과 달리 비정규직은 일자리가 사라지게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후석탄화력발전소 폐쇄라는 정부정책을 지지하고 더 나아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요구하기로 했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도 사회에 꼭 필요한 전기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해 왔던 발전노동자로서, 에너지 전환이 필요한 지금 상황에 동의하고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사회의 필요에 의해 발전소를 지어서 운영했고, 다시 그 필요에 따라 폐쇄한다면 거기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생존권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간절히 호소했다. 2년 전 김용균 노동자 사고 때 쏟아졌던 사회적 관심에 비한다면, 일자리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금 석탄화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너무 없다고 한다. 에너지 전환이 정의로운 전환이 될 수 있도록 비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가 논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울산에 살고 있는 청소년 윤현정은 기후행동에 나서게 된 이유와 청소년기후행동 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경험들에 대해 증언했다. 다들 청소년을 미래세대라고 하지만 정작 자신은 기후위기로 인해 미래를 생각할 수 없는, 미래가 없는 세대임을 이야기했다. 기후위기에 대한 소식을 듣고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은 주로 공포, 막막함, 좌절, 우울과 같은 것이라며 어른세대와 달리 청소년이 겪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은 훨씬 크다고 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기후행동으로 연결되었고 학교에서, 시청 앞에서 피켓팅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기특한’ 행동 범위를 넘어서자 학교에서도 주변에서도 반대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치인들을 비롯해 수많은 어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기특하다’는 말이라며, 하지만 정작 청소년을 기후위기의 미래를 함께 살아갈 동등한 주체로 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 생존권부터 정치적 권리까지

기후위기는 너무 멀고 큰 이야기 같지만 그렇지 않다. 증언자들의 경험은 이례적이라거나 특별한 게 아니었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겪고 있었지만 이를 기후위기의 문제로, 인권의 문제로, 사회의 변화로 해결가능한 문제로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정말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농사짓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고, 도저히 옥외 건설 노동을 할 수 없다는 호소, 누구보다 기후위기대응의 필요성과 절박성을 느끼지만 논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석탄발전 노동자와 청소년의 증언을 통해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는 당장의 생존권부터 동등한 정치적 주체로서의 권리박탈까지 광범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영상으로 함께 한 필리핀 청소년과 필리핀 그린피스 활동가의 증언 역시 기후위기대응은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로서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1세계 화석연료기업들의 책임을 묻는 투쟁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