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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공동성명서> 확증도 없이 '반국가단체' 규정한 사법부를 규탄한다

-이른바 '영남위원회' 사건 1심 선고에 부쳐-

오늘 부산지방법원 합의2, 3부는 이른바 ‘영남위원회’ 사건 1심 선고에서 검찰의 기소내용을 거의 대부분 인정하여 이른바 영남위원회 사건 관련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지난 7월 현 정권 들어 최초로 반국가단체 혐의가 적용된 이 사건이 미칠 파장 때문에 오늘의 선고 결과에 국내외 시민사회단체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가 되기 위해서는 조직의 강령과 조직체계 및 지휘통솔체계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서는 이를 입증할 만한 확실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중요한 증거라고 하는 것이 불법 도감청에 의한 녹음테이프와 누구나 조작할 수 있는 얼굴 없는 제3의 협조자에 의해 제시된 컴퓨터 디스켓과 같은 것뿐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몇 년 동안 치밀하게 수사하여 왔다는 사건의 명칭에 대해서 검․경마저도 네 번이나 명칭을 바꿔 왔다는 점은 더욱 이 사건의 실체에 대해 인정할 수 없는 이유였다.


1. 재판부는 민주주의를 짓밟는 폭거를 저질렀다.

재판과정에서도 피고인들은 검찰이 제시하는 증거들을 일관되게 부인해왔으며, 이에 대해 이 사건의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제3의 인물을 법정에서조차 내세우지 못하는 검찰의 수세적인 입장에서 재판이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외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재판부의 용기 있는 결단이 있기를 고대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재판부는 유령과도 같은 제3의 협조자가 검찰에 넘겨줬다는 컴퓨터 디스켓과 오랜 시간 개인의 사생활을 무참히 짓밟으면서 불법적으로 수집된 증거들을 모두 유죄의 증거로 삼는 폭거를 저질렀다. 이로써 50여 년 동안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짓눌러온 국가보안법이 용기 있는 재판부의 결단에 의해 철퇴를 맞는 계기가 되기를 바랬던 국내외의 인권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세력의 기대는 산산이 무너져 버렸다.


2. 이른바 영남위원회 피고인들이 반국가행위를 한 구체적 증거가 없다.

한 걸음 양보하여 피고인들이 이른바 영남위원회라는 반국가단체를 결성하여 활동한 것이 국가의 안보와 사회질서를 현저히 해쳤다고 입증할 만한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들이 지역사회에서 행하였다는 활동이 산재․해고 노동자의 자녀들을 위한 장학사업, 주부학교, 노래교실, 한글교실, 풍물교실, 주부글쓰기반, 좋은 아버지모임, 백혈병어린이돕기모임, 가족등산모임 등과 같이 그 지역의 현안과 깊은 관련이 있는 활동들이었고, 전국적으로 진행된 북한동포돕기, 정리해고 반대투쟁과 같은 것이었다. 이런 활동들이 반국가단체의 활동이었고, 이런 것이 과연 국가의 안보를 해치는데 기여했음을 입증할 수 있는가.

지난해 10월 유엔인권이사회가 결정한 바에 따르면, 국가보안법 제7조가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 제19조 2항에서 규정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조약을 정면으로 위배했다고 결정하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비단 국가보안법 7조만 아니라 다른 조항들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3. 우리는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위해 국내외 역량을 집중해 투쟁할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사상의 자유는 특정 사상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받지 않을 권리, 사상을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 자신의 사상을 고백할 것을 강제받지 않을 권리 등을 포함한다. 또 사상의 자유와 깊은 관련이 있는 표현의 자유는 의견을 가질 권리, 의사표현의 자유, 알 권리를 포함한다.

국가보안법은 이런 기본원칙을 무시한 반인권법이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국제사회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던 것이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면 다시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치욕스럽게도 인권침해국의 오명을 뒤집어쓸 것이다.

우리는 사법부가 비겁하게 검찰 등 공안세력들의 반인권 논리에 굴복하여 이번 판결을 내린 점을 우려스럽게 생각하며, 이제 인권과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모든 세력의 힘으로 국가보안법의 운명을 끝장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또 다진다.

아울러 이번 선고결과를 국제사회에 광범위하게 알려내고 한국정부의 인권정책의 허구성을 폭로할 것이며, 국제사회는 한국의 인권단체들과 연대하여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거센 압력을 가하고 말 것이다. 결국 이번 사건 판결은 국가보안법의 운명을 앞당기는 결과를 낳고야 말 것이라는 점을 정부와 사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1999년 1월 15일

부산울산지역 용공조작사건 전국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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