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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한반도에서 자유권을 말하기 위하여

한반도인권 뉴스레터
16호 | 2009년 11월 6일
제목 부제목
자유로움의 권리

1948년 제정된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조항으로 시작된다. 인간다운 삶에 있어 자유란 매우 중요한 개념이며, 현재의 자유권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로운 권리를 갖는다는 추상적인 수준을 넘어서, 다양한 조건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을 갖추면서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자유권의 내용 각각을 개별적으로 분리하여 사고하게 되면, 인권의 본래 의미를 왜곡하게 된다. 전체 사회의 맥락을 세심하게 읽으면서, 인권의 불가분성, 인권의 상호의존성 등 인권의 성격을 놓치지 않고, 무엇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에 대한 보편적인 감수성을 가질 때, 자유권의 실현은 가능해진다.

그러나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대한민국(남한)은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을 뿐, 정작 진정으로 한반도에서 자유권을 실현하기 위한 관심과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양측 정부 모두 자유권의 본래 의미와 원칙들을 무시한 채, 개별 규정이나 특수한 사례들만으로 서로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자유권의 개념을 왜곡하게 되며, 이는 결국 남과 북에 살고 있는, 한반도 주민의 자유를 제약하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수십 년에 걸친 식민지배와 민족 간의 전쟁, 세계 유일의 분단상황, 최후의 냉전지대 등 매우 특수한 역사적, 정치적 상황을 가진 한반도에서 자유를 말하기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한반도에서 자유권을 말하기 위한 조건

자유에 대한 원칙이 필요하다

북한과 남한은 상대의 인권상황을 거론하면서, 개별 권리가 지향하는 인권적인 목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상대의 인권상황을 거론함으로써 서로의 인권발전에 발전적인 효과를 가져오기보다는 그저 비난의 결과로서 양측의 갈등만 고조된다. 이를테면, 논란이 되는 북한의 공개 처형 문제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한 탁상공론을 반복하게 만든다. 인권적인 입장에서 사형의 문제가 무엇인지, 또한 사형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의 문제는 무엇인지 날카롭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형제도의 완전한 폐지와 같은 인권의 원칙이 필요하다. 이미 국제적으로 잠정적 사형폐지국 대열에 들어선 남한에서의 사형재개 요구 문제 역시 이러한 원칙을 바탕에 두고 접근할 때 인권적인 해결 방향이 도출될 수 있다. 사형의 완전폐지와 같이 확고한 원칙이 없는 채로 서로의 상황을 비난하는 것은 인권을 핑계로 한 지엽적 정치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양심수 또는 정치범의 경우에 있어서도, 양심수와 정치범은 단 한 명도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인권적 원칙이 될 수 있다. 2008년 국제사면위원회 연례보고서가 남한에 대하여 "최소 8명의 양심수가 여전히 구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남한 법무부는 “이른바 양심수는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변명을 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소위 정치범수용소의 존재 유무와 수용소 내부에서의 가혹행위 등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되고 있다. 이런 문제들 역시 양심수와 정치범을 만들어서는 안되며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남북이 함께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상대의 인권문제와 함께 스스로의 인권문제를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남한과 북한은 서로의 인권상황에 대해서는 엄격한 비판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스스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관대하거나 심지어 왜곡, 은폐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은 “우리식 인권”이라는 표현으로 외부로부터 제기되는 문제제기들의 많은 부분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남한의 경우에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에서의 인권위 등급이 하향조정될 가능성이 있고 이미 국제적으로 남한의 인권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도, 정책기조나 국정운영의 방향을 수정할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남북 서로에 대한 문제제기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없고 서로의 문제제기가 갈등을 유발하게 될 뿐이다. 스스로의 인권문제를 성찰하는 가운데 상대방과 함께 인권의 실현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한반도인권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다른 인권과의 상호연관성을 고려해야 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인권’의 개념은 굉장히 다양하고 풍부하게 발전해가는 인권의 모습을 사실상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 개념이 ‘우리식’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권 영역과 시혜적 성격을 강조한 나머지 자유권 및 저항권, 발전권, 환경권 등 다양한 인권문제들을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 그에 비해 남한은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민주주의 형식이 갖추어진 것만 강조할 뿐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용산참사와 같이 그와 관련된 인권 현안은 무시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의 자주권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핵무기 개발을 이용하는 북한도, 북한의 인권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며 식량 및 비료 지원을 중단하는 남한도, 파편화되지 않은 인권, 인간답게 살기 위한 총체적인 조건으로서의 인권을 고민하여야 한다. 인권의 불가분성 혹은 상호연관성을 고려하지 않는 자유권 타령은 그저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한 비난에 불과하다.

대결구도를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남한과 북한정부가 국가안보와 공공질서 등을 근거로 인권을 침해하는 것에는 남북 서로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남한에서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는 오랫동안 북한의 존재 때문에 정당화되어왔다. 민주화나 인권을 위한 요구는 ‘빨갱이’로 몰아세우고 고문을 하는 방식으로 쉽게 제압할 수 있었고, 그러한 인권침해는 북한의 존재로 인해 정당화될 수 있었다. 지금도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그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에서도 ‘비사회주의그루빠검열’ 등을 통해서 인민을 처벌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은 북한사회가 인권적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행위이다. 특히 남북 서로를 빌미로 한 국민에 대한 광범위한 감시와 사찰은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상호체제와 이념을 존중하는 바탕에서 함께 인권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

남북관계에서 인권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권 향상에 대한 진정성이 필요하다. 정치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상대의 체제와 이념을 비난하는 것으로는 한반도 인민의 자유를 신장시킬 수 없다. 비록 북한이 국제인권레짐에 속해있더라도, 판이하게 다른 역사와 사회구조를 가진 서구 자유주의 사회에 적합하게 발전된 인권형식들까지 아무런 고민없이 강요할 수는 없으며, 거꾸로 사회주의 체제가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도 없다. 어떠한 국가도 인권의 문제에 있어서 완전한 국가가 없는 현실에서, 서로 다른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가진 두 나라가 서로의 체제와 이념을 존중하는 바탕에서 서로의 인권수준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지속할 때, 한반도에서 자유권은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인권상황을 돌아보고 함께 자유로워져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남과 북의 정부가 서로의 자유권 상황을 비난할수록 결국 한반도 주민의 자유권은 왜곡되고 축소된다. 이럴 때일수록 자유권이 등장해야만 했던 역사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유권은 국가안보, 사회질서, 체제 수호 등을 핑계삼아 국가가 저지르는 인권침해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소중한 권리개념이지, 국가들이 서로를 공격하기 위한 도구도 아니고, 국가가 ‘너희들의 자유는 여기까지다’라고 제한하기 위한 눈가림수도 아니다. 한반도에서 남북이 상대의 자유의 권리를 얘기하기에 앞서, 자유를 말하기 위해 필요한 인권의 조건들을 반드시 먼저 확인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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