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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국가보안법과 인터넷

국가보안법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쟁취한다는 것

국가보안법과 인터넷 ②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보안법의 양상

지난 민주당 정권 10년과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크게 달라짐에 따라 국가보안법의 작동양상도 많이 달라졌다. 양적인 증가는 물론이고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양상도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현황이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는데 30건에서 40여건 정도였던 노무현 정권과 달리 2008년 40건으로 시작해 2009년 70건, 2010년 151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특징적인 것은 사이버 사범의 확연한 증가인데, 2008년 이전 5건 안팎이던 수치가 09년 32건, 2010년 82건으로 크게 증가 했다.

전통적인 국가보안법의 처벌 대상이었던 통일운동 단체와 사회주의운동 단체의 국가보안법 사건이 역시 끊이지 않았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되어 국가변란을 선동한 혐의로 최근 유죄선고를 받았고, 이전 정부 시절 허가받은 민화협이나 통일연대 시절의 방북에 대해서도 다시금 들춰 국가보안법으로 기소하기도 하였다. 2008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추정되는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정보통신부가 삭제명령을 내리고 이에 응하지 않은 7개 단체대표에 대해 형사고발 했다. 지난해 7월에는 범청학련 남측본부 홈페이지가 폐쇄조치 되었고 이후 한총련 홈페이지도 폐쇄되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카페, 사이트 폐쇄, 게시물 삭제 건수가 2010년에는 8만 583건에 이를 정도였다.

이명박 정부는 전통적인 운동단체 외에도 사이버 상에서 북한 관련 게시물을 올리거나 생산하는 사람들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며 변화된 상황에 긴밀히 대응하고 있다.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와 같은 친북카페는 초강대국 미국에 맞서는 강한 국가인 북한에 호감을 갖고 이를 찬양하는 개인들의 모임이다. 조직된 단체가 아니라 할지라도 정부는 인터넷 상에서 개인들 사이에 북한에 대한 정보가 유통되는 것도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천암함 사건에 대해 평통사와 참여연대가 유엔에 정부 조사결과에 대한 의견서를 전달하자 정부는 이를 이적행위로 맹비난하고 검찰 기소를 검토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간첩 신고 포상금을 16년 만에 5배로 올리고, 탈북자의 합동신문기간을 최장 180일로 연장해 탈북자에 대한 잠재적 국가보안법 위반자 규정을 강화했다.

노무현 정부 때 국가보안법 입건자 수가 급감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갔던 국가보안법이 이명박 정부 들어 화려하게 등장했다. 사실 국가보안법은 지난 2004년 대대적인 폐지 논쟁 이후 잠깐 사그라진 것일 뿐 제정된 이후 63년 동안 건재했고 언제나 자신의 입법 목적을 잊은 적이 없었다.

반(反)공산주의-북한의 악마화

국가보안법은 국군 13연대가 1948년 11월 제주 4.3 사건을 진압하라는 국방부 장관의 명령을 거부하고 여수와 순천의 관공서를 점령한 사건을 계기로 제정된 법률이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여순사건을 계기로 남한 좌익세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여겨 형법이 제정되기도 전에 제헌의회에 요청하여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였다. 1953년 5월 전시중임에도 불구하고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는 형법 제정 이후 국회에 나와 국가보안법의 내용이 이미 형법에 대부분 포함되어 있으므로 폐지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형법에 그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유명무실하다면 그대로 둬도 무방하다는 논리에 밀려 존치되었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때는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반도에 각기 다른 체제를 표방하는 두 국가가 수립되는 시기였다. 국가수립과정이 민주적인 정치활동의 결과이기는커녕 수백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전쟁으로 마무리되면서 한반도에서 정치사상의 자유는 요원한 일이 되었다. 지난 63년 동안 굳건히 살아있는 국가보안법이 바로 그 증거이다. 즉 국가보안법에서 규정하는 ‘반국가단체’, ‘이적(利敵)규정’은 매우 구체적인 대상인 북한을 지칭하는 것이다. 엄청난 전쟁과 뒤이은 60여 년 간의 대치 상태 속에서 북한이 동등한 국가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반국가단체’, ‘적’으로 규정되는 게 더욱 자연스러운 역사적 경험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경험이 국가보안법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 수립기에 벌어진 치열한 정치투쟁은 결국 전쟁으로 파국을 맞고 말았지만, 해방 이후 한반도에 어떤 사회를 건설할 것인지를 두고 벌어진 것이었다. 당시 좌익과 우익의 대립, 남과 북의 대립은 여느 사회에서 벌어졌음직한 정치적 논쟁과 경합이었다. 바로 그 속에서 이승만 정권 이후 한국정부는 ‘자본주의 체제’, ‘자유민주주의 시장질서’를 ‘공산주의’, ‘사회주의’에 맞서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한 것이며, 형법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제정된 국가보안법이 그 핵심에 있어왔다. 결국 국가보안법은 자본주의 사회에 맞서 새로운 사회원리를 제시하고 운영되어왔던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반공'을 그 핵심 목표로 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반공’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반북’을 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은 적으로 규정한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고, 악마화된 북한에 대한 이미지와 정보들을 계속해서 생산하도록 강제한다. 일말의 긍정적인 평가조차도 찬양과 고무가 되어 처벌받는 상황, 일체의 소통이나 교류조차 불법이 되는 상황은 북한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와 논의를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계속된 고립으로 피폐해진 북한 경제, 3대에 걸친 세습독재, 여러 자유권 영역의 제약과 같은 최소한의 정보 이상이 없는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은 자본주의 사회에 맞선 새로운 사회로서 공산주의를 떠올리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설령 북한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직접 거론하지 않더라도 민간이 중심이 된 남북교류, 통일운동은 가혹한 탄압을 받아왔다. 정부가 아닌 민간이 직접 북한과 만난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급증하고 있는 사이버 상의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의 경우 반자본주의나 공산주의 사상이 아닌 미국에 맞서는 ‘강한 국가’로서 북한에 매료된 이들이지만 이 역시 처벌되고 있다. 친북/반북, 좌파/우파를 막론하고 한국사회에서 북한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국가보안법 63년이 만들어낸 한국사회의 모습이다.

