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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묻고자 합니다

제3차 민중총궐기가 있었던 지난 12월 6일, 제가 명동 밀리오레에 도착했을 때 전의경과 시위대는 대치상황이었을 뿐 폭력시위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전의경들이 방패 끝을 땅에 갈아 살인무기로 만든 뒤 시위대와 시민들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위협을 가했습니다. 그것은 전의경의 시민에 대한 위험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폭력이었고 그래서 곁에 있던 여성동지들과 인간 띠를 만들어 비군사적 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고자 했을 뿐이며 그 과정에서 주먹을 휘두르거나 물건으로 위협을 하는 등의 폭력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전의경이 방패로 사람들을 위협하고 덮치는 과정에서 끌려들어가 얼굴과 배를 흠씬 맞고 나서야 연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유치장에서 며칠을 보낸 후의 지금 ‘폭력시위’를 주된 근거로 내세운 검찰의 두 번째 구속영장도 기각되어 이렇게 편안한-그러나 다소 엄숙한 마음으로 편지를 띄웁니다.
저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소중히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사회의 가장 억압받고 차별받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절박함을 호소하여 그 여론을 형성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회시위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국가권력에 의해 금지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 집시법은 정부의 자의적인 행정 권력을 허가제로 남용하여 정치적 입장이 다른 소수의 의사표시를 금지하는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의 집회시위가 평화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의 우려가 있다는 자의적인 판단을 이유로 모든 반FTA 집회를 금지하면서 일제 불심검문을 하고 플래카드를 빼앗고 구호를 외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전체주의 독재국가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인권의 관점에서 그러한 국가권력의 행사에 대해 그 정당성을 묻고자 했습니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억압하는 정치공동체의 권력행사의 부당함을 비판하고 알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인간의 존엄성이 극도로 짓밟히는 현실에 있습니다.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고 소박한 집 한 칸에서도 살아갈 수 없는 철거민들은 이 추운 날에도 용역철거반들과 칼부림을 해야 하고 만성질병을 치료해야 하는 사람들은 한 달에 몇 천만원을 마련해야 약을 먹을 수 있고 그것도 여의치 않아 집을 팔고 가족을 팔아 마침내 자살을 결심하게 됩니다. 공장노동자들은 사내하청의 비정규직으로 전환되어 쇳가루가 날리는 작업장에서 밥을 먹고 바로 누울 공간도 갖지 못하는, 근로기준법 자체도 무시되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을 해야 하고 지하철을 오르내리며 청소를 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는 용역회사에 임금마저 강탈당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공역사를 배회하는 노숙인은 동사로 죽기라도 하면 손수레에 짐짝처럼 실려 으슥한 곳에 내버려지고 있습니다. 한미 FTA가 체결이 된다면 이러한 반인권적인 절망감은 깊어만 갈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물질적 정신적 생산물이 필요에 의해 생산되고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교역을 통해 돈을 모을 수만 있다면 인간의 노동력과 삶 자체도 내던져질 수 있다는 비인간적인 전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에 재학하면서 인간과 사회를 공부하는 지식인이라면 사회구조의 그릇된 운영에 대해 비판의 관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구조의 권력관계에 대해 비판을 할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를 썩은 물이 고이지 않고 건강하고 역동적인 사회를 만들어 가는 길이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의 밝음에 역행하여 현 정부의 한미FTA 추진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우리의 삶을 황폐화 시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비판의 목소리를 정치적인 이유로 금지하는 현 실태가 인간의 기본적 권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국가 행정 권력이 자의적인 법 집행의 남용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는 저의 정당한 목소리를 앞으로의 재판과정을 통해 주장하고 싶습니다. 군인인 전의경을 앞세워 날이 선 방패로 위협을 하고 진압하는 것은 ‘폭력 그 자체‘이며 한미 FTA 추진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은폐된 ‘폭력의 본질’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폭력에 반대하는 집회시위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억압하는 반인권적인 권력행사라는 것을 재판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재판과정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위하는 저의 비판의식을 성찰하고 발전시키는 기회로 삼고 싶습니다. 제 안에서 조금씩 자라는 인권감수성을 아름답게 꽃피우고 그 맑은 향기를 어두워진 우리의 삶에 퍼뜨릴 수 있는 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자 합니다. 바로 지금의 여러분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