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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반공반북의 시대 1] 국가보안법의 변주곡 ‘종북’

12월 1일 국가보안법 제정 65주년을 맞이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국가보안법의 남용은 억제되었다. 물론 1998년,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의 노고도 국가보안법 남용을 제어시켰다. 2008년 보수정권이 들어서자, 경찰과 국정원은 국가보안법 검거자 수를 꾸준히 높였지만, 사법부는 북과 관련된 문제에만 제한적으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경향이다. 공안당국이 국가보안법으로 수사할 때는 조직사건으로 거창하게 포장해놓고 정작 이적표현물 정도로 기소하기도 했고 재판과정에서 공안당국의 기소내용이 무죄가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국정원은 왕재산 사건에 국가보안법 상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를 두었지만 법원은 반국가단체 구성죄에 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국정원이 개입한 서울시간첩사건 역시 최근 무죄가 나왔다.

국가보안법 제정 65주년 기념 국가보안법 폐지 집회 포스터

▲ 국가보안법 제정 65주년 기념 국가보안법 폐지 집회 포스터


일련의 국가보안법 사건들을 거치면서 보수우익세력들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공안정국’으로는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간첩''빨갱이'반국가단체'로는 더 이상 대중의 감정을 공포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 보수우익세력들은 다른 카드를 내밀었다. 국가보안법이 수면 위로 부각되지는 않지만 아래로부터 면면히 흐르면서 변주된 모습으로.

첫 발화는 종북몰이로부터 시작됐다.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이석기 씨에 대한 내란음모 사건, 국가보안법 상 반국가단체 구성도 아니고 형법상 내란음모 라니, 법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내란음모를 가리켜 ‘쉬어가는 페이지’라고 한다. 시험에 나오지도 않고 존재감도 없는 형법조항이라는 것. 당시 상황에 대해, 미디어스 김완 기자는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적용했으면 이렇게 크게 보도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란음모라면 뭐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단다. 국정원은 이석기 씨에게 형법상 내란음모죄를 적용한 것 말고도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 이적단체 구성)를 적용하였다. 포장은 ‘내란음모’지만 내용물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이다. 당시 법학자들도 이석기 씨에게 형법상 내란음모로 유죄를 받아내기는 힘들고 결국 국가보안법 상 이적단체 구성 정도로 재판결과가 나오지 않겠냐고 입을 모았다.

하여튼, 내란음모 사건을 계기로 통합진보당을 비롯해 진보세력은 종북으로 몰렸다. 문제는 이러한 논의 지형이 사실 여부에 대한 확인보다는 사상검증의 시험대로 작동되었다는 점이다. 보수우익세력이 원하는 빨갱이 사냥이 먹혔다. 어떤 사실 판단을 가치판단에 종속시키면 합리적인 토론은 가능하지 않다.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소장은 “말 꽤나 한다는 사람들이 한 무리로 찍힐까봐 자기방어를 위해 ‘통합진보당을 반대한다, 지지하지 않지만’이란 단서를 달아 말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렵게 쟁취한 진보 의제들이 싸그리 ‘종북’이라는 혐오 이미지로 낙인찍혀서 보수우익세력에게 주도권을 내주어야 했다. 게다가 체제변혁에 대한 꿈을 그릴 수조차 없도록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라는 헌법’ 안에 진보운동을 묶어두는 효과도 발휘하였다. 종북논란이 감정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순간, 국민들은 아직도 종북세력이 북을 추종하다니 한심하고 혐오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11월 19일 ‘민주주의 썰戰 국정원이 물고 온 박씨’ 현장. 국정원 내란음모정치공작 공안탄압규탄대책위'와 김재연의원실이 공동주최한 토크콘서트<br />

▲ 11월 19일 ‘민주주의 썰戰 국정원이 물고 온 박씨’ 현장. 국정원 내란음모정치공작 공안탄압규탄대책위'와 김재연의원실이 공동주최한 토크콘서트


이후 국회는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절차를 밟아 현역 의원을 체포했고, 법무부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종북혐의가 있는 국회의원에게는 세비를 지급하지 않도록 한다든지 국가보안법 전력자들의 사면복권을 제한해서 국회의원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범죄단체해산법’은 범죄단체라는 표현이 마치 중립적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상 ‘반국가단체, 이적단체 강제해산법’이다. 국가보안법으로 개인을 처벌하는 것까지도 모자라 아예 모일 수 있는 자유까지 파괴하려 한다. 속전속결, 마스터플랜이라도 있는 듯 진보운동에 대한 공격은 현재형이다.

반북반공에 뿌리내린 국가보안법 체제

마녀사냥이 한창이던 15세기 중세 유럽도 아니고 미소 체제대결 가운데 나타난 메카시즘 사냥도 아니다. 21세기, 한반도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무엇보다 종북몰이 토양은 반북반공에 뿌리를 두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있기에 가능했다.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소장은 “국가보안법은 하나의 법률이 아니다. 법률 위의 법, 심지어는 헌법 위의 법이다.”라고 지적한다.

