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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기억하는 4.16] 세월호 피해자의 권리

[편집인 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약속은 참사 당일에 벌어진 일을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존엄과안전위원회'는 우리의 삶에서 이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참사에 직면하자고 제안한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열망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할 때 사회를 바꿀 힘이 된다. 매주 <인권오름>에 실릴 글이 질문을 함께 품는 과정이 되기를 바란다.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은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애도의 정치

세월호 참사 이후에 시민들은 세월호에 죽게 내버려진 사람들을 떠올릴 때마다 국가를 곱씹기 시작하였다. 세월호 참사는 유족들만의 불운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사태임을 즉각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민들은 감성적으로든 이성적으로든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인간의 비참한 운명과 연대를 이룸으로써 악몽 같은 삶의 허망함을 퇴치하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사람이 죽어가는 장면 앞에서 수수방관에 대한 죄책감과 피해자로서의 분노가 지난 1년을 버티게 해온 자양분이었다. 바로 며칠 전 세월호 침몰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구조활동에 나섰던 한 분이 자해를 시도했다는 기사를 통해 참사가 남긴 깊은 상처를 가늠해본다.
권력과 그 동지인 언론들은 유족들을 고립시키고 시민들의 분노를 적당히 사사화(私事化)하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우리는 정치화를 통해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유족의 감정까지도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인간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으면 깊은 슬픔을 느끼며 때로는 우울증에서 빠진다. 그런데 문제의 죽음이 국가폭력에 의한 죽임이라면, 그리고 이번 참사와 같은 황당한 죽음이라면 슬픔과 우울은 극단적으로 증폭되게 마련이다. 솔직히 이러한 슬픔과 우울증은 세상의 말처럼 과연 ‘치유’되기나 하는 건지 커다란 의문을 갖게 된다. 그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감정도 지치거나 누그러지는 게 아닐까. 슬픔의 감정은 무단히 발생한 것이 아니므로 무단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것이 감정의 법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의 법칙을 이해하고 슬픔과 우울증을 완화시킬 수 있는 공적인 처방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제 시민들은 유족의 슬픔에 공감하는 일을 넘어서 적극적 행위주체로서 세월호 희생자를 사회적 가슴에 묻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 사회적 가슴에 매장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를 소거하는 것이 아니라 흔적을 우리의 일상에 명료하게 새기는 일이다.

세월호 특별법

세월호 유족들의 절박한 분노는 2014년의 정치에서 핵심적인 동력원이었다. 처음부터 망각과 축소의 정치를 추구하는 정부 당국에 맞서 유족들이 이끈 애도의 정치가 그나마 현재의 특별법 국면을 탄생시켰다. 물론 이 과정에서 수백만의 시민은 유족의 슬픔에 공감하며 특별법의 제정운동에 동참하였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어떠한 정부기관도 신뢰와 자격을 확보하지 못하였기에 정부의 조직 바깥에서 문제해결장치를 새롭게 출범시키는 것이 불가피했다. 국가의 총체적 무기력과 작동불능의 사태를 진단하고 처방을 내놓은 일은 정부 당국이 아니라 시민의 몫일 수밖에 없다.
국가는 시민들에게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약속하고 그 보장의 조건 위에서 권위, 폭력, 재정을 사용할 권한을 독점적으로 보유한다. 실제로 제대로 된 국가에서라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설혹 그러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방안이 강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중계를 통해서 보았듯이 국가권력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함으로써 이른바 ‘교통사고’를 대량참사로 바꿔놓았다. 국가권력은 그 주인인 시민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모욕감을 안겨주었다. 우연을 기필코 운명으로 방치하는 국가를 재구성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애도의 작업이 되었다. 세월호 특별법은 그 미진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데, 제도권이 해결하지 못한다면 기성의 제도를 대신하는 제도를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세계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파멸을 막아왔다. 이제 과업은 이 법률에 근거해서 참사를 낳았던 원인들을 규명하고 시정하여 2014년 4월 16일을 기점으로 삶을 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형사법정 조차 다루지 못했던 참사의 암흑을 밝히고 진실의 층위들을 찬찬히 해부하고 종합함으로써 시민의 행복하고 안전한 삶에 대한 비전과 방침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희생자들을 위한 정치적 애도를 완결짓는 작업이다.

피해자의 참여권

어쨌든 이 맥락에서 세월호 유족들의 권리를 되짚어 보자. 회복적 정의의 주창자였던 크리스티(Christie)는 ‘재산으로서의 갈등(conflicts as property)’에서 피해자의 참여권을 피해자의 근본적 권리로 제시하였다. 회복적 정의는 처벌을 위주로 하는 응보적 정의에 대비되는 관념으로서 가해자, 피해자, 공동체간의 관계회복을 중시한다. 회복적 정의는 원래 비행청소년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각광을 받다가 형사범죄 일반에 대한 대책으로 확장되었고, 특히 남아공진실화해위원회를 매개로 화해의 사상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크리스티가 말한 ‘재산으로서의 갈등’은 모든 갈등이 되돌아보면 사회발전에 기여한다거나 그래서 돈이 된다는 천박한 창조경제적 사고가 아니다.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범죄사건 자체에 대한 참여와 발언의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소중한 가족의 상실로 인한 피해자의 원래의 고통과 사법절차의 국가독점현상에 따른 피해자의 소외를 극복하려는 피해자 중심적 정의 관념이다. 어쩌면 이는 피해자의 인정투쟁의 법적 표현이기도 하다. 피해자를 우울증적 상태로 방치하지 않고 피해자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회복시키는 시각이다. 이는 근대적인 분쟁해결절차가 내포한 병리적 괴리 상태를 시정하고자 원주민의 전통적인 재판의 지혜를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피해자의 권리가 법의 세계에서 등장한지도 오래되었다. 형사피해자의 법정진술권을 인정한 1987년 헌법도 피해자의 권리를 초보적으로 반영한 실례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세월호 유족과 피해자들에게 근본적인 권리가 있다는 사실은 책임 논의의 출발점이다. 물론 이 말이 유족들이 이 사건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생명, 인권, 안전의 강화라는 취지에서 유족들에게 권한과 책무로서 피해자의 권리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세월호 참사에서는 크리스티의 주장이 미처 해결하지 못하는 심각한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세월호 참사 자체에 심각한 국가책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국가책임이 분명한 참사라면 정부 당국은 분쟁을 공정하게 판단할 자격이 없게 된다. 그래서 정부와 여당은 세월호 참사 앞에서 자리를 비워두었어야 했다. 그러나 며칠 전에 나온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은 국가의 잘못으로 인해 국가가 시민들에게 양도하였던 권한을 재탈환함으로써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사실상 공동화하였다. 이러한 방침은 회복적 정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고, 다시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정부 당국이 또 한 번의 상실감을 피해자들에게 부가하였다.

