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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인권하루소식] ‘2003 10대 인권소식’을 통해 본 노무현 정부 1년

‘2003 10대 인권소식’을 통해 본 노무현 정부 1년

배경내 / 인권하루소식 편집장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Human Rights Day, 세계인권선언 제정 기념일)을 맞아 올해도 어김없이 <인권하루소식>은 ‘2003 10대 인권소식’을 발표했다. 나흘간의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100여 명에 달하는 인권활동가와 독자들이 꼼꼼하게 설문지를 체크해 팩스로, 이메일로 응답해 주었다.
설문지를 만들기 위해 지난 1년간의 하루소식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여러 가지 가슴 아픈 사연들, 기가 막힌 사건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다 보니 어느새 주요 사건 59개 문항이 추려졌다. 언젠가 한 독자가 <인권하루소식>을 읽는 일은 참으로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딱딱한 기사체에 대한 비판인가 싶었더니, 그 안에 담긴 사연들이 너무나 자신을 힘들 게 한다는 고백이었다. 59개 문항들 가운데 좋은 소식, 인권의 진전을 알리는 소중한 소식이 가물에 콩 나듯 띄엄띄엄 박혀있는 것을 보니 새삼스레 그 독자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서 박혔다.
올해는 기성 정치권 내에 가장 개혁적이라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첫 해였다. 누구는 그가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이유로 많은 기대를 했다고 한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새 정부의 상대적 개혁성이 인권의 진전에 어느 정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인권운동 진영에 아예 없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 뽑힌 10대 인권소식이나 59개 주요 사건들의 문항을 보고 있노라면 노무현 정부 1년의 인권 성적표는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올해의 10대 인권소식으로 선정된 사건들은 2003년의 인권현실을 고스란히 고백한다.

    1. 네이스 반대투쟁, 정보인권 수호 대장정 닻 올라(85.6%)
    2. 미 이라크 대량학살전 개시…한국군, 침략군 일원 자처(83.5%)
    3. 반핵 깃발 아래 하나된 부안, 정부 밀실행정에 경종(80.4%)
    4. 송두율 37년만의 귀국, 유린당한 양심(78.4%)
    5. ‘2003년 전태일들’, 몸뚱아리 내던져 노동탄압에 항거(74.2%)
    6. 터널 속 이주노동자…강제추방에 ‘노예노동제’마저 유지(55.7%)
    7. 농민 이경해 씨의 죽음, 자본의 탐욕을 찌르다(48.5%)
    8. 국정원이 쏘아올린 감시위성, 테러방지법 재추진(47.4%)
    8. 잇단 생계형 자살, 빈곤이 부른 손짓(47.4%)
    10. 집시법 개악 위기…‘집회금지법’ 비난 확산(42.3%)

이 중 정보인권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지며 1위로 떠오른 네이스 반대투쟁은 15일 국무총리 산하 교육정보화위원회가 ‘개인정보 3대영역의 네이스 분리 운영’ 방침을 정함에 따라 미흡하지만 해결의 궤도에 들어섰고, 부안 핵폐기장 반대투쟁도 10일 정부측의 사과와 새로운 후보지 신청 방침 발표에 따라 다소간 숨통이 트였다. 나머지는 그야말로 인권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여전히 진행중인 사건들이다.

그 외 10대 소식에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두산중공업 배달호 씨 분신사건을 비롯해 △아직도 폐지되지 않고 있는 사회보호법 △집회 현장이나 파업 현장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경찰폭력문제 △백혈병 환자들을 사지로 내모는 글리벡 약값 결정 △이어진 장애인 추락 참사 △국회 통과를 코앞에 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등은 인권운동가들과 인권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헌법재판소의 “대사관 1백미터 내 집회 전면 금지 위헌” 결정으로 집회의 성역을 다시 되찾은 일 △법무부가 호주제 폐지 민법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일 △법원이 안기부 조작으로 간첩누명을 쓴 고 김옥분 씨(수지김) 가족에게 국가배상을 명하고 국정원장이 가족들에게 사죄한 일 △정부가 제주 4?3항쟁과 관련해 제주도민에게 국가범죄에 대해 공식 사죄한 일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면 위안이 될까.
이러한 참담한 상황에도 시장의 권력과 그 권력의 유지를 위한 억압적 질서를 ‘나라경제’니 ‘국익’이니 ‘공공의 안전’이니 하며 기꺼이 옹호하고 있는 대통령은 지난 10일 세계 인권의 날 기념식장에서 침묵의 항의시위를 벌였던 인권활동가들에 이렇게 말했다. “믿음을 저버리지 말고 가자.” 아무런 실천도 뒤따르지 않는 대통령에게서 우리가 신뢰를 계속 가져야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어찌 보면 몇십 억, 몇백 억씩 자본에 손벌려 창출한 이 정권에 당초 기대를 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결국 인권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는 우리들의 믿음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