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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기억하는 4.16] 진실과 정의, 표현과 행동

인권선언 풀뿌리토론 결과를 살피다③

[편집인 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약속은 참사 당일에 벌어진 일을 복기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4.16연대는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을 추진하며 인권으로 4.16을 기억해보자고 제안한다. 기억은 행동이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는 열망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행동이 되어야 한다. <인권오름>과 <프레시안>에 매주 공동 게재되는 연재기사가 하나의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 4.16인권선언 2차 전체회의가 11월 28일(토)로 다가왔다. 함께 선언하기 위해 그동안 다양한 곳에서 진행된 풀뿌리토론의 결과를 살피고자 한다. 4.16인권선언제정특별위원회(4.16연대 산하 특별기구)가 정리한 풀뿌리토론 결과 보고서를 네 개의 기사로 나누어 게재한다.

진실과 정의에 대한 권리

진실
진실에 대한 권리는 정보에 접근할 권리나 사실을 알 권리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포괄적인 의미에서 진실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진실을 알 수 없는 것 자체가 피해를 낳으며, 왜곡된 프레임에 시민들이 갇히게 되는 등의 문제를 지적하거나 진실을 보상과 거래하려던 정부, 자료 제출도 거부하며 진실을 은폐하려는 정부의 모습을 비판하며 진실에 대한 권리를 제안했다.
풀뿌리토론 참여자들은 진실이 피해자를 포함해 우리를 위로하고 서로 믿게 하며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라고 짚기도 했다. 알 권리가 강조되다 보니 ‘비밀 없는 사회’와 같은 제안 내용도 있었다. 표현상으로는 프라이버시와 대립될 수 있지만 맥락을 살피면 공공의 것,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포함한 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것 등에 대한 알 권리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진실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법제도와 같은 시스템 마련을 고민하는 참여자도 있었고, 우리의 집단적 힘이나 자신감을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인권선언 추진단 중 다른 참사의 유가족이기도 한 참여자는 “유족들이 알고 있는 진실을 역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진실’은 어떤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사실들로 구성된 사건의 해석 또는 사건에 접근하는 관점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언론
세월호 참사 당일 언론의 오보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중대한 사건이다. 그 후로도 꾸준히 행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언론 보도만으로 주변 사람들이 피해자나 함께 하는 시민들에 대한 왜곡된 판단을 하는 상황을 많이 접했다. 폭력적인 사람으로 매도되지 않을 권리와 같은 제안이 있었던 이유도 그것이다. 진실에 대한 권리를 말하며 언론을 콕 집어서 제안한 내용들이 많아 따로 묶었다.
언론을 통해 진실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언론의 독립성을 주장하거나 정확한 보도를 요구할 권리 등이 제안되었다. 근대 인권규범은 ‘언론의 자유’를 중심으로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언론의 기능을 지키는 데에 주목했다. 그러나 풀뿌리토론 참여자들은 언론의 보도를 수용하는 객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언론을 가질 권리’ 등 알 권리의 주체로서 언론과 관련된 내용들을 제안했다. 언론은 진실이나 소통, 표현의 자유와 연관된 맥락에서 제안되었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
비슷한 맥락에서 거짓 보도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거나 언론에 대한 일정한 통제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대가 높았다. 언론을 감시할 권리, 언론사 사장을 소환/평가/선출할 권리, 피해자 보호를 위한 언론 관련 법제도 개혁 등이 그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언론이 거대권력기구 중 하나가 되었지만 그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을 지지 못하는 현실을 비춰볼 수 있다. 언론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고민과, 시청 거부 등의 집단행동도 제안되었다.

책임
‘책임’, ‘처벌’에 대한 제안들을 모았다. 책임을 밝혀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제안뿐만 아니라, 권력이 클수록 책임도 크게 져야 한다는 등 책임에 대한 주장이 많았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고 꼬리자르기 식 재판결과만 나오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처벌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의견들은 ‘사과 받을 권리’와 같은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사건에 대해 정부나 그 외 책임 주체들이 충분히 책임지지 않은 현실의 이면이다. 이럴 때에는 누구도 온전하고 진정한 사과를 받았다고 느낄 수 없다.
진실에 대한 권리와 더불어, 마땅한 책임을 물을 권리가 짚어졌다는 점은 중요하다. 진실에 대한 권리는 책임을 밝히고 적절한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이것은 ‘피해자의 권리’의 중요 요소이며 정의를 위한 권리이기도 하다. 풀뿌리토론 중에는 처벌 자체만 얘기될 때 공허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책임에 관한 제안들을 모아보면 ‘불처벌’이 재발방지를 위한 변화를 가로막으며 다양한 권리 침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책임을 물을 권리는 사법부를 통한 법적 처벌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시사한다. 책임을 묻기 위한 사회적 모색과 행동이 펼쳐질 필요가 있겠다. 한편, 풀뿌리토론의 첫 번째 질문에서 미안함, 책임감, 죄책감과 같은 마음을 나눈 이야기들이 적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세 번째 질문에서의 ‘책임’은 아주 일반적인 말이기보다 권력을 가진 개인이나 조직의 책임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제안 중에는 누군가 위험에 처했을 때 그걸 도와주지 않는 시민의 책임을 말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논의가 활성화되지는 않았다.


