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에게

엊그제 비가 오더니 기온이 훅 떨어졌네. 금세 추워질 분위기라 벌써 걱정이 돼. 문득 그대가 회사에서 가져다준 옷도 떠오르네. 덕분에 작년 겨울 따뜻하게 보냈거든. 뭐 그래서 편지를 띄우는 건 아니고~ ^^;;; 9월에 떠들썩했던 ‘노동개혁’ 관련 소식들을 접하며 지난여름 그대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났어.

그대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 취직한 게 벌써 사오 년 됐나? 출퇴근에만 네 시간 이상을 써야 하는 거리라 걱정이 앞섰는데. 월급이 유난히 많은 것도 아니고 일이 수월하거나 시간이 여유롭다거나 한 것도 아닌데,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나 보다 짐작하며 나는 할 말을 못 찾았던 것 같아. 몸이 힘들 텐데 건강 잘 챙기라는 말밖에 건넬 수가 없었지. 토요일마다 출근해야 한다는 말에 너무하다며 괜히 내 입술이 비죽 나왔던 기억도 나네.

회사나 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번 여름에 처음 들은 것 같아. 의류 유통업체라고만 알았는데, 하청업체에 생산을 외주로 주고 판매를 직접 하는 거면 큰 회사잖아! 디자이너까지 고용하고 있다는 말도 놀라웠어. 그런데 20대 중반의 디자이너는 저녁에 제대로 퇴근해본 적도 없다며? 그렇게 일해도 월급이 최저임금 수준이면, 분명히 따져서 더 받아야 할 돈이 있을 텐데. 그때 내가 아마 초과근로수당에 대해 말했지. 챙겨서 받아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근로기준법? 그런 건 아무 쓸모 없어.” 당신은 단호하게 잘라 말했지. 몰라서 못 받는 게 아니라 알아도 못 받는 거라고. 사장한테 권리를 요구한다는 건, 그것이 법이 보장한 권리라고 해도, 잘릴 각오를 요구할 뿐이라고.

작년이었나? 토요일에 안 나가게 됐다는 얘기 들었을 때 정말 기뻤어. 매주 토요일 출근해야 할 때는 만나기도 어려웠잖아. 평일은 불가능하고, 일주일에 하루 쉬는 것조차 포기하면 피로를 감당할 수가 없으니 말이야. 그런데 사장한테 그 말을 꺼낼 때 당신 마음이 어땠는지는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어. 토요일엔 힘들어서 출근 못 하겠다고, 월급도 줄어들면 어렵다고, 사장 앞에서 입을 뗄 때, 아니 입을 열기 전 그대는 어떤 고민들을 했을까. 어떤 마음을 먹었든, 말 한마디씩에 천근 같은 삶의 무게가 실려 심장이 쿵쾅대지 않았을까. 어쩌면 디자이너가 아무 말 못 하는 이유나, 당신이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같은지도 모르겠어.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까.

고용노동부는 텔레비전 광고뿐만 아니라 각종 수단을 동원해 ‘노동개혁’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더군.“우리 딸과 아들의 일자리”를 위한 선택이고, 더 어려운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거나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이라고 강조하더라. 내용을 까보면 나이 든 사람들 임금을 줄이고, 해고를 손쉽게 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고, 기간제나 파견 같은 비정규직을 더욱 확대할 수 있게 한다는 등의 내용이야. 도대체 뭐가 나아지는 건지 알 수가 없어. 정부가 걱정해주는 듯 내세우는 사람들은 이미 그곳에 있고 그래서 갈수록 먹고살기 어려워지는 건데.

임금 챙겨주면서 정년도 지켜주려니 청년 고용이 어렵다는 선전을 하지만, 중소영세사업장들이 밀집한 공단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이미 ‘임금피크’가 있어. 40대를 지나면 임금수준이 다시 낮아지지. 파견업종이 제한되어 있다지만, 6개월 미만은 자유롭다는 법의 아량을 무기로, 6개월마다 파견업체 이름만 바꾸는 노동자들이 공단을 지키고 있어. 일감이 없으니 그만 나오라거나, 무턱대고 오늘부터 출근하지 말라면, 당장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처지가 될 뿐이지. 해고로부터 보호한다는 법은 이미 넝마 같아서, 누군가 부당하게 해고를 당해도 그걸 걸쳐 입을 생각보다는 얼른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궁리를 해야 하니.

고용노동부의 홍보사이트를 들어가 봤더니 ‘능력과 성과’ 중심의 노동시장을 만들어 기회를 창출하겠다고 떠들썩하더라. 뒤집어 말하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거나 낮은 임금을 받거나 해고되는 모든 이유가 ‘능력과 성과’가 부족한 개인의 책임이 되는 거겠지. 일터에서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기 위해 그/녀의 ‘능력과 성과’를 깎아내리는 모욕이 횡행할 테고. ‘소수자’들은 수많은 차별의 이름에 이제 ‘무능력’이라는 낙인까지 얻게 되겠지. 그대가 사장한테 말을 꺼낼 때 근로기준법은 아무런 의지가 되지 않았겠지만, 일을 꼼꼼하게 한다는 자신감은 그나마 든든한 ‘빽’이었을 거야. 정부는 이제 그것마저 무너뜨리겠다는 것 아닐까?