진실에 대한 권리

세월호 유족들의 권리를 짚어보는데 국제사회가 정립한 원칙들을 참조할 수 있다. 국제사회는 국가폭력의 불처벌에 대한 투쟁원칙과 피해자의 권리를 중요한 인권의 문제로 발전시켜 왔다. 유엔총회가 2005년에 채택한 <인권피해자 권리장전(A/60/509/Add.1)>은 그 완결판이다. 반 보벤-바시오우니 원칙이라고 불리는 이 원칙은 종래 갈등중심적인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법의 영역에 피해자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2005년 유엔인권이사회가 채택한 <불처벌 투쟁원칙(E/CN.4/2005/102/Add.1)>도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의 권리를 유추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다. 인권피해자 권리장전과 투쟁원칙은 진실에 대한 권리, 책임자의 처벌을 포함해 재판받을 권리, 배상에 관한 권리를 주요한 권리로 상정하고 세밀하게 부연하고 있다.
<불처벌 투쟁원칙>은 진실에 대한 권리를 특징적으로 제시하였다. 첫째로, 모든 국민은 인권침해가 야기된 상황과 이유를 포함해 진실에 대한 불가양의 알 권리를 가지며, 이러한 권리의 완전한 행사만이 인권침해의 재발을 방지한다고 천명한다. 둘째로, 국가는 인권침해와 관련된 기록과 증거를 보존할 의무를 지며, 집단적 기억이 멸실되지 않도록 수정주의나 부인주의 주장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고 천명한다. 셋째로, 피해자와 그 가족은 피해자의 운명에 관한 진실을 알 권리를 가진다고 밝히고 있다. 국민의 진실에 대한 권리가 피해자의 진실에 대한 권리보다 우선 언급된 점은 주목해야 한다. 어쩌면 진실에 대한 권리는 대체로 진실을 기억할 시민의 의무와 불처벌을 타파하기 위한 시민의 민주적 활동성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미주인권위원회나 미주인권법원도 중요한 인권침해사건에서 진실에 대한 권리가 피해자나 희생자의 가족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 민주사회나 국민이 보유한다고 밝혔다. 실종자의 운명, 사고원인에 대한 알 권리와 선박인양을 요구할 권리는 진실에 대한 권리에 속한다. 진실에 대한 권리는 좁게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게 된 배경이나 이유, 운행사업체와 운행자의 책임요소들, 관할 국가기관의 권한과 조처, 사후대책이나 구조업무 추진실태 등에 미칠 것이다. 공정한 조사위원회의 조사활동을 통해 규명된 진실에 따라 형사책임이나 징계책임이 추궁되어야 할 것이다.
<인권피해자 권리장전>은 중대한 인권침해의 피해자에게 다각도의 배상책을 제시한다. 권리장전은 원상회복이나 금전배상 이외에도 재활치료, 만족, 재발방지의 보증 등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만족과 재발방지의 보증은 피해자나 가족뿐만 아니라 일반대중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인권침해를 낳은 관행, 의식, 제도를 타파하고, 새롭게 인권교육을 시행하고, 공직자․군․경․언론인․의료인 등에게 인권법의 교육이나 책임의식의 강화교육을 포함하고 있다. 미래의 안전한 삶을 형성하는 것만이 세월호 참사에서 정치적이고 사회적 배상이다. 인간의 안전과 생명을 경시하는 온갖 이윤, 권력, 체제의 논리와 투쟁해야 하고, 인간의 생명에 대한 위험을 정의하는 권력을 신자유주의적인 기업가나 그의 벗들인 관료층, 정치계급에서 시민이 되찾아 와야 한다. 위험을 정의하는 권력을 시민이 회복하는 것이 바로 재발방지의 보증이다. 민주적이라면, 법제와 관행이 안고 있는 위험을 드러내고 제도정치에 반영시키는 노상의회로서 시민의 위험의회를 건설할 수도 있고, 타협적이라고 하더라도 ‘위험옴부즈만’같은 선출직 공직자를 세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참고>
김종곤, 세월호 트라우마와 죽은 자와의 연대, 진보평론, 61호(2014년 가을호), 71-88쪽.
이재승, 화해의 문법-시민정치가 희망이다, 김동춘/김명희(외), 트라우마로 읽은 대한민국, 역사비평사, 2014, 165-190쪽.
정원옥, 세월호 참사의 충격과 애도의 정치, 문화/과학, 79호(2014년 가을호), 48-66쪽.
Nils Christie, Conflicts as Property, The British Journal of Criminology Vol.17(1977), 1-15쪽.


덧붙임

이재승 님은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