자유의 적을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우리사회는 국가보안법 체제를 안착시켰고, 헌법기관들은 안보관련 기구들에게 주권의 지위를 넘겨줌으로써 기본권 파괴를 가져왔다. 국가보안법은 지배권력의 축이자 지배체제의 제도적 장치를 뒷받침하는 핵심적 법률이다.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김민배 교수의 글 『전투적민주주의와 국가보안법』 중에서

국가보안법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을 ‘국가보안법 체제’라고 부를 수 있다. 국가보안법이 견고한 재생산구조를 가지고서 지속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1970년대에 대하여 ‘유신체제’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다. ‘국가보안법 체제’는 이와 동일한 차원의 개념이다. 이 때의 체제란 특정 개인의 퍼스낼리티나 정치세력의 집권을 넘어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구조화된 질서로서 재생산되고 상당한 지속성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보안법은 단순한 법이 아니고 우리 사회의 성격과 변화에서 핵심적인 요소의 하나로서 작용해왔다.(「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하는 10가지 이유」 중에서 인용)

새로운 사상검증의 발판 ‘종북’

재미있는 점은 국가보안법 체제 하에서 보수우파세력도 과거와 같은 ‘공안몰이’로는 ‘(그들이 말하는)종북세력’에 대응하는 것이 한계적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앞서 예를 든 것처럼 공안세력은 국가보안법 사건(왕재산 사건, 서울시간첩사건)으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보수우익세력은 새로운 사상검증의 발판을 ‘종북 프레임’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국가보안법으로 걸려들지 않는 다양한 정치세력을 ‘종북세력’이라 이름 짓고 퇴치하거나 배제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북을 따르는 세력들은 제거돼야 할 악일뿐이라고 사회적으로 굳건히 합의된 곳에서는 언제든지 빨갱이 사냥이 활개칠 수 있다. 우리사회는 왜 종북을 제거해야 할 대상인지를 문제 삼지 못하고 자신이 종북이 아님을 증명해야만 했다. 그런 사회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내가 종북은 아니지만’으로 시작하는 어법을 쓰게 된다. 종북몰이에 대응하는 진보운동 역시 국가보안법이라는 체제 안에 갇혀서 ‘내가 통합진보당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타자화된 북의 존재

이른바 북을 따른다는 ‘종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냉정하게 한국 사회에서 ‘북한’이라는 타자가 어떻게 작동, 기능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분단체제가 만들어놓은 반공반북 이데올로기 속에서 우리는 매우 특수한 방식으로 이미 북한을 수용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 지난 60년 동안 자행된 수많은 인권침해와 파시즘적 반공주의가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사회적 배제와 혐오가 왜 한국에서는 하필 북한과 결합해 ‘종북’이라는 모욕적인 단어를 만들어냈겠는가?

분단체제는 우리 삶 밖에 떠 있는 국제정치적 질서가 아니다. 매우 구체적인 물적 조건들을 갖추고 우리의 삶을 생산해내고 있다. 먼저 동아시아의 군사적 대치, 아니 일방적인 북한 포위를 보자. 중국을 염두에 둔 군사적 포석이지만, 미국과 일본, 한국은 엄청난 화력과 군사기지들을 배치했다. 한국은 미군기지 문제, 징병제 군대, 엄청난 국방비 지출이라는 사회구조적 상수에 묶여 있고, 북한은 전쟁공포 속에 사활적 생존노력을 하고 있다. 흔히 국가보안법으로 대표되는 반공반북 이데올로기 장치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는 생각보다 훨씬 교묘한데, 국가보안법은 모든 자유를 제한하는 게 아니므로 한국은 자유로운 사회이고, 자신은 자율적 사고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한다. 더구나 90년대 중반이후 북한인권이라는 프레임으로 북에 대한 선별적인 정보유통을 국가가 통제해나가면서 이는 더욱 강화된다.

국가보안법이라는 주술

반북반공이라는 토양 속에서 보수우익세력에게 국가보안법은 이들의 특권을 영구히 지속시켜 주는 ‘주술’ 같은 것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박주민 변호사는 “공안세력은 반공이 최고의 선이라는 사고를 갖고 있다. 법무부가 작성한 통합진보당해산 청구서를 보면 이들에겐 헌법이라는 것이 사실상 국가보안법이다.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이 위헌이라고 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국가보안법이 절대규범에 있었던 7-80년대 발상이다.”라고 지적했다. 반공반북은 사전적으로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북에 반대한다’는 매우 단순한 논리를 따르고 있으나 다른 사상이나 체제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배타적인 논리구조를 갖고 있다. 반공반북이 만들어주는 국가보안법 토양은 너무나 풍부한 먹잇감을 공안세력에게 던져주고 있다. 70~80년대 공안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조작간첩’은 국가보안법을 튼실하게 유지시킬 수 있도록 했다. 2013년 지금 ‘종북몰이’가 조작간첩을 대신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마녀사냥의 광풍 속에서도 정치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같은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적 인권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조금씩 들리고 있다. 인권이 하늘에서 떨어진 권리다발이 아닌,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하나하나 세워갔던 인간 역사의 축적임을 생각한다면,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북과 연결된 모든 문제는 언제나 권리의 예외상태라고 지칭할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정치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소중하지만 추상적인 가치를 되뇌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전망과 실천 속에서 한국 사회에 팽배한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에 맞설 실천이 필요하다.
덧붙임

정록, 최은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