자본주의 체제수호-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수호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존립 ․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는 것을 자기 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언뜻 보면 추상적이고 평범한 국가보안법의 목적은 역사적 태생과 구체적 적용대상이 북한을 비롯한 공산주의 박멸에 있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즉 자본주의 체제 수호를 달리 표현한 것일 뿐이다. 특히 국가보안법은 1961년에 제정된 반공법과 그 목적이 유사하고 중복된 조항이 많아 1980년에 통합된다. 1980년 통합개정 당시 공산계열의 활동단체를 반국가단체 규정에 명문화하였고, 이는 1991년 사회주의권 붕괴로 삭제된다.

사회주의 국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지목하고 그와 연관된 모든 활동을 불법화하는 것이 국가보안법의 제 1의 목표라면, ‘자유민주질서 수호’를 내걸고 북한과 관련을 맺지 않는 사회주의계열, 사회변혁지향 활동단체를 탄압하는 것 또한 목표로 하고 있다. 얼마 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역시 반북적인 색깔을 강하게 띠었으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 한 단체 활동에 해당되어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 동안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을 벌여 왔던 많은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이 북한과 명확히 연결된 사안이 아님에도 국가변란목적, 자유민주질서 수호와 같은 모호한 규정에 따라 사회비판세력, 운동세력을 탄압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음을 지적하고 투쟁해왔다. 그 결과 91년 개정 당시 국가보안법의 적용을 최소화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적용을 최소화한다는 것이 결코 국가변란목적이나 자유민주질서 수호와 같은 법의 목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이 반공법과 통합되었다는 사실은 결국 사회체제변혁을 지향하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계열의 운동을 탄압하는 속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후 공산계열단체라는 단어가 삭제되고 국가변란을 선동하거나 자유민주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단체로 대체되면서 그 적용범위는 더 광범위해졌다.

국가보안법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쟁취한다는 것

그 동안 국가보안법에 의해 탄압을 받아왔던 사람들의 활동을 크게 통일운동, 사회주의운동, 명시적인 친북활동으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서로의 활동을 매우 상이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모두 국가보안법에 의해 탄압받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국가보안법이 핵심으로 삼고 있는 ‘반공’ ‘반사회주의’ 목표에 따라 사회주의 정치활동,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 도움이 되거나 찬양하는 행위 등을 탄압한 것이다. 또한 민주화운동을 비롯한 반(反)정권 투쟁 역시 국가보안법에 의해 탄압을 받아왔다.

사실 사회체제변혁을 목표로 하는 사회주의 운동과 민주화운동, 반(反)정권 투쟁을 가르는 분명한 선이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반(反)정권 투쟁이 일정 수위를 넘어가면 정권은 언제나 빨갱이, 종북좌파 색깔을 입히며 국가보안법의 위력을 십분 활용해 사회운동을 분리시키려 한다. 또한 사회주의 운동이 아무리 반북을 표방하더라도 사람들이 보기에는 ‘북한’과 별로 구분되지 않는다. 아무리 새로운 사회주의, 21세기 사회주의를 이야기한다 한들, 한국사회에서는 북한을 악마화해 국가보안법이 만들어 온 ‘반공’, ‘반사회주의’를 우회할 수 없다.

억압, 차별, 착취에 시달리던 이들이 집단적인 정치운동을 통해 권리를 쟁취하고 사회적 관계를 민주적으로 구성해내는 과정을 우리는 때로는 민주화운동으로, 혁명으로, 사회주의로, 공산주의로 불러왔다. 그런 역동적 운동들이 지난 20세기 한반도에서 격렬하게 일어났다. 4.19 혁명,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통해 이뤄낸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했다. 많은 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되기는커녕, 변화된 시대에 맞춰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2011년, 국가보안법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쟁취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유엔에서도 권고했듯이 국가보안법 폐지하라고, 민주주의 사회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외치면 충분할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가보안법은 모든 표현을 가로막지 않는다. 국가보안법은 체제를 넘어서고자 하는 사상과 운동의 자유를 금지할 뿐이다. 북한이 한국사회에서 누구도 접근해서는 안 될 ‘악마’가 되어버린 이유는 그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회주의를 비롯한 체제 변혁적 사상이 금기시되었다. 북한과의 제한 없는 교류와 소통을 통해 북한에 대한 이해와 평가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 체제 변혁을 꿈꾸는 사상과 운동에 정당한 자리를 돌려주는 것이 국가보안법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쟁취하는 길이다.
덧붙임

선영․정록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