정부가 목표로 삼은 곳에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말은,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 적었다는 말이기도 하겠지. 해고를 당했을 때 부당해고구제신청이라도 해보거나, 불법파견이나 사내하청 문제로 법원까지 가보거나, 정년이 되기 전 그만둘 때 ‘희망퇴직’이라는 기회라도 잡아보거나, 임금을 얼마로 할지 ‘협상’이라도 해보거나, 그나마 다른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사람들. 정부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은 권리를 누리고 있다며 문제시하고 있어. 그/녀들의 권리가 줄어드는 만큼 더 어려운 사람들의 권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선전하지.

하지만 누군가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언제나 권리 자체를 제한하는 술수일 뿐이라는 걸 우린 너무 많이 봐왔어. 인터넷 악플이 문제라 실명제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결국 모두의 자유로운 표현이 제한당했던 것처럼, 일부 과격시위가 문제라 집회시위 관리가 필요하다 했지만 모든 집회시위가 통제되는 것처럼. 정리해고제의 도입이 하청노동자들의 권리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조금 더 누리는 듯 보이는 사람들의 권리가 허물어질 때도 무너지는 건 권리 자체이고, 그래서 언제나 더 취약한 사람들이 더 많이 짓눌리지.

정부가 청년실업을 세대 간 갈등 문제로 몰아가며 부모 세대의 ‘양보’를 요구하는 동안, 기업주들은 ‘청년들의 눈높이’가 청년실업의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어. 첫 일자리가 조금은 안정적이길, 자립이 가능한 임금을 받을 수 있기를, 조금 멀어도 자신의 꿈을 실현해가는 길이길 바라는 게 너무 과한 욕심이라고 탓하는 사회야. 이런 사회가 과연 누구를 위하고 누구를 지켜줄 수 있을까? 정부는 노동조합이 너무 많은 요구를 한다고 비난하지만, 노동조합 같은 조직이 남아있어서 꿈이라도 허용되는 건 아닐까? 노동조합은 자신의 권리만 지켜왔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새겨놓은 권리들이 또 다른 누군가의 디딤돌이 되는 거니까 말이야.

말이 길어졌네. 정부 정책의 문제가 뭔지 설명하려던 게 아닌데. 이런저런 뉴스 보면서 그대가 떠오른 건, 이럴 때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뭔지 고민됐기 때문이야. 정부가 늘어놓는 거짓말이든 반대편에서 조목조목 따지는 항의든, 이미 권리와 너무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기대라도 안기고 있을까? 아들이 곧 대학을 졸업할 때가 돼서 걱정이 두 배가 됐을 텐데 그대는 뉴스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경우든 마땅한 일자리가 당장 생기는 것도 아닌데 먹고사는 건 눈앞에 닥친 일이니까.

얼마 전 책을 읽다가 이런 말을 봤어. 천 명이 하나씩 잃고 한 명이 천을 얻게 되는 수단이 있다면 한 명은 그 수단을 얻기 위해 뭐든 한다는 거야. 하나씩 잃는 천 명은 오히려 큰 관심을 두지 않으니 불평등은 더 커지는 역설. 경제단체들이나 정부가 ‘노동개혁’에 사활을 거는데 정작 일하는 사람들은 멀뚱멀뚱하게 되는 현실이 겹쳐 보이면서 막막해지기도 했어. 정부가 막무가내로 몰아붙이는 기세에 비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느끼는 변화는 사소할지도 몰라. 하지만 정부가 끝내 무너뜨리려는 것이 일하는 사람들이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이라면 그건 사소할 수 없지. 천 명이 잃는 하나가 ‘사람다움’이라면 그 하나하나는 사람의 전부잖아.

우리가 지켜야 하고 지킬 수 있는 건 일자리나 임금 자체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아. 누군가 부당해고에 맞서 싸울 때 그/녀가 지켜냈던 건 일자리 자체이기보다 ‘나 함부로 짤려도 되는 사람 아니야!’라는 자존감이지 않을까? 법이나 제도가 권리를 지켜줬던 것은 아니야. 권리를 지켜보려고 마음먹는 용기가, 그런 마음을 조금 더 수월하게 낼 수 있게 하는 조직이 권리를 지켜온 셈이지. 비정규직이라 조직을 만들기 어려운 게 아니라 조직이 없어서 비정규직이 되어가는 것처럼. 그래서 정부는 ‘과보호된 권리’를 공격하는 것처럼 말하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조직들을 공격하는 거겠지.

그대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우리가 지켜야 할 게 무엇인지 조금 더 투명하게 보이는 듯했어. 이미 멀리 있는 근로기준법이나 이런저런 제도도 아니고, 거기 적혀 있는 알량한 권리들과도 다른, 법이 정하는 권리에 갇혀서는 안 될 인간의 존엄, 그걸 더 봐야겠어. ‘노동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잃어갈 것이 무엇인지. 사람답게 사는 것에 대한 질문들. 그러고 보면 그대가 인권운동사랑방을 계속 후원하는 이유도, 내가 계속 활동하는 이유도 결국 그거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