표현과 행동에 관한 권리

애도
희생자를 기리는 사회적 행동으로서 표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내용들이 ‘애도할 권리’ 등으로 제안되었다. 특히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닐 때의 경험과 연관지어 설명된 것이 많았다.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추모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들이 있었다. 애도할 권리는 주로 표현과 연관지어 설명된 것들이 많았으나 추모나 애도는 사회공동체의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들이 지적되었다. ‘추모’와 ‘애도’는 내용상 뚜렷하게 구분되어 사용되지는 않았다.

표현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말하고 소통할 권리, 들릴 권리 등에 대한 많은 제안들이 모였다. 사건 초기부터 정부는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훼손을 들먹이며 자유로운 표현을 막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표현의 자유 제안 중에는 ‘표현의 자유’가 그저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할 권리 이상임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는 내용들도 있다.
의견을 말하는 것은 누군가 들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누군가 말할 때 들려야 하고 들어야 한다거나 소통할 권리를 제안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의 본질을 드러낸다. ‘공감을 조직할 권리’ 제안이 이런 문제의식을 함축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사람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을 권리이기도 한 것이다.
서툴러도 말할 수 있는 권리, 나이,성별,직급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이야기할 권리, 학교에서 마음 놓고 말할 권리 등의 제안에서는 일상에서의 위계 또는 권력관계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제약되는 현실이 보인다. 소수자의 의견을 들어줄 권리와 같이 비차별의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제안들이 있다. 한편, ‘종북’이라는 딱지가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어떤 사상이든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어떤 의견이든 부당한 공격을 받지 않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한국사회의 현실이 드러난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조건도 필요하다. 토론을 위해 시간,돈,정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나 ‘말할 수 있는 언어를 획득할 권리’와 같은 제안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가 표현의 자유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표현의 자유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현실이다 보니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대신 표현할 것들도 적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표현의 자유가 개인의 자유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집단적 권리이기도 함을 짚어볼 수 있다.

혐오
혐오 받지 않을 권리, 혐오에 대응할 수 있는 권리 등이 제안되었다. 제안된 내용은 대부분 혐오 표현이나 행동을 규제하는 등의 조치에 대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혐오가 주로 표현의 자유와의 긴장을 통해 쟁점화된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전쟁과 혐오를 선동하는 표현은 제한되어야 한다는 인권의 원칙은 분명하지만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도 미진하고 실질적인 제도도 갖추고 있지 못해 내용이 구체적이지는 않은 편이었다.
풀뿌리토론의 두 번째 질문에서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혐오세력’의 온-오프라인 행동의 심각함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에 비하면 세 번째 질문에서 ‘혐오’를 특정한 내용의 권리 제안은 적었다. 혐오는 극단적인 표현이나 행동에 한정되지 않는 문제다. 세월호 참사의 경험을 돌아보더라도 여러 매체를 통해 ‘점잖은’ 말들로 참사 피해자들을 매도하거나 공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피해자의 인정과 존중, 비차별과 평등의 원칙을 바탕으로 전 사회적인 변화가 필요한 사안이기도 하다.

행동
집회시위의 자유 등 모이고 행동할 권리가 다양하게 제안되었다. 대체로 평화적 집회시위를 보장받고 공권력 남용으로부터 자유로운 집회시위를 보장받을 권리에 대한 내용들이다. 탄압받지 않고 집회 시위할 권리, 청와대 앞에서 집회할 권리, 캡사이신에 망가진 핸드폰 수리 요구할 권리, 꽃을 선물할 권리, 거리에 모여 주장할 수 있는 권리 등 구체적인 표현이 많았다. 또한 ‘경찰도 원치 않는 집회 단속 안할 권리’ 등 집회시위 탄압이 경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짚은 내용도 있었다.
집회나 시위가 대부분의 풀뿌리토론 참여자들이 함께 한 경험이자 직접적으로 탄압받았던 권리라는 측면에서 행동의 대부분은 집회시위를 통해 설명되지만 집회시위에 한정되지 않는 이야기들도 적지 않았다. 상처받은 사람들과 함께 행동할 권리, 가만히 있지 않을 권리, 장소를 점거할 권리, 끝까지 외칠 권리 등이 그것이다. 또한 다양한 행동이 평등한 투쟁으로 지지받을 권리라는 제안도 있었다.

기억
온전하게 기억할 권리, 잊히지 않을 권리 등의 제안들이 있었다. 기억은 역사화될 권리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후세대에 전하기 위한 추모 공간 마련과 같은 제안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니 잊혀서는 안 된다’는 맥락에서 기억할 권리를 말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제대로 기억하고 역사화하는 공통의 경험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