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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3월 대선개표방송 때 잠 못 이룬 사람? 접니다....

첫 월레토론 후기

인권으로 읽는 세상을 중단하고 내부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10월 4일 내부 월례토론을 진행했습니다. 첫 월례토론 주제는 ‘위기의 시대와 윤석열 정부, 우리는’이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지 100일 정도 앞두고 고민점을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민선활동가의 제안이었습니다. 저는 3월 대선 개표방송 때도 어이없음과 분노에 잠을 이루지도 못했습니다. 윤석열 당선 이후, 분노, 혼란, 어이없음 등등의 감정이 들 때가 많았고, 이런 마음을 잘 정리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자원해서 월례토론 준비팀에 합류했습니다. 자료를 읽을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고 답도 없고 정부는 지금 뭘 하고 있나 싶었습니다. 왜 알면 알수록 뭔가를 알게 된다기보다는 혼란스럽고 난감한지, 토론준비를 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들어보고 의문을 말하고 정리해봤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자유’ 만능주의

윤석열은 취임사에서도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었습니다.” 유엔연설에서도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이 위기는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확고한 연대의 정신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윤석열은 위기를 해결할 만능키처럼 ‘자유’를 말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위기 대응 방향과 기조로 <민간주도성장>, <한미동맹 강화>, <약자와의 동행>로 살펴봤습니다.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라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핵심은 민간주도성장입니다. 경제 운용의 주체는 민간·기업·시장이며 이를 주축으로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복원해야 하고 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역할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향에서 가장 먼저 드라이브를 건 것이 각종 규제 완화와 법인세 인하입니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기업에 규제나 세금으로 인한 부담으로 덜어주어야 하고 줄어든 부담만큼 기업의 투자활성화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업이 크는게 나라가 크는 것”이라는 환상을 유포하면서 기업 경영을 위축시킬 모든 요소를 제거하겠다는 의지만 내보일 뿐입니다.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타파해야 할 ‘규제’처럼 다루며, 기업이 져야 할 응당한 책임조차도 과도한 부담인 것처럼 왜곡하며 면죄부를 주려 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100일 성과 중 하나로 한미정상회담 개최와 나토정상회의 참여 등 한미동맹의 재건을 “무너진 대한민국의 정체성 바로 세운” 것으로 꼽았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우며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가치동맹’의 행보 속에 그동안 한국이 취해온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서 이제는 안미경세(안보는 미국, 경제는 세계)로의 전환을 말합니다. 미중 간 대립구도는 한국의 경제·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인데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은 미국이라는 일방향만을 향할 뿐입니다. 앞으로 더 지속될 미중 갈등이라는 악화일로에서 한쪽을 택하는 최악의 선택을 피하며 유연하게 대처해가는 게 필요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을 최우선 가치이자 전략으로 삼고 경색된 행보만을 보입니다.

윤석열 복지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오직 ‘진정한’ 약자를 공정하게 선별하는 것입니다.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 그리고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 기회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취임사에 드러나듯 자유시민과 자유시민이 되지 못한 이들을 구분하는 윤석열에게 약자와의 동행이란 자유시민이 되지 못한 이들을 돕는 것입니다. 약자복지와 함께 또 다른 축으로 내세운 것은 민간복지입니다. 민간주도로 양질의 서비스가 더 담보될 것처럼 말하지만 이용자에게는 비용 부담을, 종사자에게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떠넘기는 것일 뿐입니다. ‘진정한’ 약자와 대비하며 “노동조합 등으로 조직화한 이들은 정치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하고 그 수혜를 입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화물연대와 대우조선 파업에서 확인했듯 윤석열 정부는 조직된 목소리를 불온시합니다. 빈곤과 노동능력의 상실을 증명하는 ‘불쌍한’ 이들에게만 동정과 시혜를 베풀겠다는 약자와의 동행은, 위기에 맞서 조직되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향한 공격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자유’시민보다는 동료시민으로 이야기해보자.

윤석열이 생각하는 ‘자유시민’에 과연 우리가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8월 폭우 때의 신림동 반지하 발달장애인 가족이 사망한 공간을 내려다보던 윤석열의 태도가 자꾸 떠오릅니다. 그들도 동료시민이고, 노동자이며 함께 살아갑니다. 윤석열은 ‘약자’는 따로 사회에서 동떨어져서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경제적 성장을 위해 기업의 자유는 보장해주면서 노동자의 권리는 배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유를 규제완화 혹은 민간복지서비스 확대로만 생각하는 정부가 답답할 뿐입니다. 현 정부만의 문제만이라고 하기에는 이전 정부도 공공복지의 확대를 민간위탁의 방식으로 해왔고, 일터에서 노동자 사망은 과거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누군가를 잃고 나서 모이기보다는 그전에 만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동료시민으로 서로의 얼굴을 떠올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고 연결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별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의 문제일 때, 같은 자리에서 연결지점들을 고민했을 때 더 든든하지 않을까요? 혼자서 분노하기보다는 함께 고민하고 말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